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거처를 정하기 위해 십수군데의 고시원을 둘러다니면서 느꼈던 점은 서울 물가가 정말로 비싸다는 것이다. 이곳 저곳 지방에서 살아본 나로서는 같은 한국땅에서 어떻게 이리도 주거비용에 차이가 나는지, 가끔 무언가 잘못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땅값, 집값이 살인적으로 유명한 동경에서도 살아 봤지만 서울이 더 심했으면 심했지 결코 덜하진 않은 듯하다. 지방에서 살다가 동경으로 간 탓에 그 임대료에 놀랐지만 아마 서울에서 살다 갔으면 그리 심하게 놀라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05년 당시 동경의 거처. 화장실, 샤워실은 물론 공용이었다. 화장실이야 그렇다 쳐도 겨울에 샤워 한번 하려고 옥상에
가면 정말 '얼어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 내 방은 딱 3cm정도 열리는 창이 있었는데-다른 방에는 창 자체가 없다-
그 조그마한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모른다.>
참고로 UN이 2001년 주요도시를 대상으로 평균 근로자의 소득대비 주택가격을 조사한 결과, 동경이 5.6, 서울이 5.7로 나왔다. 2003년 국민은행의 조사 결과에는 서울이 8.9로 나타났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서울에서 새집을 장만하려면 평균 근로자가 8.9년동안 단 한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8.9년동안 물가가 0.1%도 오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두번째로 놀란 점은 고시원의 환경이었다. 글을 적을 때 이따금 말미에 '고시원 옥탑방에서' 라고 적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어구가 표현하는 뉘앙스보다 훨씬 괜찮은 곳에 살고 있고 실제로 여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얼마전에 공용 부엌에서 바퀴벌레 2마리를 보긴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방은 겨울에는 조금 더 춥고 여름에는 조금 더 덥다는 단점을 제외하곤 이 고시원 내에서는 최고급(?)이다. 고시원을 처음 운영하시는 주인 집 아주머니가 너무 신경을 써 주시는 덕택에 옥상의 주거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탁기도 생겼고(일전에는 3층까지 내려가야 했다.)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공사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시원은 정말 기절할 만한 곳이 많았다. 강원도 철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막사중 하나에서 생활해본 나로서는(군인 출신이신 아버지가 우리 막사를 보고 놀랐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충분히 증명이 가능할 듯 하다.)정말 왠만한 주거환경에는 눈하나 깜짝않고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진짜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곳이 많았다.
일단, 서울의 중심지라는 이유로 말도 안되는 시설에도 불구하고 터무니 없는 가격을 받아내는 고시원이 많았다. 물론 서울의 땅값을 고려하면 이해할만도 하지만 코를 찌르는 악취가 흘러 나오는 곳을 들렀을 땐 정말이지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한곳은 굉장히 좁은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간 뒤에 고시원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점점 안 쪽으로 들어가면서 '불나면 죽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토록 작아보이는 건물 안에 이렇게 미로처럼 집을 꼬아서 지을 수 있는지, 건물안에 또 하나의 건물이 있는 느낌이었다. 고시원 같은 종류의 집은 항상 빨래널 곳이 걱정인데 그 곳은 그런 류의 배려도 전혀 없어 보였다.
아마, 한국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시는 조선족 동포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곳에 들어가 바가지를 쓰는일도 허다하지 않을까.혹시 고시원에 살 기회가 생긴다면 발품을 팔아 알아보고 또 알아 본 다음에 계약을 했으면 한다. 개인적인 경험상, 고시원 사이트에 있는 사진은 믿을게 못된다. 실제로 2배 정도는 넓어보이고 4배 정도는 깨끗해 보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방안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최고급 환경에 사는 주제에 이래 저래 고시원에 관한 글을 적고 있으니 죄송할 뿐이다. 건너편에 사시는 아버님 한분이 오랜만에 딸과 함께 나갈 채비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딸이 '역시 아빠는 똑똑하구나! 착하구나! 멋지구나!'이런 소리가 들리는데 혼자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도 서글프고 먹먹한 감정이 드는 건 왜일까. 몇년 후에는 고시원이 아닌 보다 번듯한 집에서 딸과 함께 손을 잡고 나가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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