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지금부터 나는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미움받을 수 밖에 없는 딴지일보 제 3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공개한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큰 위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미 거대한 음모의 서막이 밝혀진 시점에서 조차 그 이름을 쓸 수 없는 내 심정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이제부터 그를 '강길묘'라는 가명으로 부르겠다.

그의 필명은 이미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29.

강길묘라는 인물은 특채 9기로 12기인 나보다 선배가 된다. 기자로서는 특이하게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신뢰와 미움을 동시에 받는 묘한 인물이다. 그녀는 특채 라인의 대표적 인물인데 한때는 특채 파벌의 중심인 파토를 혼자 힘으로 위협할 만큼 굉장한 실력을 자랑했다. 그녀가 면접에서 했다는 말들은 아직도 회사 내부에서 꽤 화자가 된다. 

당시 면접관은 총수, 너부리, 파토로 강길묘에게 각자 묘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딴지일보는 남자에게 각종 가혹한 필기와 면접, 엄격한 조건등이 적용되지만 여자에게는 염색체가 'XY'(총수가 정한 기준), '예쁠 것'(너부리 대장과 파토 논설위원이 정한 기준)말고는 별다른 기준이 없다. 언듯 보면 성차별이라 회사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날 듯 하지만 내부 직원들이 광적으로 이 기준을 지지하고 있어(내부직원 중 80% 남자)지금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면접 당시, 총수는 언제나처럼 '뭐야! 대가리가 왤케 작어!', '가슴에 뽕 넣은 거 아냐!', '난 머리 숱 많다!' 같은 면접과 관계 없는 말을 하며 시종일관 스스로의 개그에 스스로 박장대소했고 파토는 굉장히 우수에 찬 눈빛으로 뭔가 자신은 면접관이지만 전혀 당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쿨한 남자이니 나에게 반해라!! 같은 느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계속 기타를 만졌다. 

할 수 없이 너부리 대장이 첫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수나 파토 옆에 있으면 그 기기묘묘하고 변태무쌍한 매력 때문에 자기 중심을 잃고 분위기에 편승한다. 평소에는 치지 않을 개드립도 어느 순간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자기 중심을 지키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해야할 일을 해내는 몇 안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 바로 너부리 대장이다. 그는 회사내부에서 자행되는 총수의 의견에 유일하게 '그건 비겁한 개드립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신입사원 시절, 총수가 출근해도 기립박수를 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 업무를 봤다는 일화도 유명하다.(딴지일보에서는 총수가 출근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리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쳐야 한다. 게다가 과거 딴지사옥 1층에는 총수 사진이 사무실 위에 크게 걸려 있어 충성을 다짐하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있었다.)

딴지일보 최장기 편집장이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렇게 자기 중심을 지키는 능력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총수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내부경영의 전권을 위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편집장이 질문을 던졌다.         

'길묘씨. 여기는 기획력이 없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현재 판세를 설명해 줄 사람도 없고 끈을 연결해 줄 담당도 없어요. 기획, 섭외, 취재, 사진, 녹취, 맞춤법 검사, 이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줄 돈도 별로 없어요. 하하하. (특유의 헛웃음) 그렇게 고생해서 쓴 기사를 제가 나가리 시킬지도 모르죠. 그래도 여기서 일하고 싶나요? 그래도 자기가 딴지에 쓰여질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때 옆에서 총수가 눈을 부릅뜨고 무언가 말을 할 것 처럼 하더니 방구를 뿌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고 꼈다. 사실 면접 때 총수의 방귀 소리만 듣고 기겁을 하거나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사람이 상당수 존재한다. 편집장이 방귀를 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자나 책상 밑에 들어가 벌벌 떠는데 총수의 경우는 진동 보다는 냄새로 승부하는 유형이라 사원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이것 때문에 고소나 고발을 당하는 경우(http://bit.ly/lm2mgr <- 해당법에 의거)도 많았지만 총수는 개의치 않았다. 딴지일보의 재정 악화는 이러한 고소나 고발로 인해 상당한 비용이 소모된 점이 적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시체 썪는 냄새가 난다고 민원이 들어온 적도 꽤 된다. 세간에 떠돌고 있는 '총수는 엉덩이로 돈다발을 씹어 먹는다'는 이상한 소문은 이러한 사실이 와전된 것이다. 

어쨌든 길묘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똑똑히 편집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지막 질문이 기분 나빠요. 제가 딴지에 쓰여지다니요. 딴지가 제게 쓰임을 당할 뿐이죠.'

그녀의 당찬 어투에 다들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신짱에 의하면 그녀의 어떤 기개나 야망에 감동하기 보다는 세남자 모두 단순히 육체적으로 '쓰임을 당하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하는데 진실은 알 수 없다.

멀리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재무팀장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총수에게 다가가 아주 진지한 말투로 '장이 썪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그녀의 풍부한 의학지식을 눈치 챈 너부리와 파토는 10점 만점에 10점을 줄 수 밖에 없었다는 소문이 있다.

어쨌든 그렇게 그녀의 입사는 결정되었다. 

안타깝게도 면접 당일 잃은 후각은 산재보험 처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30.

그녀는 기사를 쓸 때, 고정된 필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듯했다. 독자들은 아무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때때로 성별 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길묘는 다양한 필명으로 사회에 파장을 던지는 기사를 썼으며 회사 내외부에 신뢰를 쌓아갔다. 특히나 외부에 기고할 때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필명으로 쓴 연애나 성상담 칼럼이 크게 인기를 얻었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그렇게 많은 연애를 한 것 같지도, 남자와 경험이 많은 것 같지도 않았다. 선배인 OO양이 당시 그러한 점에 의문을 느끼고 '별로 경험도 없는 것 같은 아이가 어떻게 그런 글을 쓰니. 바람둥이도 아닌 것 같고'라고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바람둥이는 깊은 글을 못써.' 

'하지만 유명한 작가 XXX나 한국에서 최고라 불리는 XXX, XXX도 다 유명한 바람둥이잖아.'

'좋은 작가지 훌륭한 작가는 아냐. 작품을 잘봐. 정말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있다고 생각해? 바람둥이는 결국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 다니고 그때 그때 입에 발린 말을 해야 되기 때문에 사람을 깊이 있게 사귀지 못해. 순간 순간의 처세로는 깊이를 얻지 못한단 말이지. 그런 글을 보고 인간에 대한 깊이가 있다느니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이 있다느니 하는 건, 결국 그 글을 보는 사람조차 그만한 깊이를 느낄 통이 안된다는 거야.'       

하지만 그녀는 그로부터 2년 후, 자신의 가치관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을 일생 일대의 위기를 맡게 된다. 

'하반신 마음설'의 절대적 지지자. '성욕으로 주조된 남자, 허리 신동, 난교형 인간, 발기 천재, 하반신 제왕'이라 불리는 남자. 지구상의 모든 정욕을 한데 뭉쳐 놓는다 해도 이 남자 한명과 비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남자. 

언젠가 내가

'형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됨?'

이라고 묻자

'밥 먹는 시간엔 밥을 먹는다. 일하는 시간엔 일을 한다. 잠 자는 시간에 잠을 잔다. 그 외의 시간에 모두 섹스한다.'

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 남자.

특채 11기, 필독의 입사가 결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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