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거,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어학 팟캐스트가 있었다.

당시는 경쟁자가 많지 않았고 딴지가 팟캐스트 선구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모양인지 제법 인기가 좋았다. 

광고는 물론, 100만 부씩 어학 교재를 팔아치운 출판사의 러브콜이 쇄도했다. 평생 그럴 줄 알았다. 게으름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룰루랄라 놀다가 모든 기회를 날려 먹었다.

돈이 되는 일만 기가 막히게 피하는 건 바보 같으면 바보같다 할 수 있으나 이게 또 우리가 사는 방식이라면 방식이 아닌가 한다.

2.
광고주 중 우리가 놓치지 않은 사람도 있긴 했다. 지금의 스냅챗과 유사한 플랫폼을 구축한 이로 팟캐스트의 인기를 활용하여 플랫폼을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시대를 뜬금없이 앞서나간 것과는 별개로 이 광고주가 조금 독특했다.

사람의 얼굴에 무딘 타입이라 음지의 사람과도 부담이 없는 편인데 그는 남달랐다.

모히칸 헤어스타일, 헬보이 체형, 지옥의 암반수로 밥을 지어먹어야만 나올 수 있는 분위기. 어울리지 말아야 할 사람이란 이런 느낌이 아니던가.

어느날, 우연히 집에 놀러와 맛있는 조각 케잌을 같이 먹으며 됨됨이에 대한 오해는 풀렸으나 첫인상이 주는 한기만큼은 지금도 선명하다.

3.
그는 현재 월천상회라는 출판사 대표로 어린이 책을 기획하고 옮긴다. 특히 “유소프 가자” 작가의 코끼리 동화책은 9개월된 하루도 좋아한다.

글은 읽지 못하나 매우 집중해 그림을 살피는 걸 보면 어른은 모르나 아이의 마음을 잡는 무엇이 있는 건 확실하다.

허나 그런 책을 옮기는 사람도, 스스로는 알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한다.

4.
아래는 학교 주위를 순찰하며 “연두지킴이” 로 나선 그의 모습이다. 아내와 나는 이 사진을 보고 5분 동안 제대로 호흡하지 못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 연두지킴이야 ㅋㅋㅋㅋㅋㅋㅋ 러시아 갱단이지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하악하악 ㅋㅋㅋㅋㅋ 안전 안지키면 ㅋㅋㅋㅋㅋ 총으로 갈길 것 같애 ㅋㅋㅋㅋㅋㅋㅋ”

“연두지킴이래 ㅋㅋㅋㅋㅋ 연두지킴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인간은 자기 자신만큼은 알기 힘든 법이다.

 

... ...

 

옆구리에 있는 건 누가봐도 보드카입니다.

#연두지킴이 #러시아갱스터

 

2018.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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