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이해하는 9가지 관점 - 8점
우수근 지음/살림




중국에 여행갈 때 읽은 책이다. 내가 장정일은 아니지만(작가 장정일은 어딘가로 여행을 가면 그 나라에 관련된 책을 한보따리 들고 가 읽고 온다고 한다).

살림지식총서가 그렇듯, 이 책도 얇다. 핵심만 간편하게 뽑아 놓았다. 허나 내용이 질이 양과는 반비례한다. 중국으로 처음 출장가는데 뭐라도 좀 알아야 겠다 하는 분들은 비행기 안에서 읽기에 좋겠다. 


가성비가 그만이다. 




46. 중국을 이해하는 9가지 관점 / 우수근 / 살림 

초판인쇄  2008.07.10

 

 상상을 불허하는 개인주의

 

 중국사회의 개인주의는 미국이나 서구유럽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개인주의를 본질로 하는 서구사회도 아닌 중국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미국인 중국전문가 S. W. 모셔에 의하면, 기원전 1100년부터 청 왕조가 붕괴되는 1911년까지, 중국에서 발발했던 전쟁은 총 3,790회다. 믿기 힘든 수치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1.26회가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국지적 충돌이나 싸움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결국 이 숫자가 나타내는 것은 중국이 온갖 대립이나 다툼, 약탈 및 전란이나 정쟁 등과 같은 치안 불안이 끊이질 않았던 곳임을 잘 알려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인은 온갖 전란이나 기아, 약탈과 살해 및 숙청등과 같은 가혹한 역사와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중국인들은, 역설적으로, 혼자밖에 남지 않아도 살아남을 만한 강한 생존력을 지니게 되기도 하였다. 아무 것도 의지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별로 자각하지 않았으니, 결국 수천 년 동안 이 거대한 대륙에 존재하였던 것은 단지 개인들에 불과했던 것이다. 또한, 바로 이러한 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가운데 중국인들에게는 절대로 남을 신용하지 않는다, 믿을 것이라고는 오로지 돈뿐이다.’라는 신념 아닌 신념이 굳어지게 되었다.

 여기에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 홍무제洪武帝는 중국인의 독특한 DNA 형성사에 또 하나의 커다란 초석을 남겼다. 주원장은 원나라 말의 혼란기에 만연한 대기근에 의해 양친과 형제를 잃었다. 이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탁발승을 해가며 방랑속에 근근이 연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그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특히 지배층이나 부자들은 절대 신용하지 않는다.’는 삶의 철학을 깨우친다. 그가 건국 이후, 그를 도운 개국공신들도 믿지 못하며 숙청한 것은, 그의 개인 역정을 고려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특히 뛰어난 신하일수록 더욱 잔인하게 숙청하였으니, 1380년에는 최대의 공신이었던 호유용 胡惟庸도 제거한다. 이때 연좌되어 처형된 관계자는 15,000명으로 전해지고 있다. 1393년에는 무관의 최고위직에 있던 남옥 藍玉을 숙청하였는데, 당시 연좌되어 처형된 자는 무려 20,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철저하게 사람을 신용하지 못했으며, 혹시 있을 보복의 싹마저 완벽하게 제거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모습이 중국인들의 뇌리속에 뚜렷이 각인되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나와 돈뿐이라는 생각을 더 한층 굳게 만들었다.

 



 후흑학, ‘더 철면피가 돼라

 

 한편, 중국인의 유별난 개인주의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후흑학 厚黑學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 민국 초기를 살다간 이종오 李宗吾라는 자가 후흑학이라는 것을 제창했다. 여기서 ‘-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실천적인 생존방법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는 다양한 중국의 역사서와 서적 등을 탐독한 후, 중국인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철면피가 되고 더 철저하게 흑심을 지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웅도 될 수 없고, 천하도 호령할 수 없어 완벽한 성공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후흑에는 다음과 같은 3단계가 있다.

 

 1단계 : 철면피를 성벽과 같이, 흑심을 석탄과 같이 하라.

 2단계 : 두꺼우면서도 강하게, 검으면서도 빛나게 하라.

 3단계 : 두꺼우면서도 형체가 없이, 검으면서도 색채가 없게 하라.

 

 후흑의 극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철면피도 아니고 흑심도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경지는 쉽게 도달할 수 없다. 그야 말로 대성인이나 대현인이라 불리는 극수소의 위인들만이 이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누구든지 성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야 말로 곧 후흑의 극치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는 후흑을 행할 때는, 표면적으로는 반드시 인의와 도덕이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 “말을 명백하게 해서는 안 되고 애매모호하게 끝내야 한다.” 등과 같은 몇 개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 말미를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후흑학은 말하자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후흑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아서 역적에게 사용하면 선이 되고, 양민학살에 사용되면 악이 된다. 따라서 후흑을 선하게 사용하면 그 자는 선인이요, 악하게 사용하면 악자가 되는 것이다.”

 

『후흑학』은 1911년에 중국에서 발표되자마자, 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일세를 풍미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관권에 의해 위험한 서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여지며 금서조치 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생명이 거기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후흑학』은 지금까지도 현대의 중국대륙과 대만 등지에서 읽히며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중국인은 불리한 것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을 쉽게 하며,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안타까운 현상도 이 후흑학이 오늘날의 중국인들에게 활발하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후흑학이야 말로 중국과 중국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본질이 담긴 실천적 서적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자칫 중국과 중국인을 부정하는 것으로 들리기 쉽지만 그러한 의도는 전혀 없다. 가혹한 역사 속에서 연명하기 위해 저절로 몸에 밴 중국인 특유의 DNA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중국인과의 더 효율적인 교류에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거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후흑학』은 지금도 중국의 일반서점에서 성황리에 팔리며 읽혀지고 있다.

 


 

 흰개미들에 잠식되는 중국사회

 

 2006년 봄, 중국정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계열의 기관지 「당대아태 當代亞太」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 이유에 대한 연구 리포트를 게재, 다음과 같이 총괄하고 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강권적 정치수단으로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실현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정권내부에서는 대통령 자녀들을 중심으로 한 부정부패가 만연, 이 때문에 결국 국민의 저항을 초래하게 되었다.”

 

 수하르토의 운명은 자칫 중국공산당의 미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심각한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정부 또한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정부와 공산당 최고위층은 부패척결에 그야말로 진담을 흘리고 있다. 상당한 위기의식 속에 부패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탐관오리 킬러라 할 수 있었던 주룽지 전 총리가 이들로부터의 저항을 미리 각오한 듯,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탐관오리들 것이며 1개는 나의 것이다.”라고까지 했겠는가. 2008 6월에도 중국정부는 부패척결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의지를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부패와의 전쟁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나타낼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부정부패는 주로 공산당 간부나 관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데, 공산당 일당지배 국가인 중국에서 공산당에게 칼을 댈 만한 곳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모든 조직을 체크할 권한을 지니고 있지만, 공산당을 체크할 권한을 지닌 조직이 중국에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공산당 내부 감찰기관 등에 의한 단속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금의 현황을 보건데, 이러한 내부 시스템만으로는 너무나 극명한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이라는 국가는 현재 당정의 관리와 간부들이라는 흰개미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그들에 의해 좀 먹히고 있는 것이다.

 

 

 (4)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중국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은 원래 중국공산당군이었다. 이것이 중국의 국군처럼 된 것인데, 이는 중국공산당의 군사권력 장악은 곧 중국의 군사권력 장악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바로 중국의 군사권을 장악하는 최고의 권력 요직이다. , 중국에서는 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거머쥔 자가 바로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덩샤오핑이 중국의 핵심권력을 후계자인 장쩌민에게 이양할 때, 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만큼은 유지하였고,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권력을 이양할 때에도 이 자리만은 가장 나중에 내어주었던 것이다.

 

 

 중국 민주화 3유형

 

 인류 역사를 보면 국가와 국민 모두 부유해지면 국민은 비로소 정치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스페인과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의 예를 보면, 반드시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대개 1인당 GDP 2,000달러 정도가 되면 정치민주화를 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스페인에서는 1936년부터 40년 가까이 독재정권이 지속되었는데, 1970년대 들어 1인당 GDP 2,000달러를 넘어서면서 겨우 직접선거가 도입, 민주화가 실현되었다. 한국과 대만에서도 1인당 GDP 2,000달러를 넘어서고 민주화가 실현되었다.

 2005년 중국의 1인당 GDP 1,740달러였다. 당초 2010년경에는 2,000달러를 초과할 것이라 예상되었지만 이미 2년이나 앞당긴 2007년 말에 돌파하였다. 이렇게 볼 때, 2008년 올림픽과 2010년의 상하이 엑스포를 전후해서 중국은 큰 전환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사실 지금의 중국공산당 정부도 중국이 장래에는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들도 공산당 일당지배가 지금과 같은 체제로는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울러 그들은 정치민주화를 너무 빨리 서두르게 되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킬 수 없을 수도 있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 지금 상태에서 섣부른 정치민주화는 오히려 정국 불안정과 이로 인한 경제성장 좌절로 이어질 우려가 적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민주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중국은 먼저 풍요로운 국민경제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하여 중산층을 더욱 두텁게 만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술했다시피 중국에서는 이제 막 중산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에서의 민주화는 아직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향후 고려할 수 있는 정치민주화에는 어떠한 유형이 있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지금까지 성공한 아시아의 3가지 민주화 유형을 참고로 알아보도록 한다.

 

    대만과 싱가포르 유형 : 이는 정부주도형의, 즉 위로부터의 정치민주화이다.

    한국과 태국 유형 : 국민들이 민주화운동을 일으킨, 즉 아래부터의 유형이다. 민중으로의 요구에 대해 정부 측이 어느 정도 양보하고 국민 측도 어느 정도 타협함으로써 민주화를 실현시킨 상호타협 유형이다.

    필리핀 유형 : 피플 파워에 의해 실현된 혁명과 같은 유형이다.

 

  3가지 유형 가운데 중국은 아마 대만과 싱가포르 유형을 가장 선호할 것이다. 필리핀 유형은 최악의 선택지로 여기며 피하려 할 것이다.

 사실 필리핀 유형은 중국 전체에 끼칠 위험이 너무 크다. 실제로 혁명처럼 민주화를 실현시킨 필리핀은 국가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경제성장률도 아세안 국가 중에서 가장 저조한 실정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중국으로서는 피플파워에 의한 민주화를 가능한 한 회피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공산당 정부가 혁명적인 민주화를 원하건 원하지 않건 실제로 어떤 유형이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일반 중국인들 역시 피플파워로 민주화를 달성시켰다 해도 중국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면 이 또한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구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서구권에는 어떠했을지 몰라도 당시의 소련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큰 고통을 수반하였다. 실제로 1970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소련의 GDP 비율은 10퍼센트였다. 그런데 2003년 시점에서의 그 비율은 1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였다. 국가도 분해되었고 정치는 대혼란 속에 빠졌으며 경제는 좌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중국정부와 일반 중국인들 모두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중국은 남은 2개의 유형을 참고로 중국특색을 부르짖으며, ‘나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