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월드컵] 고운 분들 모셨다. 그대들 위해.


2010. 6. 18. 금요일

죽지 않는 돌고래

 

 

0. 프롤로그

 

6월 17일 오후 12시 14분. 이날 오후, 국회 취재건으로 일찍 사옥을 나오기로 했다. 일이 끝나면 곧바로 현장 퇴근이다. 삼각대와 카메라를 메고 1층으로 내려가려는 순간(데스크는 2층), 너부리 편집장이 한마디 던진다.

 

편 : 거, 돌고래는 응원 안가나?

 

이 말을 이해하려면 딴지일보 데스크계의 소통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편 : 일요일에 삼겹살 쏜다!

 

출근하란 소리다. 주말수당은 삼겹살로 대신한다.

 

필 : 돌고래, 시원한 거 좀 먹을까?

 

담배가 떨어졌으니 팔리아멘트 사오고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다음, 편의점에서 얼음을 담아 자기 책상 앞에 올려 놓으라는 강한 주장이다. 주전부리로 꿀땅콩과 육포를 사왔으면 하는 바람이 내포되어 있다. 사 온 담배를 피러 갈 동안, 책상을 닦고 쓰레기통을 비워놓지 않으면 빠타를 친다는 숨은 의지가 돋보인다.

 

이 상황은 나의 자유의지와는 상관 없이, 선배를 존경하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난 것으로 판단되어 모든 비용은 돌고래 주머니에 있는 세종대왕님이 해결한다.

 

편 : 이번 주는 이틀만 출근해라!

 

최고의 직장처럼 들릴 듯하다. 실상은 월요일 출근해서 수요일 퇴근하고, 다시 목요일 출근해서 토요일 퇴근하란 소리다. 야근수당은 여전히 삼겹살이다. (토요일 퇴근하면서 '일요일, 삼겹살 쏜다!'란 말을 듣고 집에서 토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설명하자면 끝이 없다. 따라서 '거, 돌고래 응원 안가나?'라는 말은 현장가서 사진을 찍어 오지 않으면 앞으로 회사 생활이 피곤해 질 거라는 뜻이다.    

 

참다 못한 나는 너부리 편집장 앞에서 오른 손을 번쩍들어 마치 싸닥션을 날릴 때의 손 모양을 취한 뒤.... 충성의 경례를 했다.

 

여튼 그렇게 현장 취재가 시작되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해서 해두는 말인데 돌고래는 너부리 편집장을 존경한다.

 

어떨 땐 가카이상이다.   

 

 

1. 서울역

 

국회에서 서울역으로 이동하며 예정된 1차 취재가 끝났다. 간단한 서울역 풍경.

 

 

월드컵 특수를 맞아 서울역 앞 백화점에서도 한창 응원도구전투복(?)을 팔고 있다.

 

 

 

경기 시간이 거의 다 되서 인지 서울역은 한산한 분위기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재밌는 것은 대부분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노숙자 분들이란 사실이다.

 

대한민국, 어딜가나 짬밥이다.

 

 

표를 파는 직원들도 월드컵 특수를 맞아 응원복 차림이다. 롯데리아 직원도, 맥도날드 직원도 모두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2. 시청광장

 

 

트위터로 의견을 받은 결과, 딴지라면 감옥같은 특수지역이나 소외된 곳으로 취재를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았다.

 

또 시청광장 응원을 두고 여러가지 논란이 있었던 관계로 취재를 보이콧하라는 의견도 많았다.

 

... ... 그런데 그냥 시청광장 갔다.

 

서울역에서 시청역이 한 구간이라서 그렇다던가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다. 

 

 

돌고래가 시청역에 도착한 것을 상부로부터 보고 받았는지 경찰들이 일렬 횡대로 각을 잡고 있다.

 

그 뜻이 가상해서 쑥쓰러운 미소로 경례를 날렸지만 그들도 부끄러움이 많은 탓인지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하긴 우린 프로이므로 서로 업무기간에는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게 예의다.

 

경찰을 향해 사진을 찍고 있으니 경찰 한명이 또 나를 카메라로 찍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겨운 기분이다. 허경영을 외쳐서 축복을 빌어줄까 하다가 너무 남발하면 복 나갈까봐 '허경'까지만 읊조렸다. 

 

사진 오른쪽 귀퉁이를 보면 경찰이 얼마나 긴 줄로 서 있는지 알 수 있다. 너부리 편집장의 갈굼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난다. 너부리 편집장의 뱃살처럼 넘쳐난다.

 

 

 

거리 중간 중간 마다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마치 너부리 편집장의 몸 여기저기에 핀 검버섯처럼 펼쳐치고 있다.

 

 

광장은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 후끈한 열기와 땀냄새, 화장품 냄새, 술 냄새, 함성이 뒤죽 박죽 되어 정신이 혼미하다. 마치 너부리 편집장의 평소 정신상태 처럼 혼미하다.  

 


정말로 꽉 차서 어떻게 더 이상 들어 갈 수 없는 상태, 마치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너부리 편집장의 10년 전 머리 숱 상태와 같다.
 

 

저 안에 있다가는 취재는 커녕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아 무수한 인파를 헤치고 다시 나왔다. 하긴 모두들 빨간색으로 중무장 하고 있는데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돌고래가 중간에 섞여 있는 것도 왠지 불편하다.

 

그때다.

 

 

3. 우리에겐 그녀들이 있다.

 

 

 

 

여기 저기 현장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응원을 나온 여성분이 눈에 띈다.

 

  

 

야간이라 사진이 흔들리는게 아니라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딴지 쉐이크(shake)보도 기법을 사용하므로 그렇다는 점, 앞으로 사진을 감상하면서 명심하시라. 이 분야에서 돌고래는 독보적인 존재다. 

 

여튼 현장응원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미녀 응원단. 사심을 100% 배제한 채, 오직 현장보도를 사랑하는 2천만 남성 딴지스의 염원을 안고 그녀들을 따라갔다. 

 

돌 : 저기요, 너무 아리따우셔서 그런데 내일 보도 사진으로 쓸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

 

 

꺄르르 웃음이 터진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가 보다. 명함을 돌린 후, 자연스럽게 응원하는 모습을 찍겠다고 했다.

 

 

 

 

성격도 화끈하고 얼굴도 아리따우신 응원단 여러분, 정말 감사하다. 약속대로 오늘 사진 올린다.

 

이 일을 계기로 현장반응 기사 컨셉을 내 마음대로 급 수정했다. 이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서울역 회군... 아니, 시청역 기사 컨셉 회군으로 기록될지니.

 

'미녀 응원단을 찾아라.'

 

오늘의 진짜 기사 컨셉 되겠다. 물론 100% 사심은 배제했다. 오직 4천만 딴지스들를 위해 말도 더듬는데다 여자라고는 평생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한 쑥맥, 게다가 장점이라고는 잘생기기만한 돌고래가 희생정신을 발휘했다는 점 강조한다.  

 

 

4. 고운 분, 찾아라.

 

 

어차피 현장 사진을 찍으면 축구 경기 보는 건 물건너 갔다고 봐야 된다. 경기는 뒤로 한 채, 딴지스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착한 분들을 물색했다.

 

 

모두가 한마음 되는 응원의 현장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고운 응원녀들이 기분 좋은 웃음으로 흔쾌히 사진을 허락해 주었다.  

 

사진은 팀당 몇장씩이나 찍었지만 야간인 관계로.. 아니, 돌고래가 쉐이크 보도기법의 프로인 관계로 일반인들은 그 미적감각을 이해할 수 없을까봐 쉐이크 보도 기법의 영향이 덜한 사진만을 골라 한장씩 올린다는 점, 명심하시라.

 

 

 

고운 분 찾아 삼만리.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앳된 응원녀들이다. 처음에는 친구들 몇명과 같이 서 있다가 갑자기 꺄~ 소리를 내며 몇명이 도망갔다.(위 사진) 

 

사진을 찍기로 했다가 막상 찍는다니까 부끄럽댄다. 이 나이 때의 소녀들은 낙엽만 떨어져도 꺄르르 웃는다고 했던가.

 

여튼 훌륭하게 자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소녀들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이 길. 하지만 목표가 정해진 이상, 돌고래는 간다.

 

 

대학에 들어 갔을 법한 응원녀들. 가운데 미녀는 사진을 많이 찍어 본 듯, 사진을 찍을 때마다 포즈가 자연스러웠다.

 

 

옥수수 먹고 싶다... 하지만 돈이 없다... 너부리 편집장은 야근수당으로 옥수수를 달라...

 

 

 착한 분 찾아 간다네.

 

 

도로 여기 저기에는 드문 드문 외국인도 많이 보였다. 오늘 꼭 사진을 실어 주기로 한 쾌활한 미녀 외국인 한분이 있었는데 내가 실수로 사진을 지워 버렸다.

 

정말 미안하다. 이 기사보면 딴지일보로 연락 주시라. 아예 화보로 가자.

 

 

재밌는 포즈에 기분 좋은 웃음, 찍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들어 준 미녀 응원단 여러분, 그대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자연스럽게 응원하는 모습을 찍어 주기로 약속 했는데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는데다 야간이다 보니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들이 미녀인 건 돌고래가 증명했으니 안심하시라. 딴지스들은 상상력이 충만하므로 흔들린 사진은 알아서들 머리 속에서 조합하리라 믿는다.  

 

 

걸어서 광화문역 쪽에 도착하자 또 다시 어마어마한 인파에 깜짝 놀라게 된다. 끝을 알 수가 없다.

 

본래는 딴지일보 전용 보도 항공기를 몰고 나와 위에서 찍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항공 조종사 면허를 아직 따지 못한 관계로 다음 기회에.  

 

 

다시 시청광장 쪽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더욱 많아 진 듯하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사진이 계속 흔들리는데다 밧데리가 다 떨어져 플래쉬도 가물 가물한 상태.

 

고운 분들을 발견했다 싶으면 이제부턴 으슥한 곳... 아니 빛이 많은 길 한 귀퉁이로 모셔간 다음, 사진을 부탁했다.   

 

 

귀여운 페인팅이 눈에 띄었던 소녀들.

 


백옥같은 피부에 청순미를 자랑했던 응원녀.  

 

 

마치 일본 하이틴 드라마에서 갓 튀어 나온 듯한 인상을 주는 응원녀들. 우월한 기럭지와 고운 얼굴을 가진 것도 모자라 성격까지 좋았다.

 

오른쪽 언니의 전체 얼굴이 궁금하다고? 돌고래한테 밥사면 가르쳐 준다.  

 

 

처음에는 약간 경계하는 듯하더니 곧 미소로 사진을 허락한 응원녀들. 돌고래 진짜 기자 맞으니까 다음에 만날 땐 처음부터 안심하시라.

  

 

아직 앳된 티가 물씬 풍겨져 나오는,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응원녀들. 지금처럼만 자라다오.

 

 그 이상, 바랄 것 없음. 

 

 

찍을 때마다 자연스러운 포즈가 나왔던 응원녀. 더 잘 나온 사진이 많았는데 사진 정리하다가 모조리 날려 버렸다. 정말 죄송하다.  

 

 

고운 분 찾아 이동하다 발견한 경찰들. 그러고 보면 이 분들도 월드컵이 보고 싶을 텐데 사고날까 통제하랴 윗 눈치 보랴 참 고생이 많다.

 

그대들을 위해 주문 하나 쏜다.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너무나 기분 좋게 사진에 응해 주었던 응원녀들. 원래는 아래 사진만 올리기로 했는데 미모가 출중한 관계로 윗 사진도 한장 더 올린다. 

 

아래 사진이나 윗 사진이나 뭇 남성들의 심금을 울릴테니 돌고래를 원망마시라.  

 

 

 

어마어마한 열기, 게다가 인파가 장난이 아니라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와이셔츠가 모조리 젖었다. 

 

어제 잠을 설친 덕에 피로가 몰려 온다. 슬슬 마지막 미녀를 찾고 현장 반응을 끝낼 생각.

 

 

오늘의 마지막 미녀 응원녀들. 위 사진을 먼저 찍고 그 다음 아래 사진을 찍었다.

 

아래 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고 이 사진을 올려 달라고 했지만 그대들 또한 뭇 남성들이 한장이라도 더 사진을 바라는 마음이 사무칠 것으로 예상되므로 두장 다 올린다.

 

우월한 기럭지를 표현하지 못해 죄송할 뿐이다.

 

 

5. 캄사말쌈

 

이번 기사에 등장해 준 모든 미녀 응원단 여러분, 흔쾌한 사진 허락, 정말로 감사하다. 복 받을 꺼다. 야간인데다 빛도 없고 무엇보다 찍사가 신통치 않아 실물의 아리따움을 제대로 담지 못한 점, 죄송하다.

 

돌고래의 바보짓으로 사진이 날아가 올리지 못한 미녀 분들,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하셨던 분들, 돌고래가 감히 미녀분들의 제안을 튕긴게 아니라 정말로 술을 못하기 때문이니 건방진 놈으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다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까 급하게 맥주캔을 치우고 사진을 찍어줬던 귀여운 학생들. 약속을 했는데 그대들 사진도 날려 버려서 미안하다.

 

그런데 왠만하면 수업 중에는 맥주 마시지 마라. 들키면 캔으로 맞는다.       

 

 

한국의 골이 터졌을 때의 사진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약 한 시간에 걸쳐 매우 껄끄러운 기분을 경험한다. 

 

딱히 할말이 없다. 아무쪼록 미녀 응원단들이 그대들의 아픈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미남 응원단 시리즈는... 돌고래가 남자들한테 먹히는 얼굴이 아니라서 딴 사람을 찾길 바란다.

 

이상!

 

 

트위터 : kimchangkyu

현장보도1팀장 죽지않는돌고래 (tokyo1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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