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反 - 8점
박재동 외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책 내용 자체도 훌륭하지만 홍세화씨의 서평은 다시봐도 명문이다.


십시일반 / 국가인권위원회 기획(박재동 외) / 창비
초판1쇄 2003년 8월 5일, 초판8쇄 2004년 6월 10일


이상한 동물 - 홍세화 서평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다. 이 세상에 자기와 아주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끔찍스럽게 여기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반기지도 않는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와같은 인간의 이중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남에 비해 자기가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는 인간의 저급한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이런 속성은 필연적으로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다.

 이성(理性)에 눈뜬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문화를 만날 때 서로의 장점을 주고받으려고 노력한다. 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성숙하기를 기대하며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싸운다.그러나 이성에 눈뜨지 못한 인간은 자기완성이나 성숙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스스로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애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남보다 내가 더 낫다는 점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려고 남과 끊임없이 견주는 것이다. 자기 성숙을 위해 내면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에게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게 해주는 것은 그의 소유물이며, 그가 속한 집단이다. 소유물과 소속집단은 인간 내면의 가치나 이성의 성숙과는 무관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직 '무엇을 소유하고 잇는가'에만 관심을 두고 서로 비교하면서 경쟁한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라고 했지만, 그 말이 오늘날엔 통하지 않는다. 옛날에 비해 사람들의 곳간에 재물이 차 있는 게 분명한데 사람들은 옛날에 비해 여유있는 인심을 보이기는커녕 더 야박해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하나의 요인이겠지만, 경쟁의식이 더 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회구성원들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대한민국 1퍼센트"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따위의 광고를 무심코 바라보고 있다. 남보다 많이 소유하면서 만족해하는 인간의 속성을 겨냥하고 있는 이런 광고에 대해 누구도 거부감이나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광고를 일상적으로 보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없을 만큼 이 사회의 물신은 가히 위력적인데, 이런 사회에서 소비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은 박탈감을 느끼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아예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 흔히 말하듯 가난은 그 자체로 이미 죄가 되었다. 죄진 사람에게 인권이 무슨 대수인가.

 가난이 죄가 되는 사회에서 이렇다할 학벌이 없고 내세울 집안이 없고 '빽'없는 사람들은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손쉬운 차별의 대상이다. 비장애인, 남성, 이성애자, 내국인들의 우월성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희생양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저급한 정치인들은 이 점을 이용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애쓴다. 소유물에 집착하는 사람들 또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자신을 구별짓는다. 내가 속한 집단은 항상 옳거나 정상이고 남이 속한 집단은 항상 그르며 비정상이라고 주장한다.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그런 타성이 반영된 것이다. '틀린' 타자는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추방되어도 괜찮다. 다수와 강자의 집단은 자기 집단의 우월성을 스스로 확인하고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 힘의 논리를 동원한다. 집단적 차별은 아주 쉽게 인권침해를 불러온다.

 가령 동성애자는 사회에 따라 그 비율이 4 - 12%로 나타난다고 한다. 즉 동성애자들은 그렇게 태어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다수파인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이라고 비난한다. 무릇 잘못된 행동이나 발언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있으되 존재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없음에도 동성애자들은 소수라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왕따'의 대상이 된다.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은 자기의 성적 정체성을 부정하라는 사회적 폭력 앞에 놓여 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에게 "어이, 그래 한달에 얼마 벌어?" 라고 거리낌없이 반말을 건네는 내국인들에겐 분명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우월감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내놓을 장점이 없는 사람일수록 우월한 집단에 귀속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는바, 여기에 인종적 편견이 번질 위험이 자리잡고 있다. 실상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한국인의 우월감은 백인들에 대한 비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실제로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표시하는 사람일수록 비굴할 정도로 백인들을 선망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겐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해 은근한 친근감을 드러내는 척하는 게 고작이지만 백인에게는 받는 것도 없이 간까지 꺼내줄 양 친절을 베푼다. 그러한 점은 미국에게는 마냥 '바치기'를 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반면, 굶주리는 북한에 대해서는 '퍼주기'라고 떠들어대는 것에 부화뇌동하는 모습과 상통한다.

 나의 사상과 신앙만이 옳다는 믿음이 지나칠 때, 다름의 관계는 '나는 선'이고 '남은 적'이라는 적대적 선악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근본주의는 나와 다른 남을 타도, 배제, 추방하도록 요구한다. 악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남을 '다른 그대로' 용인하라는 똘레랑스 사상이 유럽 땅에서 생겨난 것은 16세기 같은 하느님의 자식이면서 신,구교로 갈라져 서로 잔인하게 죽이고 전쟁을 일으켰던 인간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산물이었다. 우리는 20세기에 같은 민족이면서 사상과 체제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잔인하게 죽였고 전쟁을 일으켰지만 아직도 상대방을 탓하거나 냉전 상황을 탓하고 있을 뿐이다.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잇는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아직 부족하여, 나와 다른 사상, 나와 다른 신앙과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기꺼이 동의해왔다. 이 사회에서 차이는 차별의 정검다리 없이 곧바로 인권침해를 불러왔던 것이다.

(후략)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