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1일 오후 2 46, 일본 동북부 지역에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났다. 일본 기상청은 이를 '헤이세이23년 (2011년) 동북지방 태평양 앞바다 지진 - 平成23年(2011年)東北地方太平洋沖地震' 이라고 명명했고 언론은 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지역과 원전 방사능 유출이라는 악재가 겹친 일본의 상황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대재앙의 중심에 있는 센다이시. 토호쿠대학교 물리학과에 재학 중(한일공동이공계 국비유학생)인 이상종씨(90년생)는 당시 그곳에 있었다. 아래의 인터뷰는 센다이, 야마가타, 니이가타, 도쿄, 나리타를 거쳐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5일간, 그가 겪은 일이다. 

    

 



  

3 17일, 오전 11 58분 인터뷰 시작.이 본인, ‘가 이상종씨다.

 

지진 발생 당일. 3 11.

 

: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디 계셨나요?

 

이: 토호쿠대학교 카와우치캠퍼스 기숙사예요.

 

토호쿠대학교는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있는 국립 종합대학이다.

 

<지진의 진앙지는 센다이에서 약 130km 떨어진 곳으로 지도상에서 별표로 처리했다. 빨간 화살표가 이상종씨가 있었던 토호쿠대학교 카와우치 캠퍼스로 시계방향으로 점점 축적을 올려서 표시했다. 아래 지도의 축적은 1:50,000(2cm가 1km)이다.>  
 

: 기숙사 몇 층에 있었죠?

 

: 2층이요.

 

: 조짐이 있었나요?

 

: 3일 전부터인가 지진이 꾸준히 왔어요. 물병이 떨어질 정도로. 멀미도 나고.

 

: 3일 전에 한 번 왔다는 건가요? 아니면 계속?

 

: 큰 게 한 번 정도 오고 조금씩 계속 왔어요. 새벽에도 조금씩 흔들리다가 3 11일 크게 터졌는데…. 지진은 전에도 계속 왔으니까 금방 끝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처음엔 당황해서 문 여는 것도 깜빡 했어요. 책상 밑에 들어가라는 게 생각나서 바로 들어가고. 그건 본능적으로 어떻게 되더라구요.

 

일본은 건물 내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신속하게 3가지 행동을 하라고 가르친다. 첫째, 문을 열어 둘 것. 지진 이후에 건물이나 문이 뒤틀려서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함이다. 둘째, 가스 밸브 잠글 것. 지진 자체보다 화재나 질식 등의 인명사고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셋째가 책상이나 탁자 밑으로 들어가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 책상 밑으로 들어갔는데 책이랑 물건이 떨어지더라고요. 지진이 나자마자 바로 정전되고. 어떻게 알았냐면 노트북을 켜놓고 있었어요. 배터리 전원이 나가면 화면이 조금 어두워지잖아요. 그렇게 되더라구요. ... 순간, 죽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 정도로 느낌이 바로 오던가요? 이번에는 좀 다르구나라는.

 

: , 소리부터 달랐어요. 창문 흔들리는 소리 있잖아요. 소리의 격이 완전히 달랐어요.

 

동경에 거주 중인 일본인 요코야마 신이치(32세·남)씨의 진술에 의하면 일상적인 지진의 경우,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 있지만 이번 지진은 계속해서 지진에 지진이 겹쳐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 듣기로는 일상적인 지진보다 오래 지속 되었다고 들었는데.

 

: 4~5분 정도 지속 된 거 같아요. 제 체감은 그랬는데 너무 길더라고요. 끝나겠지 했는데 계속 떨리고 강도가 약해질 거 같지도 않고. 계속 그 강도였어요.

 

: 어느 정도죠?

 

: 책들이 모두 떨어지고 철로 된 옷장이 멈추지 않고 흔들렸어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 지진이 끝나고는 어떻게 했죠?

 

: 너무 당황해서 나갔죠. 나갔는데 기숙사 관리인 분이 옷 가지고 빨리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나가니까 사람들이 다 나와 있었어요.

 

: 그나마 다행이었던 게 일본은 아직 학기를 시작 안 했던 거네요. (일본의 학교는 보통 4월에 시작된다.) 기숙사에는 몇 명 정도 남아 있었나요?

 

: 20명 정도 남아 있었던 거 같아요.

 

: 그럼 그 다음에 기숙사에서 나와서.

 

: 지진이 잠잠해질 때까지 밖에 있었어요. 관리하는 분들이 전부 다 빠르게 대처하더라고요. 필요한 물건들, 라디오 같은 거 빨리 준비해 두고.

 

: 대비가 잘 되어 있네요. 관리인도 당황하지 않고.

 

: 센다이 쪽에 지진이 여러 번 났었대요. 그래서 그런지 관리인 아저씨가 노련하다고 생각한 게, 지진이 난 후에 바로 차를 타고 편의점에 가서 먹을 걸 사 오시더라고요. 제가 있던 기숙사 같은 경우는 초기엔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어요. 나중엔 부족했지만 다른 곳보다는 나았던 거 같아요.

 

: 그 이후에는 대피소로 이동을 한 건가요?

 

: 일단 대피소로 가지 않고 기숙사 안에서 대피를 했어요. 저희 지역까지는 쓰나미가 안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 토호쿠대학교가 산 위에 있죠?

 

: . 그런데 제가 있는 곳은 좀 저지대였어요. 산 위에 또 다른 캠퍼스가 있고 제가 있는 카와우치 캠퍼스는 산 아래에 있었죠. 그런데 이 날 여진이 엄청 많았어요. 계속 땅이 흔들리고 멈추지를 않았죠. 첫날에는 땅이 평온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편의점에 가서 쵸콜렛이나 뭐 이런 거 사러 가고.

 

: 편의점 분위기는 어땠어요?

 

: 사람이 엄청 몰렸어요. 그래도 다 줄을 서서 사더라고요.

 

: 한국에선 그거 되게 많이 방송했는데. 질서의식 이런 거.

 

: 사실 그 때 사재기가 많았어요. 물건이 부족해서. 편의점에 있는데 무서웠던 게 편의점에 술병이 있잖아요. 술병을 보면 술이 계속 흔들리는 게 눈에 보여요. 편의점에 있을 때도 엄청 큰 소리로 울리고.

  

 

: 첫 날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 편의점에서 물건을 산 다음에 기숙사 안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었던 건가요?

 

: . 근데 첫 날에 바닥이 계속 흔들리는데 그 와중에 또 눈이 왔어요. 첫 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심하게 왔어요.

 

: 눈이 온 건 언제죠? 저녁인가?

 

: 아뇨. 저녁 전에 계속 왔어요.

 

: 지진 일어난 다음에 눈이 온 거죠?

 

: , 그래서 조금 겁나더라고요. 혹시 다시 크게 지진이 왔을 때 저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제대로 피난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고. 정말 투머로우 영화 같다고 할까.

 

: 기숙사에서 티브이 같은 건 나왔나요?

 

: 정전에 가스는 물론, 물도 안 나왔어요.

 

: 아 물까지 안 나왔으면 상황이 아주 좋지 않네요.

 

: 그나마 있는 게 라디오였는데 경보를 해 주더라고요. 지진 났다고. 라디오에서 띠링 소리가 나요. 어느 현, 어느 현, 지진이 나니까 대피하라. 그것만 듣고... 그러면서도 계속 조금씩 흔들렸어요. 나중에 뉴스를 듣기로는 여진이 50번 정도 났다는데 진짜 그랬던 거 같아요.

 

: 전화는 어땠나요?

 

본인의 경우, 지진이 일어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본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지인들이 일본 국내 전화량 폭주로 장시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몇몇 지인의 친척이나 친구는 현재까지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 그 때 국내로 가는 전화는 다 안됐어요. 중간 중간에 조금씩 되기는 했는데한국에서 연락이 와서 전화를 한 번 걸어봤는데 음, 통신사에 따라 좀 달랐던 거 같긴 한데 전 연결이 안되더라고요.

 

로밍된 핸드폰으론 문자는 갔어요. 소프트뱅크 쪽이 아마 통신이 안됐던 거 같아요. 도코모쪽이나 그 쪽은 전화가 됐고. 그 때 아이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는데 원전 터졌다는 소리도 들리고.

 

: 정보가 전부 다 막히고 수도 가스 전기가 다 멈춘 상태에서 세상이란 통할 곳은 아이폰으로 보는 인터넷 뉴스 밖에 없었던 거네요?

 

: .

 

: 무슨 생각 들어요 그쯤 되면? 시간상으로는 지진 당일 저녁인데.

 
: 전기가 끊기니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어요. 근데 첫 날 지나고 나니까 죽겠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뭔가 지진에 조금 익숙해지고. 그리고 되게 추웠어요. 눈도 온 상태고 모포 하나 덮고 잤거든요. 누워서는 못 자고 앉아서 잤는데.

 

: 왜 누워서 못 잤어요?

 

: 자리가 없어서요. 그 때 다 1층에 모였거든요. 모포 하나 덮고 1층에 대합실 로비라고 해야 되나, 그런 공간이 있어요. 거기 모이라고 해서 거기 다 모였거든요.

 

: 그럼 쪼그려서 잔 거네요?

 

: 의자에 앉아서 잤어요. 점점 지진에 익숙해지더라고요.

 

: 여진이 계속 일어나니까.

 

: 네.

 

 


 

지진 발생 이틀째. 3 12.

 

: 그 다음날 언제 일어났어요?

 

: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6시쯤에 일어났어요. 놀랐던 게 일본은 대처가 엄청 빠르더라고요. 사실 첫날도 사이렌 소리가 멈추지 않았어요. 화재가 났다고 들었는데 화재 때문에 소방차들이 계속 지나갔던 거 같아요. 실제로 보지는 못 했는데 사이렌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 아침은 관리인이 전날 사온 주먹밥을 먹은 건가요?

 

: 아뇨. 아침에는 주먹밥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 밤에 다 먹고?

 


: , 밥을 주더라고요. 다른 데서.

 

: 구호 뭐 그런 게 온건가요?

 

: . 정전이 되어서 밥을 만들 수가 없잖아요. 따로 밥을 주더라고요. 아침 점심 해가지고 하루에 2.

 

: 그러면 그 안에서. 그러니까 하루 경과한 3 12일 당일은 계속 기숙사 안에 있었던 건가요?

 

: 밥먹고 좀 운동을 했어요. 혹시 모르니까 몸을 풀어 두려고 체조 정도 했죠. 궁금해서 시내 상황이 어떤가 한번 갔다 오고. 시내가니까 간판이 다 떨어져 있고

 

: 시내에 사람들은 있던가요?

 

: 좀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때 물건을 팔았거든요. 몇몇 곳에서만 집중적으로 팔았던 거 같아요. 음식이 없으니까. 그 때 사람들이 사재기를 시작했던 거 같아요.

 

: 전체적인 동네 분위기는 어땠어요?

 

: 좀 어두웠어요. 다 정전이라서. 그리고 핸드폰 충전이 안되잖아요. 일본에서는 태양열로 돌리는 연구실에서 15분 정도 핸드폰을 충전하게 해 주더라고요.

 

: 기계를 들고 오나요?

 

: 아니요 저희가 가야 돼요. 태양열로 전기를 돌리는 곳, 라디오에서 위치를 알려줘요. 마치 지진이 올 거를 안 것처럼 대응이 빠르더라고요.

 

: 어떻게 생겼나요 그 곳은?

 

: 그냥 연구소에요. 거기에 휴대폰 충전 줄이 엄청나게 꽂혀 있고.

 

: 거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던가요?

 

: 제가 갔을 때는 한 20? 그런데 일본인들이 당황하지 않고 다 침착하더라고요. 평상시랑 다름이 없어요. 거기 있던 아줌마 하는 얘기가 이제 한 번 났으니까 큰 여진이 한 두 세 번 더 나겠구나 하면서. 첫 번째 보다 두 번째가 더 세고 세 번째가 더 세지되게 침착하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걸 들으면서 내가 진짜 지금 안전한 건가 하는 느낌도 들고.

 

: 점심은 학교 와서 먹은 건가요?

 

: 점심은 학교에서도 줬는데 다른데 밥을 준다는 곳이 있다고 해서 거기 가서 먹었어요.

 

: 그것도 라디오에서 들은 건가요?

 

: 아니요. 관리인 아저씨께서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 학교는 어땠나요? 기숙사 말고.

 

: 각자 대피하는 데가 있는데 학교는 폐쇄돼서 갈 수가 없었어요. 대학병원으로 가는 사람은 많았고 호텔 가는 사람도 꽤 되더라고요. 호텔 쪽 사람들이 밖에 나가면 파편에 맞아서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진났을 때 호텔 안에 있으라고 했다네요.

 

: 호텔을 개방한 건가요?

 

: . 저도 들은 얘긴데 1층에 사람들이 엄청 많았데요. 피난한 사람들.

 

: 그 후로는 어땠나요?

 

: 시내 분위기만 보고 좀 무서워서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죠.

 

: 돌아온 거는 언제였어요?

 

: 오후 2~3시쯤?

 

: 그 때까지 전력이나 수도 이런 거는 아직 끊겨져 있고요?

 

: 네.

 

: 그럼 화장실은 어떻게 해요?

 

: 기숙사 물탱크에 물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때까지는 괜찮았어요.

 

: 수도는 전혀 안 나오구요?

 

:

 

: 저녁은 또 배급해 준 건가요?

 

: 저녁은 안 나왔어요.

 

: 어떻게 했어요?

 

: 기숙사 스폰서라고 해야 되나? 저희 기숙사가 학교 기숙사가 아니라 사설 기숙사였는데 그분이 빵집을 하나 봐요. 그래서 빵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배 채우고 한국인들끼리 모여서 버너로 라면 해서 먹고.

 

: 기숙사 안에 한국인들끼리 모여서?

 

: 네 한 7명 정도. 그리고 그 날 어머니가 영사관으로 가라고 했어요.

 

: 어머니랑 언제 통화가 된 거죠?

 

: 그때는 전화가 안됐는데 아이폰 메신저를 통해서 친구들한테 연락하고 그랬는데 어머니가 영사관 가면 비행기가 준비되어 있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 날 영사관 가기로 했어요.

 

: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부모님 마음이 참지진이 일어난 바로 그 동네에 아들이 있으니.

 


: 엄청 당황하시죠. 우셨다는데…. 위험하니까 한국 영사관 가서 대피하라 그러시고. 제가 듣기로는 한국뉴스에서는 영사관 가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처럼 나왔다고 보도된 걸로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생존 확인도 안 되었는데 됐다는 식으로 보도가 되었더라구요.

 

: 그럼 다음날, 이제 영사관 갈 계획을 세우고 또 앉아서 잔 거네요?

 

:

 


 

지진 발생 3일째. 3 13

 

: 3일째는 어떻게 하셨어요?

 

: 아침 먹고 준비해서 영사관을 갔어요.

 

: 영사관은 거리가 얼마나 되죠? 차도 없을 테고.

 

: 30분 정도 걸었어요.

 

: 본인 짐은 어떻게 했죠?

 

: 정말 필요한 것만 챙겼어요. 가니까 유학생 학생회장 형 있고 또 몇 명 있더라고요. 그 쪽에서 귀국신청서를 작성했는데 그게 순위가 여자 아이부터 되고 그 다음이 저희 학생이래요. 제가 들은 얘기로는 저희가 돌아가기가 힘들 거래요. 그 귀국신청서로.

 

: 그건 학생회장이 한 말인가요?

 

:

 

: 그건 왜 그렇죠?

 

: 일단 여자랑 아이부터 가야 되는데 영사관에서는 전부 다 보낼 여유가 안됐던 거 같아요.

 

: .

 

: 한국에서 보도 됐던 게 비행기를 준비해 줘서 바로 출국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됐었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 쪽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어요. 주위에 전화 통화한 내용을 들어 보면 생사 확인해 달라고 하면 '이 쪽에서는 생사확인이 안되고 일본 대피처에 있을 지도 모른다. 근데 지금 영사관에는 식량도 없고 일본 대피처가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해요. 자전거 타고 1시간 정도 거리를 온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은 다시 돌아갈 돈이 없대요. 그 때 비행기 값도 엄청 올라갔고

 

3월 15일 귀국한 최모씨의 진술에 의하면 현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항공권이 평소의 4배 이상의 가격으로 치솟았다고 한다. 

 

: 영사관에선 그 사람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다시 돌아간 사람도 있어요. 실제로 센다이에서 한국으로 간 사람들 보면 영사관의 힘을 빌린 게 아니라, , 저도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거의 다 자력으로 갔을 거에요.

 

: 영사관에 비상식량이 준비되어 있다거나 하는 건

 

: 안되어 있어요. 그 쪽에서도 일은 하지만 오히려 사람이 부족해서 학생들이 봉사활동으로 도와주고 그러고 있죠.

 

: 그럼 영사관에서 도움을 받은 건 없나요. 식량이나 뭐 그런 거.

 

: 빵 한 덩어리 정도. 저는 어머니가 후쿠시마에 비행기 표를 예약 해 뒀다고 해서 선배 차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기름이 얼마 없더라고요.

 

: 선배랑은 어디서 만나신 거예요?

 

: 영사관에서 만났어요. 형한테 갈 거냐고 물어 보니까 차 타고 가자고. 그런데 기름을 못 넣었어요. 다른 곳에서 3시간을 기다렸는데 거기 기름도 바닥나고. 주유소가 있어도 긴급차량 용으로만 기름을 주고 실제로 사람들한테 기름을 주는 곳은 얼마 없더라고요.

 

: 그럼 선배랑 만난 거는 지진 이후 3일 째 되는 날, 몇 시쯤이었죠?

 

: 점심쯤이었던 거 같아요. 2시쯤. 제가 기다렸는데 한 6시 정도 됐는데도 기름을 못 넣었어요.

 

: 이제 기름도 없고...

 

: 남은 기름으로 집 근처로 갔는데 거기도 다 문을 닫았더라고요. 거기 같은 경우는 전기가 안 들어와서 주유소를 아예 안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선배 집에 있었는데 선배 집엔 전기가 들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 선배는 기숙사가 아니라 그냥 집에 사셨고?

 

: .

 

: 선배 집은 어디죠?

 

: 토호쿠대학교 아오바야마 캠퍼스 근처에요. 라면을 좀 먹었는데... 그 때 또 지진이 났어요.

 

: 라면을 먹고 있는데 지진이 또?

 


: 11일 정도의 지진은 아니었지만 꽤 컸죠. 밥 먹다 죽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뛰어 나갔어요. 그렇게 해서 다시 영사관으로 돌아 갔어요. 부모님 말씀이 영사관 측에서 '차를 주든 기름을 주든 후쿠시마로 보내주겠다'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선배 같은 경우는 센다이에 남겠다고 해서 저만 영사관에 데려다 주고 돌아갔어요.

 

: 그 분은 왜 센다이에 남겠다는 결정을 한거죠?

 

: 센다이가 안전할 거 같다고 했어요. 여기는 원전 상황이 그렇게 악화 되었던 것도 아니고 전기도 시내 쪽은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요.

 

: 그분 판단은 오히려 후쿠시마가 원전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생각을 했군요.

 

: 네.

 

: 우리는 여기서 모든 정보를 다 얻을 수 있지만 상종씨처럼 정보가 차단 된 상황에서는 그런 하나 하나의 결정들이 생명을 가를 수도 있겠군요.

 

: 그 땐 고속도로도 다 폐쇄되고 그랬어요. 지진 나서 땅이 갈라지고 길 가기가 힘들대요. 차타고 북쪽으로 갈 생각도 했어요. 아키타 쪽으로. 그 쪽도 공항이 있으니까. 그런데 선배 얘기를 들어 보니까 산이 있는데 지진 나면 그 산길이 안전하지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센다이가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요. 고립된 느낌이었어요. 어디를 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무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공항까지 물이 잠겨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현재까지도 센다이는 그런 도로 상황 탓에 구급물자 전달이 불가능한 지역이 많다.

 

: 그런 정보는 라디오로 들은 건가요?

 

: 그건 바로 알았어요. 어떻게 따로 들어서. 쓰나미가 덮치고 있다, 이런 것도 계속 듣고 있었어요. 공항이 잠기고 남쪽이 후쿠시마 잖아요. 그러니까 센다이에서 동경 가는 사이에 후쿠시마가 있는데 원전이 있잖아요. 그래서 남쪽으로 가는 게 불가능했어요.

 

<후쿠시마를 통해 도쿄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르지만 원전 방사능 유출로 인해 첫번째 계획은 무산된다.>
 

: 원전 때문에 길을 다 폐쇄 한 건가요?

 

: . 다른 선배가 있는데 제가 후쿠시마로 간다니까 후쿠시마로는 아예 못 간대요. 또 가지 말래요, 위험하니까. 선배가 야마가타를 통해서(센다이의 서쪽에 있다.)니이가타로 간 다음에 동경으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어머니한테 얘기해서 선배 따라 간다고 했어요. 전 운이 좋았어요. 선배를 잘 만나서.

 

: 비행기를 타야 된다는 고집으로 후쿠시마 쪽으로 혼자 갔다거나 했으면... 아득하네요.

 

: . 그 날 영사관 앞에 사람들이 엄청 줄 서 있더라고요. 피난 줄인데 행렬이 장난 아니었어요. 일본사람들이 쫙 서있는데 얘기를 들어 보니까 야마가타를 통해서 다들 어디든 가겠다 이거였어요. 바로 남쪽으로 못 가니까 서쪽으로 돌아서 가는 거죠.

 

: 일단 야마가타로.

 

: 야마가타를 가서 오사카를 가든 동경으로 가든 탈출하는 거죠. 야마가타 쪽에서도 국내선은 운행하는 공항이 있었으니까.

 

: 버스가 영사관 주위에 있나 보죠?

 

: 야마가타 가는 버스가 영사관 바로 옆에 있었어요. 줄이 엄청나게 길었죠.

 

: 그럼 그 선배랑 같이 간 건가요?

 

: . 오후 10시쯤에 버스를 탔어요.

 

: 야마가타를 거점으로 해서 이동한다는 판단은 선배가 내린 건가요?

 

: .

 

 


 

지진 발생 4일째. 3 14.

 

: 그렇게 해서 야마가타 공항에 갔는데 이틀 후까지 티켓이 없대요. 전 그 때 어머니가 비행기 표를 예약해 놨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리타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 어머니가 표를 어디 어디 끊어 놓으셨던 거죠?

 

: 아키타하고 후쿠시마하고 나리타였어요.

 

: 엄마가 아들을 살리려고 표를 나오는 데로 다 끊어 놓으셨군요.

 

: .

 

: 비행기 출발 날짜는?

 

: 그 다음날이요. 315. 제가 그렇게 부탁해 놨어요.

 

: 그럼 야마가타 공항에 왔는데 표는 없는 상황이고. 내일 아침에 비행기를 못 타면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 처음에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동경으로 갈 생각이었어요. 예약 취소 된 거 타려고 줄 서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못 탈 거 같다는 생각에 나왔어요.

 

: 어디로 갔죠?

 

: 버스터미널 가서 새벽 2시부터 줄을 섰죠. 결국 아침 8시에 버스를 탔어요.

 

:  지금이 그러니까 지진발생 4일째. 3 14일이네요. 6시간을 선배랑 둘이서 기다린 건가요?

 

: 동행자가 5명 정도 더 있었어요. 야마가타 공항까지는 9명이서 갔는데 중간에 2명 흩어지고 7명 정도 남았어요. 공항에 남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 거기서 또 갈리네요. 공항이 안전하다고 하는 사람과 이동해야 한다는 사람.

 


: . 그래서 전 버스를 타고 니이가타로 갔어요. 니이가타를 갔는데니이가타는 너무 평온한 거에요. 적응이 안됐어요. 너무 평화로워서. 야마가타도 조금 지진이 나서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 야마가타에 있을 때 공항 분위기는 어땠나요?

 

: 사람들이 다 자는 분위기였어요. 그냥 줄을 서다가 지쳐서 잠 드는 그런 풍경. 그런데 니이가타는 가게들도 다 열려 있고그래서 신칸센 예약을 했죠.

 

: 그럼 그 때 니이가타에 와서는 좀 안전한 걸 느꼈겠네요?

 

: 네. 니이가타에서는 동경가는 표를 사 놓고 밥도 천천히 먹고.

 

: 니이가타에서 동경까지는 신칸센을 타고 이동. 그때는 몇 명이었나요?

 

: 5명이요.

 

: 다 한국인인가요?

 

: .

 

: 모두 국비유학생 멤버인가요?

 

: 아뇨. 한 분만 국비유학생이고 나머지는 다 교환학생이었어요. 거기서 저만 나리타였고 나머지는 다 하네다여서 동경역에서 헤어졌죠. 저 같은 경우는 동경에 친구 한 명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거기 잠깐 머물고 저녁 먹고 해서 나리타로 지하철을 타고 갔죠.

 

: 동경은 분위기가 어땠어요?

 

: 좀 평화롭기는 하지만 전력을 아껴야 한다고 정전을 시키더라고요. 그래서 내일 아침에 못 갈 수도 있으니까 미리 가자고 판단을 했죠.

 

일본은 이번 지진으로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지역별로 돌아가며 제한 송전을 실시하고 있다. 17일, 경제산업성(한국의 장관에 해당)인 가이에다 반리는 긴급담화 발표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절전에 협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동경에 거주 중인 칸다 사토시(77년생)상의 진술에 의하면 전력난 탓에 일본 전철의 운행량이 크게 줄어 출퇴근 시간에 유래 없는 대혼잡이 이어 지고 있다고 전했다.     

 

: 언제 출발한 거죠?

 

: 3 14일 저녁 6시 쯤 동경에 도착했어요.  친구 집에 가서 밥 먹고 8시 쯤에 출발했던 거 같아요. 나리타엔 12시쯤에 도착했어요.

 

 


 

지진발생 5일째. 3 15.

 

<5일간 이상종씨의 이동루트>


: 나리타
에는 혼자 간 건가요?

 

: 네.

 

: 동경에 와서는 티브이도 보면서 자기가 겪은 상황이 어떤지 다 파악을 했겠네요.

 

: 아니요. 몰랐어요.

 

: 그때까지도 그냥 정신이 없었던?

 

: 일단 살고보자 였어요. (웃음) 그 생각밖에. 제가 정보를 들은 건 주로 친구들한테서예요. 카카오톡으로는 한국이랑 연락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어요. 나리타 도착하니까 나리타에도 사람이 엄청 많더라고요. 어두컴컴한데 제가 누우려고 잘 자리를 찾고 있는데 잘 자리가 찾기 힘들 정도였어요.

 

: 3 14 12시에 도착을 했는데, 그 큰 공항에서 잘 데가 없을 정도... 

 

: . 그냥 바닥에 누워서 잤어요. 비행기는 내일 아침 9시니까. 그리고 일어나서 줄을 섰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던 게, 대한항공 줄이 엄청 길었어요. 원래 7시쯤이면 9시 비행기 사람들이 줄을 서는데 10시 비행기 11시 비행기 사람들이 다 줄을 서고 있더라고요.

 

: 무조건 줄을 서 있는 구나. 다들 불안하니까.

 

: 전 못 갈 뻔 했어요. 제가 재입국허가서도 못 쓴 상황이어서. 학생비자라서 재입국 허가서를 써야 되는데.

  

유학비자 기간 중, 일본 외로 출국할 때는 재입국 허가서가 필요하다. 허가서 없이 출국할 경우, 비자가 무효화되며 처음부터 다시 수속을 밟아야 한다.  

 

: 결국 쓰기는 썼어요. 그런데 체크인을 하는데도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 못하더라고요. 제가 재입국허가서를 쓰는 것 때문에 비행기가 더 늦춰졌어요. 30분 정도. 혼자는 아니었고 저 같은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제가 제일 마지막이었지요.

 

: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거네요.

 

: .

 


 

그리고...

 

: 현장에서 직접 본 사람들은 어떻던가요?

 

: 여자들은 울고 외국인들은 당황하고…. 그런데 일본인들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어요. 침착하다기 보다는… 음, 뭐랄까, 제가 보기에는 그냥 지진이 나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저는 처음에 '진짜 죽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유언도 남기고.

 

: 유언을 썼나요?

 


: 친구한테 유언을 남겨 뒀어요.(웃음) 내가 죽으면 누구한테 이걸 전해 줘 이런 식으로.

 

: 한국와서 보도는 다 보셨나요?

 

: 아니요. 거의 안봤어요. 원래 티브이도 잘 안보고.

 

: 이쯤되면 자기가 어떤 상황을 거쳐 나왔는지 한번쯤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나요?

 

: 조금씩 보긴 했는데원전 소식이라든지그런데 한국에서 보도되는 게 너무 과장되거나 자극적인 게 있어요. 너무 사고 터진 거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다 보니까.

 

: , 제 일본 친구들도 그 얘기를 하던데. 일본에서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불투명한 게 너무 많은데 한국은 뭐든지 확정된 것처럼 보도를 하는 것 같다고.

 

이: 일본 쪽은 제가 느낀 거는요. 개인적인 건데, 뭐랄까, 일단 사람들을 안정시켜야 되잖아요. 그래서 뭔가 약간은 덜 알리는 듯한 느낌도 있어요. 그래서 둘 다 잘 안봐요.

  

근데 센다이가 30년 주기로 대지진이 일어난다는 말이 많았어요. 아직 과학자들이 예측한 지진은 이게 아니래요. 그러니까 아직 센다이에 한방이 남아있는 거죠. 그들 말로는. 제가 듣기로는 과학자들이 센다이에 더 큰 게 온다는 추측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방사능이 더 문제지만.

 

: 상종씨는 방사능에 대해선 별 의식을 못했나요? 탈출 당시엔.

 

: 저도 의식은 했죠. 후쿠시마가 바로 밑에 있으니까. 방사능 의식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나마 마스크 정도 쓰고. 원전 사고는 첫 째날 알았어요. 아이폰으로. 또 라디오로 방송 얘기해 주고.

 

: 일본으론 언제 돌아갈 계획이예요.

 

이: 개교가 미뤄졌어요. 4월말로. 그래서 그때까지 있다가 가려구요.

 

: 중요한 게 상종씨가 한 경험은 일본인도 평생 겪을까 말까한 일이거든요. 상종씨가 5일 동안 직접적인 경험을  한 사람으로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머리로 아는 게 아닌 체험을 한 사람으로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나요?

 

: , 아무래도 혼자 있는 거보다 주변 사람들이랑 모여 있는 게 안전한 거 같아요.

 

: 하긴 심리적 안정감이란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고 정보도 모아야 되니까.

 

: 네. 그리고 물부터 챙겨야 되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사실진짜로 이런 지진이 왔을 때 살아남는 거는 자기 능력보단 운이 따라줘야 되는 거 같애요.

 

: 그건 진린데요. 상종씨만 해도 조금이라도 밑에서 살았으면..

 

: 네, 그쪽은 쓰나미가 덮쳐서완전히정말 사는 사람은 살고 죽는 사람은 죽는 거 같아요.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잖아요. 그런데 그 후에 살아 있다면 물이랑 식량을 챙겨 놓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전기, 수도, 가스 모두가 끊긴 상황이어서 더 절실했어요.

 

: 라이프 라인은 다 끊겨 있던 셈인데. 일본에도 지진 때문에 수도가 끊길 걸 대비해서 욕조에 항상 물을 채워 넣으라는 메뉴얼은 있지만... 매일 그렇게 하기도 힘들고.

 


: 지진이 일어나면 가게가 모두 문을 닫고 그나마 열렸있는 편의점에 가도 사람들이 워낙 물건을 사두려 하니까 물건도 없어요. 사실 그렇게 되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지요. 지진이 결정하는 거죠. 살려줄지 말지는.

 

 



이상종씨는 인터뷰 후, 미안하지만 조금 눈을 붙일 수 있겠냐고 물은 후, 깊은 잠에 빠졌다. 천성이 담담하고 침착해 보이는 그도 무의식 속에 당시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듯했다.

 

어제는 지진이 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가 돌아갈 학교의 건물은 일부 붕괴되었다. 그가 속한 학부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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