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남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다를 건너면 밀접한 교류 위에 외교관계가 돈독했던 한 나라가 있다. 난파된 상대국 사람을 구조하면, 서로 후하게 대접해 돌려보낼 정도다. 지정학적 위치를 살려 해상무역으로 번성했고, 한중일과 교류하며 고유의 문화를 이뤘다.

이 나라는 1429년부터 1879년까지 450년간 류큐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고 일본에 무력으로 병합돼 반강제적으로 ‘오키나와현’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해 버려지는 돌로 취급돼 지상전에 떠밀려 주민의 1/4이 죽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 27년간 양도되어 군사기지가 잔뜩 세워졌으며 1972년 반환 이후에도 상황은 여전하다. 일본 본토의 정치인들에게 미일안보 관계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오키나와보다 딱 그만큼 중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받은 상처의 계산서가 존재한다면 1609년, 에도막부의 사츠마 번이 류큐왕국을 침략했을 때부터 그 액수가 400년간 갱신되었을 게다.

그것도 매년.

2.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키나 쇼키치를 이해하기 위한 퍼즐의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그는 1948년생이다. 미국이 오키나와를 통치하던 시절에 태어났고 일본은 다른 나라라 생각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 살다 형무소에 들어갔는데 나와보니 ‘달러’ 대신 ‘엔’을 쓰고 ‘미국 시대’가 ‘야마토 시대’로 바뀌어 있었으며 13살 때 흥얼거리며 만든 <하이사이 오지상 ハイサイおじさん>은 본토까지 퍼져나가 어느새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었다.

그렇다고 키나 쇼키치가 오키나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독자 분들이 키나 쇼키치를 통해 그의 음악과 삶을 지나 오키나와라는 또 하나의 <틀>을 얻어 세상을 본다면 이 책을 쓴 이유에 더없이 부합된다. 매우 기쁜 일이다. 해서, 가독성을 우선 가치로 두고 그의 말과 말 사이에 있는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역사와 이야기에도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허나 이러한 나의 목적과는 별개로 오키나와라는 <틀>로만 키나 쇼키치를 바라본다면 인간을 하나의 견해로만 묶어놔야 직성이 풀리는 얄팍한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그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회로 갔고(키나 쇼키치는 전직 참의원 의원이다) 선거에서 무참히 패배하기도 했지만(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그가 최종적으로 안착한 곳은 ‘평화’다.

그것도 무려 ‘세계 평화’다.

3.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해 일견 조롱받기 쉬운 이 목적을 달성키 위한 키나 쇼키치의 노력은 아득히 진지하고 아득히 즐겁다.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라크 한복판으로 날아가 평화가두행진을 하는가 하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모은다. 아니, 모인다. ‘전쟁보다는 축제를’이라는 그의 생각대로 정말 축제를 열어버린다.

이는 저항이나 투쟁의 방법이 축제일 때, 즉,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즐거울 때 효과적이라는 걸 그가 체감했기 때문이다.

해서일까, 그의 <하나~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은 60여개국에 리메이크 되어 세계적으로 3000만장 이상이 팔린다. 세계적인 위상에 비하면 한국에선 키나 쇼키치가 증발되었다고 표현될 정도지만 그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며 매년 아리랑을 부른다. 그의 꿈이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연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계속 우리를 보고 있다.

4.
키나 쇼키치는 인간을 국가나 이념, 종교나 민족에 한정해 보지 않는다. 오직 개인이다. ‘위정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오키나와인의 매력에 더해 제멋대로 살고 제멋대로 말하고 그 말에 온전히 책임 지며, 미덕도 악덕도, 자본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모조리 받아낸 이 남자는 유쾌하고 씩씩하다.

해서인지 나는 그의 나이를, 이력을 정리하며 처음 인식했다. 속사포같이 쏟아져 나오는 의견들, 고속으로 튀는 주제, 광범위한 테마는 때론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감정을 흔든다. 하나하나가 머리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피와 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리라. 오직 인간 개인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며 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리라.

씩씩하고 유쾌하며 광범위한 키나 쇼키치와의 대화로 얻은 나의 즐거움이 온전히 독자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이 책이 키나 쇼키치 입문서가 된다면, 나로선 목적 달성이다.

이념은 스쳐지나가도 음악은 남는다.

 

2019.10.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