[충격고백] 김규열 선장 석방, 비하인드 스토리


2011.11.22 화요일
기획취재부팀장 죽지않는돌고래


2011년 11월 22일, 오후 11시. 702일 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친 김규열 선장, 그리고 그의 구명운동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구정서씨와 약 한 시간 가량 통화했다. 만감이 교차한다.

김규열 선장이 보석 석방된 11월 18일, 어두컴컴한 방 안에 앉아 그와 처음으로 감옥에서 통화했을 때의 녹취본을 들었다. 교환원에게 김규열 선장을 불러달라는 스스로의 엉성한 영어에 혼자 얼굴이 벌개지다가 김규열 선장의 힘 빠진 목소리를 들으며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빠지기도 했다.

<세종시 여론조작 녹취본 단독공개> 기사를 쓴 이후에 가장 부정적인 메일을 많이 받아 본 사건이기도 하다. 여기에 자세한 내용을 쓸 수는 없지만 필리핀 교민 사회가 조광현씨의 <필리핀 가정부 살인사건> 이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당부분 잃어 버린 것은 사실이다. 조광현씨가 교도소 안에서 보여준 행동이나 나와서의 행동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필리핀 가정부 살인사건>은 필리핀 마닐라 교도소에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약 5년간 살인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의 조광현씨 이야기다. 처음 김규열 선장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2010년 12월 22일 새벽, 조광현씨, 구정서씨와 약 3시간 가량 통화를 한 덕분이다. 

조광현씨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조광현씨의 구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이 사건과 관련해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구정서씨 역시 그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사건과 관련된 뒷이야기들과 당시의 인터뷰는 언젠가 공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보석 하루 전날인 11월 18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이라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은 개인적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날 새벽, 김규열 선장 사건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구정서씨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팀장님, 저 믿어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믿을만한 제보원 중 안재우(가명)라는 이가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김규열 선장이 실제로 마약운반을 했고 교도소 안에서도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총 6명의 업자들에게 안재우(가명)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고 김규열 선장이 교도소 안에서 당한 괴롭힘 등은 그로 인하여 발생한 일이라고 한다.

즉, 김규열 선장이 필리핀 경찰들에게 잡혔을 때도 약을 한 상태이며 그 세계만의 룰을 지키지 않는 비열한 행위로 물건을 취급했기에 이 바닥에서 그를 엮으려고 벼르고 있다 설계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을 끊지 못한 김규열 선장은 교도소 안에서 돈이 없을 때는 구걸을 해서 약을 하는 데다 돈이 있을 때는 자기 혼자 약을 독점한 탓에 교도소 내부에서도 악질 중의 악질로 찍혀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그가 석방될 경우, 이 사건과 연관된 이들이 그를 죽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이와 비슷한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여러 방면으로 조사한 결과, 신뢰성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제보자의 경우는 그 동안 상당히 신뢰할 만한 정보를 줄곧 제공한 이였기에 쉬이 넘어갈 수 없었다.

<13일 멕시코 누에보라레도 시에 있는 한 보행자 다리에서 줄에 매달린 채 발견된 시신 2구.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이 매달린 다리 위에는 “인터넷에 아무 글이나 올리면 누구나 이렇게 된다”는 갱단의 경고가 적힌 종이 팻말이 놓여 있었다. 사진 출처 미국 CNN방송? 영국 데일리메일 발췌 동아일보/ 현재 급증하는 범죄자들의 보복 살인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이 사실을 석방 몇 시간 전에 알게 된 구정서씨와 안재우(가명), 그리고 나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지금도 내 오른 편 파일에 꽂혀 있는, 구정서씨가 한국에 왔을 때 전해준 김규열 선장의 구구절절한 친필 편지를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본지는 김규열 선장의 범죄행위와 관계 없이 어떠한 정당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줄곧 말해왔고 구정서씨 역시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인터뷰에서 그가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를 끝까지 돕겠다고 했다.

구정서씨는 이와는 다른 종류의 제보에서 몇몇 방송사와 또 다른 의혹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사실들을 김규열 선장에게 대신 확인해 본지에 전해주었고 그가 절대적으로 억울하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하지만 이번 반전은 조금 달랐다.

나도 인간인지라 판단이 흔들릴 때가 많았고 때때로 여기서 손을 떼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지금까지 취재를 하면서 배운 것은 인간은 곤경에 빠지면 어떤 거짓말도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십 년 동안 교도소에서 썩거나 죽어나가는 이들이 비일비재한 환경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빠져 나오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 김규열 선장은 상당히 신뢰할만한 인물로 판명됐다. 그런데 막판에 지금까지 이 사건을 도운 믿을 만한 제보자에게서 위와 같은 사실을 들은 것이다. 게다가 김규열 선장을 죽이려는 이들이 존재한다니. 또한 이 모든 것이 김규열 선장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문득 당시는 별 일 아닌 듯 생각했던 메일 비밀번호가 바뀌는 일이나 주위 사람에게 전혀 연고도 없는 동남아인이 서투른 영어를 쓰며 만나자는 일도 걱정 됐다. 호기심에 그들을 만나려는 지인들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많은 고민이 있었다. 김규열 선장의 구명 운동에 목숨을 걸 각오를 하고 때때로 술에 취해 나에게 문자를 날리던 구정서씨에겐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김규열 선장이 나오길 기다렸다.

구정서씨는 일단 김규열 선장의 석방까지만 확인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석방 다음날, 구정서씨는 거짓말 같이 길거리에서 그 동안 못 본 풍경을 눈에 새기고 있는 김규열 선장과 만났다.

김규열 선장은 구정서씨를 살아있는 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방금 전의 통화에서도 몇 번이고 그 말을 강조했다. 그런 구정서씨가 김규열 선장을 발견하고는 안경을 벗으라고 한 뒤, 대뜸 뺨을 날렸다.

김규열 선장은 오랜 바다생활을 하며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이고 구정서씨는 다혈질의 남자다. 김선장은 너무나 반가워서 그를 향해 걸어 갔는데 대뜸 뺨을 때리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김규열 선장은 당시의 상황을

‘저도 성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구정서씨가 그랬으니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라고 전했다. 구정서씨는 따져 물었다.

‘김선장님, 약 했어요, 안 했어요?’

아버지뻘 되는 인물에게 뺨을 날린 구정서씨를 많은 사람들이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구정서씨는 1년간 김선장에게 올인한 인물이다. 많은 이들이 그를 도왔지만 구정서씨는 김선장에게 각별한 인물이고 그가 겪은 물질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김선장은 억울해 했다. 극구 부인했다. 자기 스스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자고 했다. 내가 누구에게 거짓말을 하겠냐고 말했다.

구정서씨는 이 모든 사실을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렸다. 음성일까. 양성일까. 11월 21일 아침은 그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고 구정서씨는 그 결과를 즉시 알려주기로 했다.



아침이 되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음성으로 나오길 간절히 바랬지만 전화가 없는 걸 보니 양성으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하며, 이후 이 사건을 돕기로 개인적 약속까지 받아낸 정치인에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

참다 못해 오후쯤에 스카이프로 연결해 구정서씨에게 결과를 물었고 구정서씨는 화면 위에 ‘양성’이라는 말과 함께 긴 점을 찍었다.

김규열 선장이 마약을 한 것이다.



나는 ‘음‘이라고 적은 후 일단 전화통화가 가능한지 물었다. 그런데 잠시 뜸을 들인 구정서씨가

‘…인줄 알았는데. 음성 ㅎㅎ’’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구정서씨는 김규열 선장에게 짜장면을 사준 탓에 늦어진 것이다. 검사결과가 나온 후, 김규열 선장에게 무엇이 제일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짜장면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이나 가게를 돌아다닌 후에 짜장면 집을 찾아 구정서씨는 짜장면을, 김선장은 곱빼기를 먹었다고 한다.

 


<뺨을 맞은 후 짜장면 곱빼기를 먹고 있는 김규열 선장/사진:구정서>




1시간 동안 김규열 선장, 구정서씨와 통화를 한 후, 아직도 만감이 교차한다.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지금 결과가 나온 것은 최근까지의 약물복용 반응 결과를, 다른 결과들은 얼마 후에 나올 예정이지만 6개월에서 1년까지의 결과까지 나온다고 한다.

김선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신은 목숨을 걸고 무죄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죽었으면 죽었지 왜 거짓말을 하겠냐고 말이다. 



김선장과의 긴 통화를 무어라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구정서씨는 평소의 소신대로, 그리고 김선장은 자기와 같이 억울한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자국민보호법’을 위해 뛰기로 본지에 전했다. 물론 본지 또한 계속해서 기사를 쓸 것이다.

한 사람이 풀려나는 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의 도움과 긴 시간이 걸렸으니 법이 바뀌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5년, 1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김규열 선장이 본지에 보낸 사진을 전하며 오늘 기사는 여기서 마무리 하겠다.




추신 : 2011년 11월 23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두 번째 방송이 나간다. 이번에는 김규열 선장과 외교통상부가 함께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추신 2 : 다음 재판은 2월이다. 무죄로 향하는 본격적인 재판이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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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부팀장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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