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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뚱멀뚱 샤워실을 쳐다보는 나, 기다리느라 지쳐 고개숙인 친구>
 
 
드디어 3번째 이야기.
 
 
 
*. 전편의 이야기는 아래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요코하마의 닛산 스타디움, 한번만 더 이겼더라면 올 수 있었던 그 곳
 
눈물의 축구팀, 요코하마FC의 역사
 
 
 
국가대표인 우리OO형(녀석은 꼭 우리OO형이라고 말한다)을 만나는데
 
감히 우산(정확히 '우산따위'라고 말했다.)을

 쓸 수 없다는
 
녀석의 말을 듣고
 
보슬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기다린지
 
벌써 2시간째.
 
우리의 불안은 갈수록 커져 갔다.
 
요코하마FC선수들이 연습을 마치고
 
하나둘씩 계속해서 나가기 시작하는데
 
국가대표인 '우리OO형'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연습장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오지 않은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주위의 일본팬들에게 물어봐도 
 
모두들 모르겠다는 답변 뿐.
 
그들도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몇시간을 기다렸지만
 
연습장까지의 거리가 멀어서인지 얼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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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한민국 모든 축구팬들의 적이었으며 한일전 역사상 첫 패배를 안겨준
 
미우라 카즈요시, 그도 지금은 요코하마FC소속>
 
 
어쨌든
 
OO형을 기다리는 사이에 일본의 옛 축구영웅인 미우라가 등장했다.
 
일본 내에선 '축구전설'로 불릴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선수이며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세리에A-세계 3대축구 리그로 이탈리아의 1부 리그-에 진출한 선수다.
 
(한마디로 위닝에 '일본클래식'이 생기면 꼭 들어갈 선수)
 
일본 내에서의 인지도로 치자면
 
 명보형 급의 선수랄까.
 
실제로
 
명보형과 미우라 선수
 
일본의 스포츠 전문잡지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위하는 애틋한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는데
 
이 두사람의 인연이 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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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본의 축구영웅 미우라, 아직도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많았다>
 
 
오래된 일이라 다들 잊었을지 모르지만
 
94년 월드컵 예선을 기억해 보자.
 
2002년도 감동이었지만
 
94년의 감동 또한
 
그에 못지 않았음을
 
많은 이들은 잊고 있다.
 
 
때는 94년 미국 월드컵.
 
그때가 바로 '도하의 기적'이 일어난 해다.
 
당시 한국은 D조 1위로 최종예선에 진출,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북한등
 
아시아의 강호들과 함께 
 
단 2장인 월드컵 본선티켓을 두고 격전을 예정 중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결과는
 
3:0.
 
이란을 대파했으나
 
그 다음 경기부터는
 
왠지 서서히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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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분이 오늘의 주인공, 누군지 맞춰보자>
 
 
2:2로 이라크와 무승부.
 
1:1로 사우디와 무승부.
 
그때만 해도
 
한국은
 
1승 2무로 조 2위,
 
일본은
 
1승1무1패로 조 4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앞서고 있다고 하지만
 
단 한경기에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는,
 
그야말로
 
한경기, 한경기가 살얼음판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많이 누그러 졌지만
 
당시만 해도'한일전'이라면 정.말.로.대.단.했.다.
 
애국가가 나올때 선수들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 비장했으며
 
언론의 헤드라인에도
 
'임전무퇴', '필사즉생'등의 사자성어가 튀어나오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모든경기에 져도 한일전에서 이기면 용서가 되는,
 
모든경기에 이겨도 한일전에서 지면 죽일놈이 되는 때였다.
 
그렇다.
 
아직 그런 시대였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한과 눈물이
 
100배는 더 짙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39년간 일본에게 만큼은 단 한번도 지지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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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사진으로 소개됐던 일본의 축구팬과 함께 기년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런 OO형>
 
 
 
하지만
 
 
 
 
... ...
 
 
 
 
이 기록은 후반15분,
 
미우라 카즈요시에 의해 깨지고 만다.
 
그는
 
대한민국에게
 
'39년, 한일전 역사상 첫 패배'와
 
'조 3위로의 추락'이라는
 
끔찍한 지옥을 선사한 것이다.
 
(이것이 미우라가 대한민국 모든 축구팬들의 적이 된 이유이며
 
또한
 
일본 축구영웅으로서의 업적 가운데 하나 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는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한국은 자력으로는 월드컵에 진출할 수 없는 상황.
 
북한을 두골차로 이겨야 하며 
 
사우디나 일본, 두 팀중 한 팀이
 
비기거나 져야만
 
미국땅을 밟을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경기시작.
 
 
 
... ...
 
 
 
 
모든 경기는 같은 시간에 진행됐다.
 
한국 : 북한
 
사우디 : 이란
 
일본 : 이라크
 
당시 북한과의 경기 내내
 
우리는 TV밑의 자막과
 
해설자의 말에 오감을 곤두세워야 했다.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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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한, 거의 대문짝만한 정면사진. 이래도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 기대는 곧 무너졌다.
 
사우디는 이란을 4:3으로 눌렀고
 
일본은 이라크를 2: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인저리 타임에 들어갔다.
 
한국은 북한을 3:0으로 이겼지만
 
모든 선수들은
 
경기장에 멍하니 서서 울먹이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몇초 뒤면 일본은 이라크를 누를 것이고
 
자신들의 월드컵 행이 좌절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39년 한일전 역사상 최초로 일본에 패한 대표팀이 되는 것이며
 
게다가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했고
 
하물며
 
그 티켓을 일본에 갖다바친 대한민국의 역적들로 기록될 것임
 
 
 
그.
 
 
들.
 
 
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무거운 마음이었을까.
 
얼마나 답답한 마음이었을까.
 
 
 
 
 ... ...
 
 
 
 
하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10초.
 
그래.
 
10초 였다.
 
경기종료 10초를 남기고
 
이라크의 자파르가 일본에게서 동점을 뽑아낸 것이다.
 
일본의 사상 첫 세계무대진출을 불과 10초 앞둔 상황.
 
기적은
 
일어난 것이다.
 
한일 스포츠 역사상
 
다섯손가락 안에드는 반전이었다.
 
이렇게도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자파르의 골이 일본 골네트를 흔드는 순간,
 
울먹이던 한국 선수들과 고개숙인 한국응원단은
 
기쁨에 넘쳐 환호성을 터뜨렸고,
 
몇초후면 국가적인 영웅이 될 기쁨에 차 있던 일본 선수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으며
 
일본응원단은 대성통곡 했다.
 
그야말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국은 이 사건을
 
'도하의 기적'이라 부르지만
 
일본은 이 사건을
 
'도하의 비극'이라 부르는 것이다.
 
경기 후 미우라 선수는
 
'축구의 신이 있다면 따지고 싶다'는 말을 했고
 
94년 월드컵 내내 이 기억이 자신을 눈물짓게 만들었다고 했다.
 
 
 
 
 
... ...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
 
이 법칙이 너무나도 솔직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확연히 드러나기에
 
스포츠는 우리를 더욱 울고 웃게 만드는 듯하다.
 
이 반대상황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한국과 일본은
 
적어도
 
스포츠에 있어서 만큼은 좋은 라이벌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위 경기는 기막힌 상황과 운에 좌우된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라도)
 
과거의 역사적, 정치적 문제는
 
양국이 분명히 짚고 따져가야할 문제임에 틀림없지만
 
스포츠에 있어서 만큼은
 
서로에게 있어서 정말로 좋은 자극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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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녀석이 너무 큰 소리로 부르자 어안이 벙벙해진 최성용 선수>
 
자.
 
잡설이 길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을 제대로 만나보자.
 
왼쪽에 계신 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국가대표 성용이 형.(최성용 선수) 
 
친구 녀석은 20미터 전방에서 성용이형이 보이기 시작하자
 
바리케이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방방 뛰더니 
 
정.말.로.큰.소.리.로
 
(아니, 악을 썼다는 표현이 옳을 듯 하다.)
 
 '성용이형. 접니다. 저. 왜 이제 나와요! 빨리 좀 와요! 아 참. 빨리! 빨리!'라고 외쳤다.
 
생각해 보자.
 
우리 말고는 단 한명의 한국인도 없는
 
일본팀의 연습장 옆, 그것도 일본팬들이 쫙 깔린 그 곳에서
 
한국말로 그렇게 크게 외치며 난리를 치니
 
이목이 집중되지 않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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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웃음을 되찾는 최성용 선수, 외국에서 이런 녀석을 만날지 상상도 못했을 듯.>
 
 
주위의 모든 일본팬들이 갑자기 숨을 죽이고 우리를 지켜보기 시작했고
 
꽤 커다랗게 빈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실은 차례대로 줄을 서서
 
싸인을 받고 기념촬영을 해야 하지만
 
녀석이 하도 크게 소리를 지르고 반가워 했더니
 
성용이형이 제발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 준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팬들은
 
우리들이 성용이 형과 친한가 보다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성용이 형도 얼마나 당황했을까.
 
아직 첫 경기도 치르지 않은 상황,
 
그것도 이국땅에 잠시 몸풀겸 연습삼아 왔는데
 
고함을 치고 방방뛰며 자신을 부르는 녀석을 만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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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를 건네는 최성용 선수와 그 손을 덥썩 잡더니 놓을 줄을 모르던 녀석.>
 
 
그 뒤 녀석은 더욱 대단했다.
 
언제부터 팬이 었다느니 부터 시작해서
 
한국에 있을 때 응원많이 갔는데 기억안나느냐는 둥
 
어떻게 기억못할 수가 있냐는 둥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던 성용이 형이었지만
 
점점 웃음을 찾기 시작했고
 
외국에서 만난 이 재미난 녀석때문에
 
'야.야. 좀 시끄러. 너 조용조용히 얘기안해.'
 
라는 말을 연발했지만 기분은 정말 좋은 듯이 보였다.
 
하긴 그럴것이
 
이 타지에서, 그것도 첫 경기도 뛰지 않은 자신을 위해
 
어디선가 정보를 알아와서는 
 
몇시간을 기다리며
 
(정말 그렇다. 우리는 아침부터 잠을 설치며
 
이곳으로 향했고 비를 맞으면서도 몇시간을 기다렸다) 
 
응원하는 자국땅의 팬을 만났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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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는 성용이 형과 너무 좋아서 웃음을 감출줄 모르던 산적같은 내 친구, 창희.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뒤의 일본팬들.>
 
 
 
 
물론 그 모든 우리의 응원과 성원은
 
분명
 
전 국가대표라는 위치앞에서는 쉽게 무시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성용이 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말로 우리를
 
자국땅의 친 동생처럼 대해 준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녀석과 대화하던 성용이 형은
 
몇분뒤 일본팬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처음에 말했듯, 줄을 선 순서대로 사인을 받고 기념촬영을 해야 하는 것인데
 
성용이 형 또한 녀석 때문에 당황해서 그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었다)
 
'야.야. 너 절루가. 시끄러. 시끄러.'
 
라며 우리를 일단 옆으로 제쳐 두었다.
 
(그 말투와 표정이 정말 전 국가대표 답지 않은,
 
 정말로 친동생에게 할 법한 농담조의 말투여서 우리를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정식으로 줄을 서서 또 사인을 받으러 오자
 
'야야. 너 또 왔냐. 왜 자꾸와'
 
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엔
 
'야. 언제 우리 집에 와. 밥 한번 같이 먹자'
 
라는 말을 건넨뒤 연습장을 빠져 나갔다.
 
농담이라도
 
전 국가대표선수에게
 
'집에서 밥한번 같이 먹자'는 말은 쉽게 들을 수 없을 듯하다.
 
 
정말로 환한 웃음에
 
친형같이 툭툭 말을 건네던 최성용 선수.
 
그리고
 
98,02년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표선수였던 최성용 선수.
 
뛰어난 실력과 기량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대표적인 선수중의 하나인,
 
이 묵묵하고 성실한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계의 버팀목이
 
이 일본땅에서 반드시 원하는 바를 이룩했으면 좋겠다.
 
최성용 화이팅!
 
 
 
 
 
 
 
 
 
P.S.1 : 본문에서는 소개하지 못했지만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재일교포 정용대 선수에게도 응원을 보냅니다.
 
 
P.S. 2 : 성용이 형을 만나게 해준,
 
그리고 특별한 경험을 겪게 해 준 친구녀석에게 고마움을!
 
 
 
 
*. 최성용 선수를 당황하게 했던 녀석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링크를 참조-.
 
 
 
 
 
 
눈물의 축구팀, 요코하마FC의 역사
 

 

 



 *. 이 글은 오래 전, 제 유학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현재 최성용 선수는 일본의 '자스파 쿠사츠'팀의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BY 죽지 않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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