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윤석이 연기한 동주라는 사람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중학교 때 담임이 생각났다. 전증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었는데 꽤나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 정면에서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하다 소위 아구창이란 것(부산에선 이렇게 표현한다. 턱주가리를 날린다고 해야하나. 다른 지역에선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겠다.)을 세 번 맞았다. 맞아서 날아가자 제자리로 바삐 돌아와 다시 맞은 탓에 오뚜기라는 별명도 가졌다.

 

난 이 선생님이 싫지 않았다. 그렇다고 메조키스트는 아니다. 선생님도 인간이라 화를 주체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이 사람이 가진 내적 기준은 약자를 괴롭혀선 안 된다.’, ‘인간이 되어야 한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상에 이토록 많다.’같은 것이었다. 나는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선생이라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때리는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어서 이 선생님이 좋았다. 그 선생님도 나도 그 시대를 살아서 용인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아래는 7년 전쯤, 문득 선생님이 생각나 쓴 글이다. 내가 이 선생님에게 가지는 감정은 대충 이렇.

 

공부는 속지 않기 위해 배우는게 아니라 속이지 않기 위해 배우는 거다

 

 

2.

폭력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나의 경우, 말로 해서 될 정도로 깨인 놈은 아니지만 때려서 될 정도는 되는 놈이었기에 큰 불만은 없을 뿐이다.

내가 만약 선생이라면, 예를 들어 좋지 않은 약을 한다거나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나쁜 길을 향해 가고 있다면, 죽도록 패서라도, 그 순간 미움을 받더라도 학생을 제대로 되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불행히도 그런 용기는 내게 없다.

 

물론, 초등학생 때 까지는 학생을 때려선 곤란하다고 생각하지만 중학생쯤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마음이 통할 놈들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고등학생쯤 되면 웬만한 녀석은 선생님보다 완력이 세다. 진심을 가지고 때리는 선생님들은 이 녀석에게 미움 받으면 어쩌나’, ‘이러다가 학부모가 학교에 쳐들어와서 짤리면 어쩌나’, ‘이 녀석이 앙심을 품어서 밤길에 내 뒤통수를 빠타로 치면 어쩌나같은 생각을 밀치고 엄청난 각오로 내 죽통을 날린다고 생각한다. 이걸 어떻게 구별하냐고 반문하면,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 아는 놈 축에 끼어 있을 뿐. 나를 때려서 증오하는 선생님도 있지만 나를 때려서 좋은 선생님도 있었다고 설명할 수 밖에.  

3.

 

거꾸로 아버지의 경우, 불 같은 성미에도 불구하고 내가 장성할 때까지 나를 한번도 때리지 않았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다. 철이 들지 않았을 때는 학교에서 물건을 때려 부수거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치하게 화를 냈다. 만약에 내가 아버지로부터 맞고 컸다면 학창시절은 물론, 군대에서도 사람을 때렸을 것이다.

 

이 점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한국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맞아야 할 때, 맞아도 될 만한 사람에게만 맞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행운이다.
 

 

4.

 

얼마 전, 필리핀에 다녀와서 그런가 영화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땡처리 항공권이 나와 보라카이란 휴양지에 다녀왔는데 충격을 받은 것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가, 언제라도 머물고 싶은 리조트, 여유와 돈이 넘치는 유러피언보다, 그 주위의 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나는 수영장이 딸린 리조트에서 바텐더가 만드는 칵테일을 마셨지만 거기서 한발짝만 나가면 필리핀 노인이 녹이 슨 양수기로 물을 퍼고 판자집에 사는 어머니가 양동이에 물을 받아 아이를 씻기고 있.

 

충격이었다. 이중적이고 착하지도 않은 나지만, 분명 충격이었다. 인간성이 남아 있다면 누구나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5.

어쨌든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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