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 안타까움과 눈물은 점점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순간보다 그 이후에 진짜 슬픔과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감정의 실체는 시간이 지나서야 올곧이 보인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지금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후손들이 보기에 이 순간은 대한민국 역사상 다시 없는 격동기로 느껴질 것이다. 역사책을 보며 먼 나라 일처럼 느꼈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한 국가의 수장이었던 이가 목숨을 버린 것은, 조선왕조 500년사에도 없었던 대사건이다.

 



2.

이 감정은, 감히, 국민의 80%는 제대로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그랬듯 주위 1m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신경 쓰다 한번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보곤 하던 일을 계속할 뿐이다. 냉정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에 별다른 감정이 없다.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대부분의 사건에 적용된다.


 

나머지 20%의 사람들이 둘로 갈리어 전혀 다른 관점에서 격렬하게 이 순간을 느낀다. 퍼센테이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이 부분은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뉘앙스인지 잘 알 거라 생각한다. 가슴 아픈 동시에 무서운 부분이기도 하다.


 



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쪽은 소수이지만, 결정하는 것은 다수다. 이 불완전한 민주주의에서는 더욱 그렇다. 움직이지 않는 80%의 분위기를 몰고 가는 쪽이 역사의 승자로 남아왔다. 그것이 암묵적 공포가 되든 불완전한 폭력이 되든 말이다.



3.

노무현은 대한민국 80%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주려 했던 사람이다. 공포도, 폭력도, 거짓도 없이. 대한민국 정치 풍토상 이런 정치인이 다시 나오기는 힘들다. 이건 한낱 정치인의 그릇으로는 생각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무현은 했다. 죽기 직전까지 최선 다했다. 그래서 난 노무현이 바보라고 생각한다.


 

무서운 것은 진실이 덮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노력이 그냥 덮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쓰여지는 역사는 대세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대세가 노무현과는 반대되는 정치인의 연속이라면 노무현은 영영 묻힐 수도 있다. 온 몸에 피를 묻힌 채.



 설마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현실을 보자. 노무현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 대한민국 역사상 다시 없을 정도의 철두철미한 보복성 수사에 직면했다. 친인척은 물론, 후원계좌에 8만원을 넣은 사람까지 전화로 닦달했다. 코미디다. 조선시대에 한 쪽이 권력을 잡았다고 나머지 파를 피로 숙청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9족을 멸하려고 작정하지 않으면 이런 짓을 할 수 없다.


 


4.

검찰이 괴롭힌 강금원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노무현과 강금원 같이 순순하게 맺어진 파트너가 다시 나올까 싶다. 대한민국 검찰의 그릇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으리라. 인간이 인간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도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노무현의 잘못도 크다. 그는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계속 한 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정치인에게 인기는 생명과 같다. 안 뽑아주면, 즉 다음 번에 지면 영영 죽을지도 모른다. 평생 아무것도 아닌 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사는 게 정치인이다.


이명박은 바닥까지 떨어졌던 노무현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을 게다. 지금 밟아 놓지 않으면 정권 내내 그의 그림자에 시달려야 했을 테니까. 얼마나 짜증 났을까. 서울에서 터를 잡고 여전히 세를 과시하려는 전 대통령도 아니고, 저 시골 촌구석까지 내려간 힘없는 전 대통령에게 열등감을 느껴야 했으니까.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데 왜 노무현이 덮이는가? 알다시피 우리는 그렇게 오래 기억해 주지 않는다. 인터넷의 힘? 크지만 우리 생각만큼 크진 않다. 때로는 무엇보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3자의 입장인 대다수의 사람은 언제나 중립을 취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진짜 중립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5. 

추악한 메이저 언론들이 왜 성공했나? 왜 결과적으로 그들이 항상 이겨왔나? 대부분의 사람은 언제나 중립을 택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 1이란 정보를 주고 한쪽에서 3이란 정보를 주면 사람들은 2를 택했다. 진실이 1이고 혼란을 주기 위한 거짓이 3이라고 쳐도 언제나 2를 택했다. 그러는 편이 가장 진실에 가까워 보이니까. 그러는 편이 스스로가 객관적인 입장으로 냉철하게 사태를 파악하는 것 같으니까. 그러는 편이 덜 촌스러워 보이니까. 항상 이렇게 속아왔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이해관계가 없는 우리의 후손들은 더욱더 그럴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겁이 난다.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 선조들은 손톱 사이에 바늘을 집어넣고 손톱을 뜯어 내도 물러서지 않았다. 독재에 항거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쇠파이프에 코뼈가 으스러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과연 그들 자신을 위해 그랬을까. 그걸 아는 우리가 여기서 포기 한다고,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지금 보다 희망 없었던 적 많았다. 거의 대부분 지금보다 지랄 같았다.

 

노무현은 갔다. 지금쯤 담배 한대 피면서 난 괜찮아. 허허하면서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 눈 앞엔 없다. 최초로 모든 권력을 버리고 시골 구석으로 간 그를 보면서 나는, 그가 새로운 원로정치인의 모델이 되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가 죽기 전까지 새로운 무언가를 또 보여줄 거라 믿었다.


권력에 한번 맛을 본 사람이 그렇게 훌훌 털어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거, 국가예산을 모두 준다 해도 힘든 일이다. 서울에서 끝까지 눌러 앉아, 남아있던 힘을 이용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권력이 날아가면 집 앞에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는데, 미치지 않는 이상 시골까지 내려가서 인사하는 정치인은 없었을 거다.


 


6.

노무현은 그렇게 죽을 힘 다해 대한민국 정치의 기존 틀과 싸웠다. 모두가 이건 아닌데…’생각하면서도 정치하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생각하던 암묵적 합의들과 미친 사람처럼 싸웠다. 그 과정에서 국민적인 공감을 얻지 못한 부분도, 메이저 언론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싸워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노무현이 그 정도 했으면 우리도 뭔가는 해야 한다.



언제라도 바보가 정치할 수 있는 사회, 이게 옳다고 생각되면 휘발유를 들고도 불 속으로 뛰어 드는 사내, 간절하다. 대한민국 정치판갈아 보려면 제 이, 제 삼의 노무현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제 2의 노무현을 만들어야 할 때다. 아니, 언제라도 노무현이 되고 노무현이 나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홀로 괴로워하다 절벽에서 몸을 던진 대한민국 최고의 바보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