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 원본 주소 : http://www.ddanzi.com/news/87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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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월 15일 금요일, 세종시 여론조작의 냄새를 맡은 김용석(너부리)편집장으로 부터 한 사이트 주소가 쪽지를 통해 날아 왔다. 그리고 그 밑에 쓰여진 한마디.
"잡을 수만 있다면 대박인데... 기사화가 가능할까?"
해당 주소의 내용은 세종시 여론조사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수정안' 쪽으로 여론을 몰기 위한 유치할 정도의 홍보용 멘트와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지는 여론조사였다.
그날 저녁, 딴지일보 사옥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2.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은 매력적인 기사감이 많지만 증명이 어렵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기자들이 인터넷에 쓰여진 글을 기초로 기사를 많이 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논란이 되는 글이라도 대부분 책임을 지지 않는 범위에서 어떤 글이 어떤 사이트에 올라왔다 정도의 내용만을 전할 뿐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만 믿고 망신을 당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까이 경쟁이 치열한 언론계에서도 인터넷 떡밥을 최대한 경계하는 이유다.
(일본어인 '반까이'는 '만회'라는 뜻으로 기자들의 속어다. 딴지일보의 경우, 언론성격이 다르므로 데스크에서 압박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종이 신문사들은 다른 곳에 특종을 뺏기면 기자는 데스크에서 된통 깨진 다음, '반까이'(만회)의 악몽에 시달려야 한다.)
세종시 관련 사안의 경우, 딴지일보라면 어떤 내용이라도 데스크에서 기사를 자르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에 기자로서는 마음이 든든하지만(김용석 편집장이 정부 관련 비리기사를 중간에서 자를리는 없으므로)문제는 취재원이다.
총수 인터뷰에서 보았듯 김동일 계장이 내부 게시판에 글 하나 올렸다고 해직되는 세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들이 과연 자신의 글을 증명해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서겠냐는 것이다. 경험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락하기를 꺼려하고 기껏해야 간단한 메일 문답에서 그친다. 전화번호는 물론, 아주 간단한 신상공개도 피하려 한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래서 편집장에게 말했다. 편집부 쪽에서 하는게 낫겠다고. 혹시 바빠서 나한테 맡기는 것이냐고. 편집장은 담배 한모금을 빨고는 말을 이었다.
"이 일은 돌고래가 제일 잘할 것 같아."
이래서 편집장 닉네임이 너부린가 보다. 기분 나쁘게 시켜먹으면 뒤에서 씹기라도 하지, 막 하고 싶게 만들잖아.
3.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해 보니 의외로 황당무계한 여론조사 전화를 받은 사람이 많았다. 주 내용은 '수정안'의 장점만을 길게 열거 한 다음, 이 내용을 아느냐고 물어 보고 '수정안'과 '원안'중에 지지하는 쪽을 고르라는 것이다. 게다가 무조건 양자택일.
쉽게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첫번째 질문입니다. 혹시 저희 가계에서 새로 개발한 '신짱표 자장면'을 아시나요? 면부터 시작해 자장 소스까지 모든 재료를 유기농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게다가 그날 갓잡은 싱싱한 해물과 푸르른 자연에서 기분 좋게 뛰어 놀며 자란 돼지고기만을 엄선하여 중국 사천성에서 유학을 마치고 온 1급 호텔 주방장이 요리를 합니다. 물론 가격은 같습니다.
자, 이제 질문입니다. 신짱표 자장면을 드시겠습니까? 그냥 자장면을 드시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세종시 수정안 여론조사의 불편한 진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가 쓴 글이다. 반드시 읽어 보자. 사실 이 기사도 이택수 대표의 조언을 얻으려 했으나 취재원 섭외 문제 때문에 시기를 놓쳤다.>
이런 식의 여론조사라면 답은 뻔하다. 18일, 리얼미터 대표인 이택수 대표가 밝혔듯 세종시와 같은 사안은 아직 국민들 대부분이 수정안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으므로 DK그룹(Don''t Know - 부동층 또는 유동층, 즉 모른다나 무응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여론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길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한데다 한 술 더떠 저런 홍보용 멘트까지 집어 넣었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런 식으로 여론조사를 한 기관이 몇 군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밴드웨건효과다. 밴드웨건이란 어떤 행렬의 선두에 가는 악대차를 말한다. 이 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무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두들 우르르 따라간다. 즉, 대세를 따르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세종시 안도 어느 순간에 한쪽으로 쏠릴지 모른다는 뜻이다.
몇몇 정치인들이 선거의 마지막에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여론조사 결과가 역전되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짓말이 먹히면 결과는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49%와 51%는 2%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한쪽이 51%가 되는 순간, 다른 쪽 저울의 49%는 모두 51%쪽으로 떨어진다.
4.
여론조사 조작과 관련하여 여러명에게 접촉을 시도했지만 역시나 대부분 연락이 되질 않았다. 겨우 연락에 성공한 청주에 살고 있는 40대 후반의 한 남자는 갑작스럽게 전화를 받은지라 세부 항복별 내용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1월 16일 21시. 새로운 메일이 눈에 띄었다.
"제 전화번호는 010-XXXX-XXXX입니다. 공개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떠한 정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충남 계룡시에 거주하는 30대 중반 남성이며 현재 대전시에 있는 XX기관에 사무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묻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전화로 답할 것이며 다만 신원에 대해서는 익명을 요구했다. 메일의 마지막 한 줄이 쓰다.
"처자식이 있는 몸이라..."
너무나 고마웠지만 유일하게 전화번호를 공개해준 그에게 무리한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충청도든 어디든 가겠으니 인터뷰를 할 수 없겠냐고 물었다. 술값, 밥값을 다 내겠으니 만날 수 없겠냐고 졸랐다. 넷상으로만 주고 받은 문답은 나는 물론, 독자에게도 신뢰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하루 뒤인 1월 17일 오후 9시 20분. 그에게 메일이 왔다.
"참고로 저는 금주금연가 입니다. 그저 한 시민으로써 사실을 진술하고 기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터뷰가 성사됐다.
5.
만나기로 한 것은 1월 19일 오후 6시 대전역. 인터뷰는 식사를 하면서 하기로 했고 몇몇 조율과정을 거쳐 반석역의 채식 부페가 낙점됐다. 오후 3시에 집을 나서서 서울역으로 향했다.
무궁화 1303 열차. 서울 15:45 출발. 대전 17:48분 도착.
기차에 타자마자 까페칸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몇몇 세종시 관련 기사를 뒤적이며 잡생각을 하다가 국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국회의원 현황 메뉴를 클릭했다.
'한나라당 169명. 민주당 87명. 자유선진장,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등 비교섭단체가 총 42명. 모두 합쳐서 298명. 그런데 한나라당 내에는 친박계가 5-60명이지. 세종시 수정안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통과. 모두 출석해서 반땅하면 149명이니까 150명이어야 통과가 되는데... 야당은 대부분 반대표를 던질테고. 친박계에서 최소 50명만 빠져도 찬성표는 119명. 맥시멈으로 계산 때려도 이 정도.
당연 수정안 통과는 절대 불가능. 하지만 MB가 이걸 미는 건 그만큼 여론 반전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또 다른 한방을 가지고 있거나. 방송장악을 한 상태라 홍보권을 거의 독점하고 있으니 자신감을 가질만 해. 충청 여론에 전력을 다해 판을 뒤집는다 치면 지방장악 리더쉽 재조명에 수도권을 한큐에 잡을 수 있다. 거기다 박근혜 독주를 무너뜨릴 수 있고. 그야말로 세마리 토끼를 한번에.
이 화력으로 6월까지 가면 공천에서 친박계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돼. 무엇보다 자신이 지목한 후계자가 다음 바톤을 넘겨 받고 박근혜와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지. 그런데 아무리 탄력을 받아도 선거여왕의 손을 빌리지 않고 6월에 필승을 얘기하기는 힘들텐데.
가만, 가만 이거 너무 쉽게 가는데. 의석수만 가지고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이 승부에서 이기기는 힘든게 맞어. 너무 무시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건가. 구체적인 판은 MB가 짜는게 아니라 브레인들이 짜는 거잖아. 혹시 정부선만 알고 있는 북한카드를 손에 쥐고 있는 건가. 이 카드는 아직도 먹히는 한방인데.
아니면 정말로 그냥 찔러 보는 거? 막말로 수정안이 통과 안된다 해도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만큼 MB에게 피해는 없잖아. 장악한 언론만 잘 이용하면 정말로 백년대계를 생각했던 안타까운 대통령의 이미지도 가능해. 무엇보다 한상률게이트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만 해도 이미 이긴 게임이라 볼 수 있어. 누가 이기든 세종시에 노무현의 이름을 반 이상 지운 셈이고.
대선을 노리는 박근혜는 미디어법 때처럼 발을 뺄 수는 없는 셈. 당론이 바껴도 마이웨이라는 건 이미 몇 수 앞을 쳤다는 뜻. 그럼 끝까지 지켜낸다면? 보수 지지층은 일부 빠지는 대신 충청표의 상당 부분은 박근혜가 독식할 거고 영남을 잡고 있는 박근혜가 충청까지 잡으면 그야말로 완벽한 천하를 얻는다. 압도적인 독주. 무적이 된다는 말인데...
게다가 이번 세종시 건으로 신뢰도를 굳히고 MB차별화까지 잡는다면 그야말로 대선까지 탄탄대로인 건가. 살을 주고 뼈를 칠 각오를 할만 해. MB가 밟을 수록 박근혜는 더 커질 수 밖에 없고. 하지만 천하를 좌우하는 수도권은 원래 주인 없는 땅, 어디까지 MB와 박근혜의 의도대로 갈지...
둘다 올인 할만한 싸움터. 질 경우에도 '대의'를 쫓았다는 변명이 실패를 지울 수 있다. 언론은 루비콘강을 건넜다지만 사실 서로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는 셈은 가지고 있지. 이겨도 한나라당의 승리고 져도 한나라당의 승리야.
안습인건 이박 싸움에 존재감마저 잃어 버린 민주당. 정말로 노무현의 유지를 받든다면 세종시 카드를 잘 살려서 이무기들을 풀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박근혜가 야당총수의 역할까지 하고 있고 국민들에게도 그렇게 비춰지니 첫잔부터 쓰다... 판을 흔들려면 4월 전에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야 할텐데 있는 패도 붙질 않고. 나중에 한상률 게이트의 한방이 꼭 먹힌다는 보장도 없고 핵폭탄이 터진다 해도 이제 그 반사이익은 박근혜가 가져갈 확률이 더 높아졌어...'
이런 저런 기사를 종합해 분석하면서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샌가 대전에 도착했다. 재우씨(가명)는 전화로 친구 차를 빌려서 약속장소에 먼저 가 있을 테니 반석역까지 나와 달라고 했다.
6.
어르신을 위한 대전역장의 배려인지 아니면 지역정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전역의 에스컬레이터는 굉장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대전역을 나서는 순간 보이는 풍경들은 이 곳이 격전지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생전 처음 대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내려 갔다. 플라스틱 재질의 동그란 전철표가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식으로 표를 달리하여 지방색을 주는 것도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특히나 한국에 가장 많이 온다는 일본인들 중엔 전철이나 기차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공용 교통카드는 따로 두고라도 지방자치의 방편으로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깔끔하고 한적한 대전 지하철을 보고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취재가 아닌 여행 기분이 난다.
반석역은 종점이었다. 대전역에서 34분.
마침내 반석역에 도착했다. 저녁 6:55분. 서울에서 집을 나선지 3시간 55분만에 이곳에 왔다. 재우씨(가명)와 한번 더 통화 후, 2번 출구로 나와 뉴타운 프라자 9층 마르쉐라 부페로 올라갔다.
9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깔끔한 양복에 검은 반코트를 입고 있는 30대 중반의 남성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이 남자를 만나기 위해 93년 엑스포 이후 17년만에 대전땅을 밟았다.
7.
<신원보호를 위해 인터뷰이의 가명을 안재우로 설정했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자리로 이동했다.
돌 : 일단 취재고 뭐고 밥부터 먼저 먹지요. 저 배고파 죽겠어요.(웃음)
안 : 네. 그러죠.(웃음)
<모든 음식을 식물성 재료만 이용하여 만드는 채식 부페다. 고기도 콩이나 두부를 이용해 만든다.>
각자 음식을 덜어 자리로 가져 왔다.
돌 : 지금 일을 대전에서 하신다고 했죠? 집은 어디세요?
안 : 집은 계룡시예요. 계룡은 대전보다 집값은 좀 싸면서 살기 좋아요. 자연 환경도 좋고.
돌 : 아. 그렇구나. 대전 느낌이 참 좋던데 계룡 쪽으로도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서울은 사람 살 곳이 아닌 거 같아.(웃음) 선생님이 인터넷에 올리신 글을 여기 저기서 봤는데요. 인용을 한 분들이 좀 있더라구요.
안 : 혹시 그런거 보고 (정부에서)추적하는 거 아니겠죠?
돌 : 설마 그럴리가.(웃음)
안 : 그렇게 제가 가끔 글 같은 걸 올리고 그러는데 와이프는 좀 싫어해요. 이것(인터뷰)도 얘기했거든요. 그러니까 가지말라고... 뭐, 저는 상관 없다고 그랬는데.
용기를 내서 와준 재우씨에게 감사할 뿐이다. 당사자가 되어 보면 이런 자리는 왠만해서 나오기 힘들다. 실제 연락을 시도한 열 몇명 중 유일하게 전화 연락이 가능했던 것도 재우씨 뿐이었다.
돌 : 충청도 민심은 어때요?
안 : 대전 사람들이... 그러니까 충청도 사람들이 표현을 잘 안해요.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경우는 표현을 좀 하잖아요. 충청도 사람들은 그런 이슈가 있어도 표현을 거의... 그래서 여론조사를 한다고 해도 이게 진짜로 맞는지 안 맞는지 다 모를 정도로 뭐 그래요. 또 뭐라고 하지.. 잘 속아 넘어가요.(웃음) 사람들이 유순하고 순박하기 때문에.
충청권은 실제 여론조사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안 : 그런데 최근들어 선거에서 표로 표현을 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지난 선거에서 수혜는 선진당이 받았지만 한나라당이 이걸 노리는 꼼수가 있는건 아닌지...선거이슈를 4대강에서 지역간 갈등으로 바꿔 어차피 충청도는 선진당에게 내줘도 손해볼게 없다는 계산... 전라 광주 제주는 민주당이 충청도 선진당 나머지 서울 경기 인천 강원 경북 경남 부산 울산 대구 한나라 독식... 충청도의 박근혜계는 몰살? 이걸 노리는 건 아닌지....
돌 : 음. 예리하신데요. 역시 보통분이 아니셨어. 그럼 세종시에 대해선 역시 충청도는 원안 지지가 많나요?
안 : 사실 보통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슈엔 별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정치를 말하는 사람들, 이야기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거의 원안이죠. 수정안 주장하는게 왜 이상하냐면.... 여기 사람들은 대전같은 경우, 옛날에 여기 반석이나 둔산동이나 다 밭이었어요. 그런데 정부청사가 들어오면서 대전역 쪽에 있던 구도심이 오면서 발전된거를 다 봤거든요. 그러니까 정부기관이 들어오면서 이렇게 발전이 일어나고 다른게 다 들어 왔는데 정부기관 들어 와봤자 뭐 공동화 현상만 일어난다. 원안은 무조건 아니다. 뭐, 그건 말이 안되는 것 같아요.
돌 : 음, 이야기 하시는 도중에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찍어서 증거를 남기고 싶지만 신원보호를 요청하셨으므로... 옆에 의자라도 찍겠습니다.(웃음)
안 : 아... 얼굴만 안 나오면 괜찮아요.
돌 : 흐, 감사합니다. 그럼 막 뉴스에 나오는 효과루다가 찍겠습니다. 범죄 관련 뉴스(웃음)
밥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만 하면 체한다. 여러가지 잡담을 나누다 보니 학교 선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는 다르지만 학교 내에서 분명 한번은 스쳤을 학번. 학교 이야기를 하며 긴장감도 풀어진 탓에 슬슬 본격적인 질문을 던져 보았다.
돌 : 선생님. 여론조사 하셨을 때 받았던 질문이 총 4개였던가요? 그 메일로 확인해 주신 게...
안 : 네. 처음에 세종시 수정안과 원안 중 어느쪽을 지지하는지 묻길래 원안을 눌렀죠. 그러고 나니까 세종시 수정안에 삼성이 몇조원, 한화가 몇조원을 투자하고 채용인력만 수만명이 되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뭐 이렇게 묻길래 또 네를 눌렀어요. 그 다음 질문이 그걸 알고 있으면 수정안과 원안 중 어느쪽을 지지하느냐고...
돌 : 걔들 완전 웃기다. 유도심문을 그렇게 티나게 하나.
안 : 뭐 그래서 뭐라고 하든 또 원안을 눌렀어요 그 다음 질문이 세종시 수정안이 과학 무슨 벨트 중이온 가속기 뭐라던가.... 하여튼 과학연구원 어쩌구 저쩌구 해서 몇조원이 투자되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렇게 묻더라구요.
돌 : 여론조사가 아니라 대국민 광곤데요.(웃음)
안 : 그렇게 물어서 또 네 누르고. 그다음에...
돌 :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 수정안과 원안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웃음)
안 : 네. 그래서 또 원안 누르고.
돌 : 흐, 집념의 원안. 넘어가지 않는 재우씨.
안 : 그 다음 질문이 세종시 수정안이 고려대 땅 몇십만평에 수천억원, 또 카이스트 몇십만평에 수천억원, 학생교직원 유치 수만명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고...
돌 : 네를 누르면 또 그 다음은 수정안과 원안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웃음) 최고다!
안 : 고려대(서창캠퍼스)는 원래 연기군(세종시가 연기군(조치원)과 공주 장기면의 통합)에 있고 카이스트는 차로 10분거리 대전 유성에 있는데 이건 뭐 눈감고 아웅이죠. 남들이 보면 뭐 대단한 대학들 유치하는줄 아는데 사람들 한테 또 거짓말 치는 거예요. 서울 경기에 있는건 떼주기 싫으니까 지방인근에 있는거나 땡겨가져가라 이겁니다... 참. 그리고 대학이 그 수천억원을 삽질한다면 그 돈은 학생들 등록금 인상의 또 한 요인이 되겠죠.
돌 : 흐. 걔들 하는게 원래 그래요. 그런데 그게 통한다는 게 문제죠. 종부세를 서민이 반대해 주는 좋은 나라가 괜히 된게 아닙니다. (웃음) 선생님. 그럼 조사할 때 보기는 두개뿐인 게 확실한가요? 세종시 건같이 국민들이 세세하게 파악을 못하고 있는 정책들은 DK그룹(Don''t Know - 부동층 또는 유동층)이라고 꼭 무응답이나 모름같은 보기를 둬야지 제대로 된 여론조사가 되거든요.
안 : 1,2번만 있었어요. 대충 수정안이 이렇게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뭐 이렇게 물어본 다음에 예, 아니요로 대답하라 그러고...
돌 : 음, 홍보성 멘트 날린 다음에 무조건 예, 아니요.
안 : 네. 그리고 그 다음에서야 수정안, 원안을 묻는 거죠. 이상한게 오전에도 전화를 받았거든요. 오전에는 지방선거 관련조사였는데 목소리도 똑같고 그... 똑같이 자동응답기였죠. 그런데 오후에는 그런 식이었던 거죠. 오전에는 정상적으로 제대로된 여론조사 였는데.
돌 : 아, 목소리 톤은 똑같았나요? 같은 여론조사기관?
안 : 네. 제 생각에 그런 것 같아요. 아니면 한나라당에서 그냥 대놓고 홍보하는 건가.(웃음)
돌 : 혹시 처음에 시작하는 말 같은 것 기억 안나시나요? 무슨 무슨 여론조사 기관이었다든지...
안 : 그...처음에 그걸 흘린 다음에 들어가지구.... 갑자기 전화를 받으니까.
돌 : 아, 그게 진짜 아까워요.
안 : 저만 아니고 다들?
돌 : 네. 다들 그냥 갑자기 전화를 받으시니까. 그걸 못 들으셨어요. 그걸 잡아서 조져야 되는데.(웃음) 선생님, 혹시 전화 추적은 불가능한가요.
안 : 저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전화를 받은 거라 대표자님께 허락을 받고 추적을 해야하는데 그 분이 워낙 보수적인 분이시고 제가 그런 일로 신원이 알려지면 안되니까... 정말 죄송해요.
오기 전에 뻔히 상황을 들었으면서도 한번 더 부탁을 한 내가 더 미안했다.
돌 : 아닙니다. 이렇게 나와 주신 거만 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들어가서 추적하고 싶지만 선생님이 곤란해 지시면 안되니까... 그런데 신기한게 회사로 전화가 오네요?
안 : 아마 대표자 이름으로 전화가 되있으니까 전화가 그렇게 온게 아닌가 생각해요.
돌 : 그런데 회사에는 책상이 막 여러개 붙어 있지 않나요? 전화를 받을 여건이...
안 : 아, 전 혼자 써요. 사무실이 따로 있어서. 주위에 아무도 없고 하니까 뭐 여론조사도 하고. (웃음)
돌 : 실례지만 무슨 회사세요? 이건 기사엔 안 넣을 겁니다.
잠시 회사 이야기가 오갔다. 놀랍게도 이명박 정부 정책의 수혜를 입는 곳 중 하나다. 그래서 더욱 이름을 공개하기 힘드니 독자 여러분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
돌 : 제가 오기 전에 세종시 여론조사 관련 기사를 쫙 훑어 보고 왔는데 이게 아무래도 공정하지가 않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런건 모름, 무응답을 넣어 주고 안 넣어 주고에 따라 결과가 확 바뀌는데 그것도 무시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가 하면 수정안만 강조하니... 선생님 제보를 보면 그런 홍보성 유도 심문 까지 있으니... 이건 완전 아닌거죠.
안 : 근데 이거에 대해서 자유선진당인가 거기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돌 : 아, 여론조사에 대해서 다들 조금씩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렇게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거랑 일반 시민이 말하는 거랑 다르죠. 또 선생님처럼 내용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전국적으로 볼때 어떤 당이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한나라당이 그러니까 무조건 반대하는 거다, 민주당이 그러니까 무조건 반대하는 거다 이렇게 이해를 할 수 있는데 일반 시민이 이야기하면 진정성이 느껴지는 거죠. 이게 기폭제만 있으면 한번에 터질 수 있는 사건인데 또 우리 메이저 아저씨들이 묻어주고 안 써주니까.(웃음)
현재 내 한계가 여기까지다. 젠장.
돌 : 이명박 정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 음. 이 정권이 무서운게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 자기들은 절대 선이고 다른 편은 악이라는. 그러니까 과거 부시정부 같은... 그래서 국민들이 아무리해도 안될 거예요. 임기 끝날 때까지는. 그런데 또 다음은 그 분이잖아요.
돌 : 아 이건... 무슨 상황이라고 해야돼지.(웃음)
안 : 그래도 박근혜는 MB보다는 국민들 의견을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존중하고.
돌 : 그런데 그런 얘긴 없나요? 미디어법 때처럼 박근혜가 마지막에 발을 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안 : 그런데 제 생각에는 그렇게까진 안할 것 같구요. 박근혜같은 경우엔 어쨌든 일정한 보수 지분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 쪽에서 손을 완전히 놓진 않을 거라 말이예요. 그러면 박근혜는 이번 기회가 지지층을 더 넓히는 효과가 될 것 같아요.
돌 : 하긴 이번 싸움이 크죠.
안 : 네,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반면에 민주 쪽은 너무 분열되서.... 정말 이번 선거에서 연합이 되면 호응이 크겠지만 분열되서 다 따로따로 나온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은 완전히 실망하겠죠. 그런 면에선 한나라당 자체는 원안이 되든 수정안이 되든 선거에서 크게 손해볼 건 없을 것 같고.
돌 : 그게 제일 무서운 거죠. 흐.
정치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어떤 정치인을 좋아하는지가 궁금해졌다.
돌 : 선생님 개인적으로 어떤 정치인 좋아하세요?
안 : 아.. 개인적으로 김대중 대통령 좋아했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뭐랄까... 인간, 그냥 인간적이었어요. 참 안됐죠.
돌 : 저도 인간적으론 노무현을 좋아하는데 정치인으로 가장 훌륭했던건 김대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 노무현 대통령이 참 안된게 정말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 그런게 좋았는데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어요. 공격하는 사람도 너무 많았고...
돌 : 타고난 투사죠. 대신 싸웠던 사람.
이 뒤로는 서로의 정치적인 견해가 이어졌고 약 1시간 동안 잡담했다. 그 사이에 학교 뿐만 아니라 군대도 선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놀랍게도 같은 사단, 같은 연대, 같은 중대에서 근무했던 사람이었다. 사람 인연이란게 어디서 어떻게 맺힐지 모르는 듯하다.
결국 이번 기사를 쓰면서 가장 중요한 '여론조사 기관명'은 알아 내지 못했다. 앙코 없는 찐빵을 내 놓는 것 같아 독자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 뿐이다. 몇번이고 더 졸라서 몰래라도 전화번호 역추적을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이분께 그 이상의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내게 그런 마음을 먹게 했던 건 이분이 인터뷰를 하면서 했던 아래의 말 때문인 듯하다.
"애기가 있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하루 시작할 때 애기 얼굴 보면 살맛나고 퇴근하고 올 때 애기가 안기고 그러면 참 좋아요. 지금 다섯살이거든요."
딴지스, 정말 미안하다. 어떻게 다른 곳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도록 노력해 볼께. 위 인터뷰 내용과 같은 전화를 받았던 독자분들은 편집부로 제보 부탁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딴지일보 정치부 죽지 않는 돌고래(tokyo119@naver.com)
*. [최초 단독 공개]세종시 여론조사 조작 후속기사 - 녹취본 찾았다!
딴지일보 원본 주소 : http://www.ddanzi.com/news/89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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