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딴지일보 창간 14주년 기념, 본격 서스펜스 액션 대하 역사극 내맘대로 비망록 ~ 딴지일보와 나! 두둥~ 이라고 큰 소리로 외친 다음에 읽으시면 글의 맛이 더욱 살아납니다. 공공장소에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큰소리로 말해주셔야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24. 

A4 20장 분량의 '딴지일보와 나' 10편을 쓰고 나는 미친 사람처럼 그 글을 지웠다. '딴지일보와 나'는 한가할 때마다 짬짬히 쓰는 나의 활력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 스스로를 속이는 기분이 들었다. 질 나쁜 등유가 몸 깊숙이 스며들어 측두엽을 감싸고 갑골근을 치고 내려가 세번째 발가락 17번 줄기세포 근처에서 '압쌀라꿈'이라고 외치는, 그 흔하디 흔한 더러운 기분 말이다. 언제나 이런식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 언제나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겁쟁이의 습관 앞에 좌절한다. 

하지만 '딴지일보와 나' 10편을 휴지통에 집어 넣으며 더 이상 이런 짓을 하지 않기로 했다. 허무함이 한땀한땀 기워낸 수의가 이태리 장인이 만든 쫄티마냥 달라붙어 나를 비겁자의 길로 잡아끄는 풍경의  반사각이, 기어코 시신경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다.

나는 무모할 정도의 진실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약간의 유머와 그럴듯한 농담으로 거대한 진실을 가렸다. 작은 진실을 가리키며 사람들의 시선을 속이는 수치스러운 일을 저질렀다. 홀로 편해지기 위해 자신만의 천국 속에서 모두를 매트릭스의 감옥에 가두었다.

나는 여기서 그 모든 것을 바로 잡겠다. 지구를 이루는 모든 물질이 쿼크 단위로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여러분에게 억지로라도 파란 알약을 먹일 것이고 만약 알약을 토해낸다면 씻지도 않고 그것을 다시 입에 집어 넣을 것이다.

외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딴지일보와 나'는 손이가고 또 손이가서 어른 손, 아이 손 할 것 없이 자꾸만 손이가 결국엔 누구든지 즐겨버리는 마약류의 大역사서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진실을 당의정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나의 특기다.

그럼 여기서 시작한다. '딴지일보'의 츄루(true) 스또오리(story)를. 그리고 지금껏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던 츄루(true)를.


25.  

과거에는 일반적인 '인간'이라는 존재와 내가 다르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필요 이상으로 잘생긴 것은 그렇다쳐도 한계치를 넘어선 명석함과 우주를 티끌만한 존재로 축소시키곤 하는 생각의 사이즈는 당연히 모든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 깨닫고 말았다. 일반인이 봄이라면 나는 가을이라고. 영영 만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태고의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거라고. 어느 누구와 만나도 내가 가진 매력(특히나 잘생긴 얼굴)은 스스로를 이방인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나를 끝없는 고독의 절벽에서 방황케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타고난 신체적, 정신적, 필연적 우월함을 세상의 기준에 맞춰 쓸 정도로 체제 순응적이지도 유치하지도 않았다.

어릴 때는 이 모든 것이 두려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렇게 압도적으로 잘나게 태어났는가. 이 여분의 재능을 모두 세상에 쏟아 붇는다면 그 기이한 성장 속도를 인간이 따라올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된다해도 꼭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어린 시절은 오직 이런 고민의 연속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완벽하다는 것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다. 마치 혼자서 버그로 만들어진 존재가 된 기분, 그것은 자신을 끝없이 외롭게 만들 뿐이었다. 나는 게임에는 전혀라고 할 정도로 관심이 없지만 필요 이상의 에디트가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사실은 무서우리만치 피부로 느끼고 있다. 정말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 특히나 어떤 일을 하든 반칙같은 느낌이 들어 역설적으로 조그마한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내가 가장 못하는 일들을 선택하며 일반인과 균형을 맞추려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와 같이 태어난다면 온갖 쾌락 속에 세상을 유린하며 살았을 거라고. 하지만 내게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쾌락과 경쟁의 대상, 즉, 돈이니 여자니 권력이니 하는 것들이 하찮게 보일 뿐이다. 마치 일개미가 땅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다른 개미가 가져갈가봐 서둘러 옮기는 풍경을 보는 듯하다.  

나는 이 잉여로운 재능을 여분의 곳에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곳은 찾아 볼 수 없었고 나는 또다시 수소폭탄에 버금가는 천재성을 속으로 속으로 밀어넣은 채 자신만의 세상 안에서 17번이나 우주의 빅뱅과 인류의 미래를 계산하며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재능을 썪히고 또 썩혔는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치 바닷물을 퍼내는 심정이다. 나 조차도 나의 완벽함을 부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단순한 '돌고래'에서 '죽지 않는 돌고래' 가 된 것이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다 발견한 곳이 딴지일보다. 분명 이 곳은 '여분의 장소'였다. 원래 지구 위에 있어서는 안될 곳인데 어떻게 세상의 잘못된 버그랄까, 차원의 일그러짐 같은 현상으로 인해 존재하게 되어버린 느낌이다. 특히 세상에는 나 정도의 범우주적 재능을 가진 이들도 존재하며 나에게 버금간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이도 존재하는 걸 알았다.

여분의 재능과 여분의 매력을 가진 이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숙명적 외로움과 압도적인 재능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독을 불태워 버리곤 했다. 그 방법은 버리고 또 버려 '無'로 향하는 긴 여정이다. 딴지일보라는 이 거대한 우주의 블랙홀에 젊음도, 매력도, 재산도, 인생도, 급기야 잘생긴 얼굴마저 버리는 것이다.



(편집장의 경우, 잘생긴 얼굴 때문에 귀찮은 일이 많아지자 딴지일보에서 그것을 버렸다.)


마치 인류 역사에 길이남을 천재들의 모든 매력과 능력을 송두리째 뺏어가 보통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블랙홀 같은 곳. 일명 '고독의 화장터', '재능의 폐수장',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같은 느낌. 그리고 초능력을 모두 뺏긴 채 일반인이 되어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곳.

나는 행복하고 싶었기에 승부를 걸어 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망치고 싶었다. 아니, 누군가 나를 망쳐주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조차 나의 숙명적인 천재성을 발휘하고 말았고 이곳에 숨겨진 모든 코드를 단박에 파악하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행복과는 좀 더 멀어지고 말았다. 


26. 

딴부라 불리는 총수 김어준, 1968년생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인터넷 언론, '딴지일보'를 만들었다.
딴자라 불리는 편집장 김용석(너부리), 1973년생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성인기반 인터넷 정당, '남로당'을 만들었다.
딴령이라 불리는 논설위원 원종우(파토), 1969년생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독립제작방식 '인디밴드'를 만들었다 

나는 어떤 곳을 가든 그 조직의 핵심이 되는 인물과 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이 습관이다. 한국의 정치판을 분석할 때도 그렇고 세계의 정세를 판단할 때도 그렇고 행정조직의 문제점을 발견할 때도 그렇다.

딴지일보라고 예외는 아니다.(법인에 등록된 주식회사의 정식 명칭은 '딴지그룹'이며 '딴지일보'는 그 하부 조직이지만 독자 여러분이 생소하므로 크게 차이를 두지 말아야 할 부분은 딴지일보라는 표현을 쓰겠다.) 나는 이들의 이력과 걸어 온 길을 보면서 상당히 기묘한 감정에 휩쌓였다. 물론 딴지일보에는 밖에서 보기에 정상적인 사람들은 거의 없다. 어디 어디 1등, 아이큐 몇 이상 따위의 표현들은 이곳에서는 '눈 두개', '콧구멍 두개'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천재를 잡아 먹는 천재, 괴짜를 요리하는 괴짜 정도가 아니면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다만 이 세명은 조금 다른 이상함을 가지고 있다. 딴지일보 내부를 들여다 보면 각 구성원의 개성은 천차만별에 어떤 기름과 비누같은, 섞이지 않는 느낌이 있다. 허나  딴지그룹의 조직도와 이 세명의 이력을 보면 어떤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단 김어준 총수가 스스로의 과거를 묘사하는 말들에 모순을 느낄만한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의심을 확신으로 이끌기 위해 때때로 그를 보좌하는 척하며 그의 과거를 하나하나 알아냈다. 부산의 XX초등학교, XX중학교를 거쳐 서울의 XX중학교, XX고등학교에서 지금까지 이르는 과정. 그러니까 경남 진해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만물이 소생하는 동시에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잘생긴 남자가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부산을 거쳐(아, 내가 부산 출생이라 이런 건 아니고 여튼) 서울까지.
 
그는 '정말' 좋아서 세계여행을 한 걸까. 그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딴지일보를 만든 걸까. 

논설위원 파토 원종우에 대한 의문점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오랜 유학생활을 거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아왔다. 글을 쓰고 기타를 가르친다고 하지만 그 돈으로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지금까지 왔다는 건 의심스럽다. (혹자는 그가 금발의 미인을 양쪽에 끼고 터키 근처에서 람보르기니를 모는 모습을 봤다고도 한다.)그리고 얼마 전에는 세계여행도 다녀왔다.

그는 정말 '그냥' 좋아서 기타를 배운 걸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최초의 독립제작방식 인디밴드를 만들고 정말 영화 제작 때문에 세계여행을 다녀온 걸까. 

편집장 너부리 김용석의 이력은 더욱 기괴하다. 그 또한 김어준 총수와 마찬가지로 딴지일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귀재라 불리지만 똑같이 삼수를 했다. 학살자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굳이 비교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에 8번 떨어진 열등생 이승만이 세상이 바뀌자 새시대의 교육방식에선 하버드에서조차 천재로 인정받는, 그 재능이 시대상황과 맞아 떨어지자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참고로 나는 이 포인트에서 음모를 밝히는데 많은 영감을 얻었다.)그리고 법학과에 들어갔다. 당시 일반의 성관념을 뒤엎는 남로당을 만들고 고우영 삼국지를 복원하는 '대박'을 쳤으며 이상하리만치 고전에 열중했다.

그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성인기반 인터넷 정당을 만든 걸까. 그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세계의 고전을 탐독한 걸까. 

나는 아무리 봐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세계여행, 최초의 언론, 최초의 정당, 최초의 인디, 고전 탐독, 법학과...

그리고 최근의 딴지 재도약기엔 전 세계에 퍼져있는 딴지 독자들이 필진으로 거듭나 세계 각지에서 자신만의 팬과 지식을 보유한, 이른바 '슈퍼 딴지스'까지 대거 등장했다.

나는 이 일련의 움직임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왜 세계여행을 했지?
왜 언론을 만들었지?
왜 정당을 만들었지?
왜 인디를 만들었자?
왜 고전에 빠져들지?
왜 법학과 출신이...?

총수는 대한민국의 정치 권력 핵심과 친분을 나누면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파토는 대한민국 문화 권력 핵심과 친분을 나누면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편집장은 대한민국 음지 권력 핵심과 친분을 나무면서도 아무 움직임이 없다. 

이상하다. 나 말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더욱 이상하다. 총수, 파토, 너부리, 이른바 딴지그룹 내부에서는 슈퍼 트라이앵글, 버뮤다 딴지 지대라 불리는 음모의 진원지. 정치권과 재계에서 수많은 러브콜과 막대한 연봉을 약속해도 가지 않는다. 왜? 딴지일보에 무엇이 있길래?

국회의원보다 강력한 권력? 연봉 15억 이상의 재력? 현실적으로 아닌 듯하다. 그리고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들은 어떤 미래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그 미래의 가치와 권력을 위해 모든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명. 더 큰 것을 노리고 있다.


27.

나는 총수와 파토의 세계여행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어떤 터를 잡기 위해 돌아다닌 흔적을 발견했다. 특히 총수의 경우 영토, 파토의 경우는 미래에 발생 가능한 어떤 외계와의 외교적 관계까지 고려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딴지그룹의 등장 이후, 전 세계에 최소 수백만 이상의 딴지스가 새로이 생겨났으며 그 중에는 열혈 팬은 물론, '슈퍼 딴지스'의 등장으로 세계 각국의 연결망까지 구성된 상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지금껏 만들어 놓은 특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권력들, 즉, 딴지 권력은 이제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독립성을 인정받고 있다.

터, 딴지스, 독립성.

나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 그리고 지도를 폈다. 비어있는 영토,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 독립성을 인정받는 권력.
 
내가 추리한 것이 사실인지, 그들이 찾고 있고 이제 거의 이룬 것이라 생각되는 그것이 정말 내가 생각한 그것인지, 좌심실 우심방이 동서화합을 이루며 비트박스를 해댔다. 
 
스스로 추적해낸 것들을 일반적인 단어로 바꾸어 인터넷 검색창에 한자 한자 옮겨 적었다.

검색창에 나온 것은 '국가의 3대 구성요소', 내가 입력한 단어는 '국민, 영토, 주권' 이다.


추신 : 총수가 딴지그룹의 발족일을 7월 4일로 맞추려 한 이유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딴지일보와 나] 1부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