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공중부양 - 8점
이외수 지음/해냄

 

57. 이외수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실전적 문장비법 글쓰기의 공중부양 / 이외수 / 해냄


초판 1 2006.03.01

개정판 1 2007.12.15

개정판 4 2008.02.05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공짜다

 

 , 공기, 햇빛, 지천에 널려 있다. 무한정이다. 인간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식조차 못하고 살 때가 많지만 이것들이 없어지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멸종해 버린다.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 공짜라니, 어쩐지 미안하지 않은가.

 

 

 없으면 생존에 불편을 초래하는 것들은 돈을 조금만 지불하면 된다.

 

 부식이나 주식 또는 살림도구들은 그다지 비싼 가격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으면 생존이 불편해진다. 그것들을 구입하려면 약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고맙게도 정부는 그것들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폭등하는 것을 정책적으로 방비해 준다. 하지만 약간의 돈만 지불하면 생존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세상에서도 쪽박을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래야 할까.

 

 


 
없어도 생명에 아무 지장이 없는 것들은 엄청나게 비싸다

 

 명품. 보석. 골동품. 이것들은 없어도 생존이 불편해지거나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인류사 이래로 보석이 없어서 떼죽음을 당하거나 명품이 없어서 질식사를 당한 사례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다. 부자들의 전유물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사람들이 선호한다. 아주 잠깐만 사용하고 아주 오랫동안 보관해 두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사람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가.

 

 


 
글을 쓰기 전에 철저하게 가식을 경계하라. 가식은 여러 종류의 척하는 병들을 불러들일 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인격을 격하시키고 글의 궁극적 목표인 감동이나 설득력을 깡그리 말살시킨다.

 

 


 
인물화를 그릴 때 스케치의 단계를 무시해 버리고 처음부터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정밀하게 묘사해 가면서 그림을 완성하면 이상하게도 이목구비가 따로 노는 그림이 되고 만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다른 그림에서 오려다 놓은 듯한 느낌까지 불러일으킨다. 전체적인 조화를 무시하고 부분적인 완성에 주력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글쓰기에서도 스케치를 생략하면 전체적인 균형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다. 특히 긴 글을 쓸 때는 반드시 스케치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밀하게 묘사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스케치의 단계는 바둑에서 포석의 단계와 같다. 포석의 단계를 무시해 버리고 다짜고짜 전투를 감행하면 대부분 하수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스케치는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이 구어체로 거침없이 써내려 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가급적이면 정치법에 의거한 단문을 사용하자. 이 단계에서 간혹 헛소리를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결말에 이를 때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써내려 가도록 하라.

 


 

 아무리 보아도 어색한 문장이 있다. 그러나 글쓴이는 그 문장을 버리기가 아깝다. 그래서 수십 번을 고친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을 준다. 흔히 멋을 부린 문장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글 전체가 그 문장을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감하게 삭제해 버리면 무난하게 해결된다.

 

 


 
상투

 

 상투는 옛날 성인 남자들의 헤어스타일로 오늘날은 역사책이나 사극 따위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상투는 아주 각별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재능 있는 감독이 상투를 소재로 삼은 영화를 제대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모조리 독식해 버릴지도 모른다. 헤어스타일 하나에 나라의 운명을 걸고 목숨을 바쳐 투쟁한 민족이 있다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옛날 우리 민족은 남자들이 결혼을 하거나 관례를 치르면 정수리에 머리카락을 둥글게 뭉쳐올린 다음 등곳으로 고정시키고 망건을 쓰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민족이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유교식 가르침 때문에 유별나게 삭발을 꺼린 줄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그 부분에 블록을 설정하고 삭제 버튼을 눌러주시기 바란다. 문헌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고조선 이전부터 상투를 트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는 아직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파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유교적인 가르침 때문에 우리 민족이 삭발을 꺼렸다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 우리 민족은 적어도 이천 몇백 년 동안이나 상투라는 한 가지 헤어스타일만을 고집하면서 살아온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일찍이 세계만방을 통틀어 그토록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헤어스타일을 문화 유산으로 간직했던 민족은 어디에도 없었다. 따라서 고종 삼십이년에 단발령이 선포되었다는 사실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엎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단발령은 단순히 개인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박해가 아니라 수천년을 계승해 온 우리 민족의 정서에 대한 박해였다. 물론 배후에는 친일세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정국은 민비가 시해를 당한 상태에서 친일세력이 개화내각을 결성하고 제일 먼저 상투를 자르는 법령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야사에는 군부대신 조희연이 왜병들을 잠복시켜 궁성에 대포를 겨냥하고 농상공부대신이었던 정병하가 황제의 상투부터 자르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노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내부대신 유길준의 명의로 성상 폐하가 위생적이면서도 집무상 간편한 단발을 솔선수범했으니 온 국민이 이를 따르도록 하라는 내용의 단발령을 공포한다. 이때 급조된 벼슬이 체두관이었다. 지방에 급파되어 상투사냥을 전담하는 벼슬이었다. 체두관은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닥치는 대로 상투를 잘라버렸다. 집으로 도망쳐 벽장 속에 숨어 있는 사람조차도 끌어내어 악착같이 상투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치는 않았다. 일부 학생들은 퇴학을 당하면서까지 상투를 자르지 않았고 일부 관료들도 파직을 당하면서까지 상투를 자르지 않았다. 학부대신 이도재는 상투가 단군 이래 민족의 질서를 유지시킨 모발 이상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민심을 교란시키는 세력에 반기를 들고 벼슬을 초개와 같이 내던져버리는 기개를 보였다. 보은 현감 이규백의 부인은 남편에게 대군주폐하도 못 당한 단발령을 당신인들 어찌 당하겠느냐는 말로 낙향을 종용했으나 거절당하자 소복단장을 곱게 한 채 목을 매달아 자결해 버렸다. 한양의 인력거꾼들은 단발을 하지 않으면 영업자격을 박탈하고 감옥으로 보낸다는 엄포에 네 명이 자청해서 감옥으로 들어가는 용기도 보여주었다.

 해주에서는 노인 두 명이 단발을 거절하여 옛날의 의로움을 구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관청 앞에서 동반자살을 하기도 했다.

 

 단발에 대한 반란이 가장 치열했던 지역은 춘천이었다. 애발당을 결성해서 목은 잘려도 상투는 자를 수 없다는 취지의 격문을 낭독하고 전국적으로 반란을 확산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이에 춘천, 안동, 충주 관찰사들이 살해당하고 의성, 영덕, 예천, 청풍, 단양, 천안, 양양, 고성, 삼수, 저평 군수들이 피살되었다. 그로인해 민중들의 분노는 날로 강도를 더해갔다. 결국 고종은 단발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친일내각을 거세하고 아관파천을 결행하기에 이른다. 물론 단발령도 철회되었다. 제일 먼저 체포된 인물은 고종의 상투를 잘랐던 정병하였다. 그는 참형을 당한 채 종로 네거리에 버려졌고 수천 군중이 번갈아 시체에 모욕을 가함으로써 단발의 원한을 풀었다.

 

 단지 헤어스타일 하나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태가 동서고금에 또 있었던가. 오늘날 외세의 문물을 아무런 저항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세대 속에서 상투를 틀고 의연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그에게 비웃음만은 던지는 일이 없기를.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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