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책 보다는 논문을 읽는 데 재미를 붙였다. 세상이 좋아져 안방에서 원하는 논문을 검색해서 마음대로 볼 수 있으니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말로 좋은 세상이다. 최근에 재밌게 본 논문은

<해방 후 단정노선을 둘러싼 이승만과 김구의 대립에 관한 연구 :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 Confrontation of Rhee Syng-man and Kim Gu Regarding Separate Government in the Post-Liberation Period : From the Perspectives of Power Struggle>

이라는 제목인데 저자는 송두영, 숭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 논문이다. 관심있는 사람은 RISS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위 논문에서는 이승만뿐 아니라 김구도 권력 의지를 가지고 이승만과 경쟁했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출발한다. 그러니까 이승만의 단정도, 김구의 단정 반대도 모두 권력쟁취를 위한 한가지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권력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개인적으로 이승만이 평생에 걸쳐 보여주었던 그 무시무시한 권력에의 집착이 김구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관점과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하는 것이 학문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논문을 쓴 저자도 해방 후 일정기간 동안 이승만과 김구의 권력경쟁에 한정하여 연구하였음을 고백하고 김구의 순수한 민족주의 사상을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승만의 국제정세를 읽는 감각은 역대 한국 대통령 중 가장 탁월한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이러한 능력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을 뒷받침할 '뜻'과 '의지'가 너무 편협했다. 이승만의 경우, 그 편협함이 가져오는 편협한 지지층에 대한 위험을 잘 알고, 그것을 잘 이용했기에 권력을 쥐는데 성공했으며 또 그로 인하여 수많은 오점을 남겼다. 

나도 감정을 가진 인간인지라 취재를 하며 이승만이 학살한 유족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이승만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인 거부감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승만의 공과는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데는 적극 동의하나 우파도 좌파도 이승만이 행한 대학살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점이 이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이 아닌가 한다. 대한민국에서 제 나라 대통령이 명령한 대학살에 대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배울 수 있을 때, 한국이라는 나라의 청년들이 그나마 바른 안목으로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아래는 위 논문의 국문초록이다.






  • 국문초록

    해방 후 단정노선을 둘러싼 이승만과 김구의 대립에 관한 연구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정치외교학과 송 두 영
    指 導 敎 授 서 병 훈

    1945년 해방이 되자 미‧소 점령군이 한반도 남북으로 진주하였고 한국은 소용돌이치는 정치 상황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렇게 한반도가 권력의 진공상태가 발생하며 3가지 특수한 정치상황이 발생하였다.

  • 이때 한국의 정치지도자인 이승만과 김구는 한반도가 처한 정치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며 각각 단정과 단정반대를 주장하였다. 그 당시 특수한 3가지 정치상황은 다음과 같다.

  • 첫째는 국제정세로 미‧소 점령군이 남북으로 진주함으로써 한반도는 남북이 분단되며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 둘째는 국내정세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져 미‧소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남북의 정치상황이 각각 달라졌다.

  • 셋째는 남북 간에 이데올로기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서로 분리되면서 남북이 이념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방되어 권력의 진공상태가 된 한반도에서 이승만과 김구가 국제정세와 국내정세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노력하면서 상호 대립하고 투쟁하였다.

  • 이러한 두 사람의 투쟁 방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것이 단정과 단정반대였다. 이승만은 단정을 주장하였고, 김구는 단정을 반대하며 둘은 극명하게 대립하였다. 이승만의 단정 주장은 해방된지 얼마 안된 한반도가 다시 분단이라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오늘날까지 그 분단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반면 김구의 단정 반대는 한민족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통일정부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으로 비추어졌고 그 실패는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구나 이승만이 단정을 주장한 것이 해방 정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력히 하고 권력을 쟁취하고자 한 방편이었다는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김구의 가치를 더 높이고 있다.

  • 하지만 단정을 둘러싼 이 두 사람의 대립은 권력의 추구라는 관점에서 다시 고찰 될 필요가 있다. 해방정국에서 두 정치지도자들은 똑같이 서로가 권력을 쟁취하려고 경쟁했음에도 불구하고 김구는 아직까지도 권력과 상관없는 우국지사로 또는 민족주의자로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김구에게는 권력을 잡기 위하여 단정을 주장했던 이승만과 비교되면서 권력과 상관없이 오직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며 단정을 반대하는 민족주의자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이승만은 물론이거니와 김구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이승만과 똑같이 서로 경쟁하며 권력을 추구했다는 것을 밝혀 보고자 한다. 즉 김구 역시 자신의 권력에 대한 의지를 단정 반대를 통해 드러냈으며 권력쟁취를 위해 단정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이러한 본질을 규명하고자 제 1장에서는 상기와 같은 문제제기와 가설을 제시하였고 선행 연구를 검토하였다.

  • 제 2장에서는 인간의 권력추구에 대한 이론 및 인간의 욕망에 관한 문헌을 정리하였다.

  • 제 3장에서는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국내‧외 정세의 전개와 해방 후 이승만과 김구를 중심으로 한 권력지도를 살펴보았다.

  • 제 4장에서는 이승만의 권력의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어떻게 활용했고 또 국내정세는 어떻게 이용했으며 반공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조사하고 어떤 명분으로 단정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는지를 분석했다.

  • 제 5장 에서는 김구의 권력의지를 재조명했다. 그의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 틀은 권력쟁취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와 김구의 반탁과 남북회담 등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남한총선에 반대하고 불참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했다.

  • 제 6장에서는 이승만과 김구의 권력경쟁을 살피기 위하여 종합적으로 자세하게 이들의 권력쟁취를 위한 행동들을 증거에 의하여 분석하고자 했다. 그래서 제 1절에서는 이 두 사람의 정치행태와 권력의지를 중점적으로 분석 하였다. 제 2절에서는 두 사람의 정세인식을 분석했으며 제 3절에서는 이승만의 권력쟁취를 가능하게 한 요인을 중점 분석했다.

  • 마지막으로 제 7장에서는 본 논문의 종합적인 결론을 제시하였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