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 베스트 3를 뽑으라면 법원이 빠질 수 없겠다. 그 법원에서, 처음으로, 개인의 ‘진정한 양심’을 근거로, 예비군 불참자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진정한 양심’에 따른 예비군 불참이 무죄를 받으려면 한 개인은 어느 정도로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할까. 

A씨를 보면 알 수 있다. 

2.
A씨는 과거, 폭력적인 아버지와 민간인 학살 영상을 본 영향으로 폭력과 살인을 거부하는 신념을 가진다. 해서, 입대하지 않기로 한다. 허나 전과자가 되는 것, 그에 따라 불효를 하게 되는 것이 견딜 수 없어 입대한다. 그리고 전역한다.
 
이때의 결정이 마음에 걸려 전역 후, 예비군 훈련에 불참한다. 예비군 훈련을 지속적으로 불참하는 사람을 가만 놔둘 정도로 이 나라는 만만치 않다. 수 년간 수십 회에 걸친 조사, 14회에 걸친 고발과 재판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일용직과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징병제의 핵심인 현역 복무를 마쳤음에도, 자신의 양심과 다른 판단을 스스로 했다는 과거가 걸려, 예비군 훈련만큼은 양심에 따라 거부키 위해 일생을 전과자로 살기로 다짐한다. 일용직과 아르바이트로 평생 생계를 유지할 각오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 법원에선 만약 자신이 유죄라면 큰 징역형을 내려 예비군 훈련만은 피할 수 있게 해달라, 호소했다.

그렇다.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양심’을 인정받는 곳이 법원이다. 같은 법정에 선 다른 2명은 ‘진정한 양심’을 인정받지 못해 1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3.
오늘 이 판결을 보고 “감옥의 몽상(현민 저/돌베개)”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종교적 신념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끝까지 밀어부쳐본 후, 그에 따른 결론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전과자가 된 본인의 이야기다(알라딘에서 감옥, 교도소라는 키워드로 검색 후, 걸리는 책을 모조리 구매하다가 명저가 얻어걸리긴 했음을 고백합니다).



만날 때마다 생산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육아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돌베개 노예... 아니, 돌베개 출판사의 친구가 있는데(이름은 고운성이다. 사실 운성이 형은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액면가는 내가 더 많으니 대충 친구라고 명명하자), 언제나처럼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다가, 이 책에 대해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읽어보면 알겠지만 칭찬할 수밖에 없다). 곧,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이 나의 생각보다 훨씬 덜 팔려서. 
 
고민의 결과를 행동으로 옮겨 몸뚱이를 갈아 넣은 것도 헉!, 인데 몇 문장만 봐도 단어 하나 하나에 생각을 졸이고 끓여서 아주 그냥 깎고 깎고 또 깎아낸 고생, 고생, 생고생이 마음에 턱하니 전해지는데! 그 고생의 결과물이 탁월하기까지 하니 이건 뭐... 나같은 사람은 평생 이런 밀도의 책을 한권이나 낼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책이 안 팔리면 도대체 어떤 책이 팔리는 거야, 넨장!!, 했다.
 
뭐, 그렇다. 

걍 오늘 판결보고 생각나서. 

그러고보니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도 별로 안 팔렸다. 

... 넨장!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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