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건방진 생각을 하고 

나 또한 그렇다.

음악과 문학에 대해선 정도가 심했다. 






문학에 대해선

'나긋나긋하고 쓰잘데기 없는,

한 문장이면 될 것을 괜히 길게 늘여쓴,

알맹이에 비해 껍데기가 요란한 이야기'라 확신했다.

해서

15살 무렵까진 문학에 손도 대지 않았다.

내가 관심있는 것은 인문, 사회 혹은 실용서 뿐이었다.

이 생각은 헤르만 헤세로 완전히 무너진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듣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음악이 진실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단지 그 순간만 즐거울 뿐.

단지 그 순간만 동할 뿐.



이 생각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한 아저씨로 인해 무너진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지금부터 당신이 북극에 홀로 있다 생각해 보자.

동료는 없고.

오직 혼자.

그리고

한 무리의 에스키모를 만났다 치자.

지금부터 그 에스키모에게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대학을 나왔고

돈은 얼마나 있느냐가 아닌

자신의 본질을 전해야 한다.

말은 통하지 않는다.

  


물론 어떠한 통신수단도 없다.

그런 상황 속,

어떻게 자신을 설명할까.






나로서도 난감하다.

혼자 질문 만드는 것을 즐기고

그것을 푸는 것 또한 즐기지만

이처럼 간단히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헌데

스스로 이 질문을 만들며

올해로 63살이 되는

영국의 한 늙은이
를 떠올렸다.

그 남자라면,

기타 하나로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바로 위 사진에 나오는,

'Eric Clapton'이다.

 

 

60년대 말, 영국의 뒷골목에서 가끔 보였다는 낙서.

이후 에릭이 약물에서 벗어나 1974년 12월 런던에서 공연할 때

한 사람이"Clapton is God"이라고 외치고

뒤이어 관중들이 동의하는

박수가 울려 펴졌을 때, 

에릭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I"m not God, just the greatest guitarist in the world."

(Harry Shapiro 저 "Eric Clapton_ Lost in the blues" 중)

 

 

 

 

 

 

에릭 클랩톤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괜찮다.

나 또한 10대에는 이 아저씨를 모르고 살았다.




잠시만

이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압축판으로 짚고 넘어가자.

중요한건 아니지만

이 기회에

종종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에 대해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여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외로운 시절을 보낸 에릭.

그리고

14살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일 선물로 준 기타를

시작으로 "인생"이 시작된 이 남자는


만약 당신의 친구라면

그의 멱살을 잡고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에릭. 넌 쓰레기야...'





왜?




이 남자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유명한 두개의

이야기가 있다.








에릭 클랩톤을 몰라도 다들 비틀즈 정도는 알 게다.

비틀즈 멤버 중 한명인 조지 해리슨이

에릭과는 아주 절친한 사이다.

70년대.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



하필이면 에릭은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

패티 보이드. 

즉, 조지해리슨의 아내.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도 아니고

'친구의 아내를 사랑했네'다.







패티는 종교와 마약에 빠져있던 조지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에릭을 이용했다.

혹시 그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

즉, 

에릭과 다정하게 지내는

자신을 보면 돌아와 주지 않을까 하면서.





행복했던 한 때, 조지해리슨과 패티 보이드

<출처 : 비틀즈 매니아(비틀매니아)>

  


하지만 문제는 커진다.

으레 사랑이야기가 그렇듯 말이다.

그렇게 애원하는 조지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에릭은 완전히 그녀에게 미쳐 버린다.

정말 미쳐 버렸다.

헤로인 한 다발을 들고 와서

'이걸 줄테니 나랑 떠나자'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녀의 질투를 얻어 사랑을 얻어볼까 하는 마음에

그녀의 여동생과 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상상해 보자.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마약 한봉지 들고 와서는

당신의 아내를 사랑한다고


이걸 줄 테니 나랑 살자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관심을 끌기 위해 당신 아내의 여동생과


섹스한다고 생각해 보자.


또라이중에서도 상또라이인 셈이다.









역시나 에릭의 친구답게


비틀즈의 조지 역시 대단한 남자였다.


(이 표현은 반어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간다)

어느날 밤의 파티였다.

에릭은 보이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를 틈타

친구인 조지에게 이야기 한다.






'나는 네 아내를 사랑해'


'그래. 그럼 네가 내 아내를 가져.

난 네 여자친구를 가질테니까.'








이 말을 들은 패티의 심정은 어땠을까.

저 말을 한 조지는 패티의 기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도중 

누군가는 패티라는 여자를 비난했을 지도 모른다.

남편의 친구에게 접근하다니, 라고 하면서.







다시, 상상해 보자.

조지와 에릭.

당신이 여자라면 이런 또라이 중의 또라이들 사이에서

견딜 수 있었을까.

남편은 다른 여자랑 자고 와서는

'나는 그녀를 사랑해'라 말하고

남편의 친구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약을 한 봉지 들고 오고.

게다가 

남편의 친구가 '네 아내를 사랑해'라고

말하니 한다는 소리가 '그럼 너 가져'라니. 

 


역시나 행복했던 한 때, 에릭 클랩톤과 패티 보이드

<출처 : 비틀즈 매니아(비틀매니아)>

 

 

자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어쨌든

그런 우여곡절을 겪어서 

결국

에릭은 패티와 결혼하게 된다.

절친한 친구의 아내와.






그럼 조지는 뭘 했을까?

절친한 친구가 자신의 아내와

결혼한 그 순간에.





......





그는 에릭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렀다.









짧게 말해서 이 정도다.

(참고로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에릭은

인터뷰 도중 어떤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기자 : 절친한 친구(조지해리슨)의 마누라는 왜 뺏었어요?


에릭 : 내가 처음 패티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조지는 "그래, 한번 해봐라."식이었는 걸.

지금은 그렇게-진짜 한 번 해보라는 격려(?)의 뜻-생각하진 않지만.

그... 조지는 별로 열받아 하지 않던 걸.

실.. 실제로는 상당히 열받았을거야.)

 

 



이때는 그 결말이 어떨지 알고 있었을까.

<출처 : 비틀즈 매니아(비틀매니아)>

 



아마 역사 상에 남을 삼각관계로

파고 들어가면 그 이야기는 끝도 없다.

(알아서 각자 찾아보라는 말이다)

덕분에 수많은 명곡이 탄생했다.

에릭이 그녀를 열렬히 원하면서 불렀던 'layla'라던가

그녀를 얻은 뒤 너무 기쁜 마음에 부른 'wonderful tonight'라던가.


(아. 

친구 녀석이 말해주었는데

원더풀 투나잇의 진실은 기쁨이 아니라 한다.  

완벽할 줄 알았던 사랑이 사소한 것 하나에도 쉽게 무너져 버리는,

불완전한 것이란 걸 깨달았을 때의 허무함,

그러면서 그토록 아이러니컬하고 그토록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 불완전한 대상을 향해 

빠져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인간 본성에 대한 노래라고 한다)


조지가 그녀를 위해 불렀던 'Something'이라던가.


이것 말고도 그들 세명에 얽힌 노래는 많다.

하나 하나가 명곡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아들의 죽음이다.

이건 간단하다.

에릭이 약에 쩔어 헤롱헤롱하며

공연을 다니느라 집을 비웠을 때

아들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Tears in Heaven'

에릭은 이후 마약에 완전히 손을 끊고

더욱 완벽한 경지의 연주를 한다. 


슬픔, 고통, 괴로움을

손 끝으로 끌어 올리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심장을 쥐어짰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최근엔,

그러니까 2005년엔

영국 여왕과 악수하는데

영국 여왕이 에릭을 몰라보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고.


 



 

 

<출처 : 92 공연DVD에서 캡쳐>

 


이제 대충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올까.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문학전집 한질은 족히 넘으니 각자 찾아보자. 


어떤가.

 이 아저씨 완전 또라이지?

인생 정말 파란만장 하지 않냐.





앞서 말했듯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나는 기타에 대해서도

블루스에 대해서도 모른다.

중요한 건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을 잘도 울렸다는 사실이다.





20살.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당시 나는 이 아저씨가 누군지 몰랐다.

티끌만큼의 배경지식도 없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라이브 공연을 다운받아 보게 된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라이브 공연을



내가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에 수염난 아저씨가

통기타 하나를 딱 들고는

무대 위 의자에 앉더니 기타를 치기 시작한다.

잠시후,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왜?



눈물이 나서.

살면서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눈물이 난다.






그날 나는 여자친구한테 차인 것도 아니고

별로 기분이 나빴던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어느 주말의 저녁

모니터를 보면서 그의 연주를 듣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한 웅큼 떨어졌다

(한참 후에야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라. 이게 뭐지?' 하면서)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 노래를 들어 본 적도 없는데다

더더구나 가사도 모르는데.

(나는 영어 실력이 좋지 않다)







그 날 이후로 이 아저씨를 좋아하게 됐다.

그 노래를 다 듣고는

내가 왜 울었을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아직도 이유는 알 수 없다.






에릭 클랩톤이 '기타의 신'이라든가

연주가 어떻다든가, 

그런 건 나한테 중요하지 않다.



이 사람은

유일하게

소리 하나만으로

나를 울린 사람이다.












 

 

 

BY 죽지 않는 돌고래, 2005년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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