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와 어머니는 맞벌이라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2.

부산 구서동, "주공 아파트".

 

대한주택 공사(현 한국토지 주택공사)가 국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지은 이 아파트 단지는 한국에 아파트 시대를 연 상징으로 대개 구조는 비슷하다.

 

5층 규모에 부엌과 거실이 붙어 있고 작은 평수는 방이 1개, 큰 평수는 방이 3개다.

 

부엌 옆에는 흔히 “다용도실”이라 부르는 조그마한 창고 용도의 공간이 있는데 대부분 여기에 세탁기를 놓았고 그 옆에는 사각형으로 된 쓰레기 투입구가 있다(1층부터 5층까지 하나의 긴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쓰레기를 버리면 1층까지 떨어진다. 우리집은 4층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조그만 구멍으로 무언가를 던지면 한참 있다 통, 소리가 난다).

 

3.

이곳에 나의 행복이 집약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이 좁은 공간에 화로를 두고 내게 군밤 구워주는 것을 좋아했다.

 

맥가이버칼로 밤에 일자 흠집을 내어 쥐포 구이용 철망석쇠 사이사이에 넣은 뒤, 화로 위에 올려 놓으면 금세 타닥타닥 소리가 난다.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시간을 두고 석쇠를 이따금 뒤집는다.

 

두 명이 겨우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에서, 나는 할아버지 옆에 껌딱치처럼 달라붙어 군밤 익기만을 기다린다. 할아버지가 "됐다!" 하면 그것을 꺼내 호호 불어 껍질을 깐 다음 내게 준다.

 

할아버지가 하나를 먹고 나는 두 개를 먹는다.

 

4.

일곱살, 혹은 여덟살, 그때의 나는 할아버지가 악몽을 꾸고 다리가 아픈 게 고문후유증인 줄 몰랐다.

 

어떤 기자가 이런 일을 챙기나 고마워, 이름을 살펴보니 김태권 작가다. 어린 왕자의 귀환을 시작으로 한나라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를 챙겨 보았는데, 그 작가님이 맞아 반갑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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