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출동]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해 - 부산에서 광주까지(1)


2011. 10. 21. 금요일
죽지않는돌고래


지난 번 '대한민국에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
라는 기사에서 말씀 드렸던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단이 드디어 10월 16일, 오전 8시가 못되어 부산 중앙동 40계단 앞에 모였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단은 국가폭력 추방, 자본폭력 추방,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국전쟁 전후, 국가에 의해 집단 학살된 이들을 위한 배보상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19일 동안 부산에서 광주까지 320킬로를 걷습니다. 이 행사의 주인공인 김동구씨는 집단학살된 이들의 유족이 아니라는데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58세의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유태인 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같은 대학살이 존재했음을 알았고 아직도 이러한 사건이 은폐되어 있다는 사실에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의무감이 이번 도보순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남다른 점이 있다면 교통사고로 왼쪽 무릎 아래를 잘라냈다는 것입니다.  




오전 8시 40분, 출정식에 앞서 사진 전시회를 하기 위해 다들 분주합니다. 만약 저 사진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대량학살자였다는 이면은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단순한 허구로 끝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수많은 유족들의 증언과 함께 무수한 증거 사진들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어난 대량학살은 오랜 세월 은폐되어 왔고 이제는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기도 전에 잊혀지고 있습니다.


김광호 상임대표가 지나가는 시민에게 사진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그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이자 집단피학살자의 유족이기도 합니다. 집단학살의 희생자 중에는 독립유공자가 많습니다. 애국 대 매국의 구도가 이승만 이후, 좌와 우의 대립으로 바뀌었는데 자기 편이 아니라면 독립유공자도 예외 없이 빨갱이로 몰아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투철한 ‘반공 정신’이 손톱이 뜯겨 나가는 고문에도 나라를 지켰던 독립유공자와 전기고문을 당하면서도 이 땅의 민주화를 외쳤던 이들을 이유 없이 죽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이승만을 영웅으로 만드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단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10.16 민주올레’행사와 함께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1979년 10월 16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입니다. 부산에서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해 시민들이 벌떼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는 빠른 속도로 마산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경찰력으로 도저히 사태를 진압할 수 없다고 판단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박정희는 자신이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면 누가 자신을 죽이겠냐는 무서운 의지를 보였습니다. 경호실장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선 300만 명을 죽였는데 우리가 100만, 200만명 못 죽이겠느냐며 큰소리쳤습니다. 이 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 본 사람이자 부마항쟁의 심각성을 현장에서 체감했던 김재규는 박정희와 차지철이라면 정말로 시민들을 모두 죽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0일 후, 그는 박정희와 차지철을 자신의 손으로 끝냈습니다.

부마항쟁은 지금의 세대에겐 먼 과거의 일로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근현대사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영향력을 가진 사건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힘이었습니다.

부산과 마산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가 부산동구청장 재선거 지원활동을 위해 부산을 찾았다가 ’10.16 민주올레’ 행사에도 참여했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단의 취지를 설명해드렸더니 활짝 웃으며 손을 잡아주시고는 응원 문구를 적어주셨습니다. 1979년 10월 16일, 한명숙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시국사건인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되어 감옥에 있었고 그때 부마항쟁 이야기를 듣고 감동했다고 합니다.


전국유족회 김광호 상임대표가 성명서를 낭독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억울한 죽음 앞에 목놓아 울지 않기를 염원하며 국민들이 피학살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부탁합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그 맥이 끊긴 진실화해위원회, 그에 준하는 기관의 재신설과 특별법 제정 촉구를 강조했습니다.


자신을 평범한 시민으로 소개하는 김동구씨입니다. 정치인들은 60년이 지나도록 청산해야 할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언론은 눈치만 보니 평범한 시민인 자신이라도 국가폭력의 심각성을 알려야겠다며 이 자리에 섰다고 전합니다.


왼쪽은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단의 이름에 영감을 제공한 선안나 작가입니다. 성신여대 교수이기도 한 그녀는 ‘잠들지 못하는 뼈’라는 동화를 써서 현대사에 일어난 집단학살이라는 비극을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냈습니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한 전국유족회 김광호 상임대표가 꼭 이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한 것을 계기로 도보순례단 행사를 같이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른쪽은 오는 23일에 있을 진주 추모행사에 관련해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큰 도움을 주시고 있는 황제인씨입니다.  


‘노무현의 미완성 공화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감독한 이창희씨입니다. 도보순례단의 현장지휘를 맡은 동시에 이번 행사를 함께 기획한 분입니다. 저는 유족 4세로서, 또 기자로서 이 행사에 뜻을 가진 사람을 연결하고 언론사와 각 단체를 방문해 조율하는 일을 했을 뿐, 큰 그림은 이 분과 김광호 상임대표가 맡았습니다.

이창희씨는 행사 전, ‘나같이 늙은 사람이 공을 가져봤자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창규씨가 젊은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이 행사의 총체적 기획자로 내가 언론에 알리겠으니 억울한 분들을 위해 앞으로 일할 밑바탕을 쌓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일은 제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을 제가 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을 하니 고개를 저으며 제가 아직 젊어서 무얼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사는 이창희씨가 없는 사이에 씁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잘생겨서 거짓말을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10월 16일 오전 10시 40분, ‘잠들지 못하는 뼈’를 위한 도보순례단이 부산에서 광주로 향하는 첫발을 내딛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해 지금은 공개를 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딴지일보 내에서도 큰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스스로에게 아무 이득이 없음에도 선뜻 나서는 그런 분들의 마음이 이 행사를 움직이고 이 세상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힘인 듯 합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추신 : 의족을 차고 클러치에 의지한 채 자신과 아무 관계 없는 유족들을 위해 쉼 없이 걷고 있는 김동구씨에게(@kmsan53) 트위터로나마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의족을 한 부분에 물집이 생기고 장시간 클러치 사용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여러분의 격려 한마디는 그 모든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하는 힘이 됩니다.

기획취재부팀장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1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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