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제한된 조건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 또한 퇴근 시간, 차가 엄청 막혀 으으으음, 하는 제한된 조건 속에 있는 김에 잡담이나 한다. 


2.
꽤 오래 교도소에 갔다 온 전과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인간을 이해하는 범위가 조금 늘어나는 느낌이다. 인간은 구속되는 만큼 자유로워 진다고 할까.


예를 들어 내게 군대는 훌륭한 경험이었다. 군대에서 생활한 친구(그때는 친구가 아니었지만)들과 많이 만나는 편인데, 군대에서는 대략 그 사람의 최저점과 최고점이랄까, 보고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춥고 배고프고 육체가 고되면, 특히 GOP같은 곳의 겨울은 잠도 제대로 못자니까(여름은 의외로 편하다)인간이 매우 날카로워지는데 이럴 때면 각자 더러운 기질이 나와버린다. 서로가 어떤 인간인지. 


특히 선임이 잘 보인다. 해서 지금도 친한 선임들이 몇 있다. 내가 어떤 인간의 범위를 대충 아니까, 그런 게 보이는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역설이랄까. 이건 사회에선 오래 같이 지내도 알기 힘든 부분이다.


후임의 경우엔 잘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밑에서 보면 잘 보이는데 위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부분이라도 갑의 입장에선 을의 인간됨을 좀처럼 알기 힘들다. 해서 후임이나 동생의 인간됨을 알려면 그나마 친구처럼 지내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른 예를 들자면 연애 관계에서도 사랑받는 쪽보다 사랑하는 쪽이 상대방을 더 잘 볼 수 있다. 인간은 가능하면 편해지고 싶다. 이득을 보려는 유혹을 받기에 사랑받는 쪽이 자신이 우위에 섰다고 알아채면 인품이 크게 좋지 않은 이상 이용하려 드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보이는 것이 많다.


3.

다시 이야기를 돌리자면, 전과자들은, 인간의 조그마한 욕망이나 욕심을 알아채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해서 의외로 마음이 통하면 조언을 받을 일도 많다. 물론 서로가 어떤 이해관계도 얽혀있지 않다는 조건 하에서.


남자와 여자 전과자는 각자 알아채는 종류의 차이가 다르고 범죄의 종류에 따라 잘 보는 욕망의 종류도 다른데 내가 못 보는 것을 보고 말해주니 신기하다. 가끔 곤란에 처했을 땐 도움을 주려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게 되버리면 신세를 지게 되고 성격상 빚을 갚아야 하니 뭔갈 부탁하진 않는다.


4.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교도소에서 몇 년 살다 출소한 어떤 분이 소개해 준 이다.


1심에서 살인으로 유죄를 받고 구치소에서 한참 있다 2심에선 무죄를 받았다. 나와 있는 김에 서로 순수하게 잡담을 나눴는데 다시 살인이 될까 걱정도 하고 이것저것 스트레스가 많아 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나는 그가 정말 살인을 했을지 궁금해 형에게 물었는데 함께 감옥에 있었던 사람도 모르겠다 했고 나도 모르겠다. 실제 살인을 한 사람들의 느낌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살인자를 많이 안 만나봐서 그런지 내가 둔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5.

서로 약속한 것은 말하지 않거나 기사로 쓰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주는 덕에 여러 범죄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안 밝혀지는 것들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1심에 살인을 받고 2심에 무죄를 받은 그는 요즘은 인권이 좋아지고 교도관들이 조금만 험하게 대해도 수감자들이 인권위원회에 신고하니 아주 편하다 했다. 오히려 좀 더 빡세게 해야된다는 말까지 하며 한 번은 갔다오면 좋은 경험이 될 거라 했다.


호기심이 강한 나는 쭈욱 듣고 있다가 아, 그럼 군대같은 거네요, 하고 툭 던지니


"아, 군대보단 100배 힘들지요" 라고 했다.


그 말이 인상적이었다. 군대보다 100배 힘들면 도대체 얼마나 힘든 거지. 그런 건 있어선 안되는 것 같은데. 


6.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리 호기심이 강해도 교도소는 일부러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은 것 같다. 갔다 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제사범 쪽은 그나마 괜찮은데 폭력 쪽 방은 아무래도 함께 있는 사람들에 따라 많이 힘든 듯하다. 


이상, 차가 엄청나게 막힌다는 교통정보도 전하며 오늘의 두서 없는 잡담은 마무리.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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