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들-
한국은 지금쯤 그들의 계절이겠구나-




이 사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찍은 마지막 증명사진이다.
그러니까
딱 이맘 때.
벌써 5년 전의 사진.




엄했던 두발제한도 수능이 끝나자 자연스레 풀려 버려
마음껏 머리를 기를 수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이전에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고
선생님들도 나를 싫어하는 편이 아니어서
남들보다 조금은 길게 머리를 기를 수 있었다.
덕분에 졸업식 친구들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3학년2반(아래의 '주'참고) 이라 강도가 더 심한 탓도 있지만
6만 4천컬러에 각종 스트레이트와 파마로 무장한 친구들은
정말로 대단했다.




당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나는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사진관에 갔다.
(합격자 발표 이후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는 완전히
내 세상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시간은 널널한데 비해
참으로 무료한 나날들 이었다. 얼마간 빡세게 지내다 보니
더 이상 놀 무엇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사진관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학생..."
"예?"
"증명사진 안 찍나?"
"?....."
"올해 대학 들어가지?
"예."
"그러면 지금 찍어 놓는게 좋아. 대학가서 찍으면 소용 없어."




사진관 아저씨는 대학에 들어가서 증명사진을 찍으면
얼굴에 순수함이 없어진다고 했다. 수 십 년 사진관을 해온 자신은
알 수 있다고. 대학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면 화장도 늘어나고
예쁜색으로 염색해서 겉모습은 더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로 얼굴에 순수함이 씻은 듯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안타깝다고-





사진관 아저씨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알기도 전부터 그 자리에서
사진관을 꾸려왔던, 어머니와는 잘 아는 아저씨였다.

 

(어머니는 아직도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다녔던 옷수선집, 사진관,
생선집등을 이용한다.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그들은
어릴때 부터 어머니를 보아왔기 때문에 어머니 이름을
꼬맹이 이름 부르듯이 아무렇지 않게 부른다-
예를들어
돋보기 안경을 쓴 70도 더 된 노인이 다리미를 잡고는 어머니랑
수 십 년된 옛날이야기를 하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을 지켜 보고
있으면 왠지 빛바랜 세월의 무게랄까- 아름다움이랄까-
그런게 느껴진다)




어쨌든
그런 분의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생각 없이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그의 말 속에 장인으로서의 관록이
묻어나는 느낌이 있었다고나 할까.




-


이 사진은 그렇게 해서 찍게 된 사진이다.
어디에 순수함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 부연설명


지산고 3학년 2반 :

나의 고등학교는 그런데로 우수한 인문계열이었다.
자칭 신흥명문. 타칭 바퀴벌레(교복색이 바퀴벌레색). 
하지만
그해- 그 봄날-
이 지역의 82년생들이 입학할때, 딱 그 때.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인문계가 미달이 난 것이다.
인문계 미달은 무엇을 뜻하느냐.

 

 

 

쉽게 말해
공고 상고 농고에도 모두 떨어진 편차치 99%의
(나로서는 굉장히 환영할만한)친구들이 대거 입학한 것이다.
그들은
선생님들의 농간인지 우리들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고3이 되자 모두 2반으로 모이게 된다.
공부 꽤나 한다는 친구나
이제 마음을 잡고 수능에 매진하려는 친구들이
반의 극악한 구성(?)을 보고
도저히 이런 환경에선 공부할 수 없다고 학생주임 선생님께
반을 바꿔 달라고도 말했지만, 이미 늦은 일.

 

 


덕분에 재밌었다.
공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고3시절을
그렇게 막 보낸 사람들도 드물 듯하다.
막 보냈다는 말이 정말로 딱 어울렸다.
다행인 건
마지막엔 다들 운이 좋았다.
마지막 만큼은
다들 열심히 했기 때문인지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담임선생님 덕분인지. 
(박종진 선생님은 우리를 통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분이었다)




문제아들만 모인 반에서 가장 문제아들만 골라 앉힌다는 제일 첫줄,
그것도 선생님 교탁 옆에서 1년 동안 고정석을 맡긴 했지만
(그 8명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자유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괜찮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한번 쯤은 그렇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아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관심의 의미가 좀 다르긴 하지만.









by 죽지 않는 돌고래 / 0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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