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노테선을 타고 예정에 없던

유락쵸(이름이 굉장히 괜찮다고 생각했다.)로 향했다.

'있을 유(有)'자에 '즐거울 락(樂)'자.

'즐거움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아마도 예전에 환락가가 아니였을까...




유락쵸에서 내려 긴자의 거리를 걷게 되었다.

긴자...

이 동네는 신주쿠와 이케부쿠로와는 느낌이 다르다.

신주쿠와 이케부쿠로가 10대, 20대의 기분을 가지고 있다면

이쪽은 적어도 30대 이상이다.

역시나 듣던대로 경제적으로 탄탄한 중년들의 거리.

각종 명품관과 값비싼 건물들이 그것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여기 저기 밤거리를 비추는 환한 네온싸인은

단순한 밝음 이상의 고급스러움이 녹아 있었다.

물론

건물들도 굉장히 신경을 쓴듯

'이정도는 되야지 긴자에서 면식을 한다'는 듯한 느낌
이다.






1시간 정도 홀로 긴자의 거리를 걸었다.

... ...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다.

아무도 내 어깨를 치는 이가 없다.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다.

역시나 여기는 아직 내 땅이 아니다.




... ...






잠시나마

긴자에서 통하는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이거리를 걸으며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동경에서도 가장 비싸다는 이 긴자 땅에서

내 건물을 만들겠다 라던가...

이 거리를 '나의 거리'로 만들고 싶다던가...따위 말이다.





재밌는 것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이 거리를 걷고 있을때 파란색 점퍼에 뿔테안경을 쓴

동안의 남자가 나를 잡았다.

나의 운명을 봐주겠다는 것이다.

정말 잠시면 된다고...

나는 길거리에서 이런 일을 누구보다 많이 겪는 편인데

돈이 안드는 이상 끝까지 가는 편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로서는 꽤 재밌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한국인인데 괜찮으냐고 되 물었다.

그는 일본어가 가능하면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긴자의 현란한 거리, 그 수많은 사람들의 틈속에서

나의 손금을 보기 시작했다. 약간 부끄럽기도 했지만

곧 그런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이런 거리 한복판에서 잡혔다는 뜻>




그리고 운명선, 생명선을 운운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물론 그의 말을 단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안에 순수한 미소의 남자는 분명히 이런 말로 나의

마음을 잡고는 어딘가로 데려가거나

더 자세히 봐 준다며 돈을 요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문제는....







'혼또우니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시따'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라고 인사하고는 가려는 것이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그를 막고는 말을 이었다. 정말로 당황했다.

'에!! 오와리 데쓰까?'

(에! 끝입니까?)





그 남자는 웃으며 그렇다고 말했다. 약속대로 잠시면 되는 거였다고.

자신은 이런일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지금의 일은 그 공부의 연속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뺏어서 굉장히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그와 헤어졌다. 이럴리가 없는데... 하면서.






재밌는 경험이었다.

저런류의 사람도 있는 거구나...

혹시

내가 떡밥을 물지 않을 고기란걸 알아챈,

나보다 한수위의 사람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나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남자는 여전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는 사람인데 잠시만 시간을 내줄 수 있냐고.






...







어쨌든

이 긴자에서

내 손을 잡아 주는 이가 있었으니 오늘은 만족이다.

그리고

그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p.s : 05년도에 쓴 글이지만 당시에 쓸만한 사진이 많이 없어

슬그머니 07년에 찍은 사진을 몇장 집어 넣었습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만!

:)


 
BY 죽지 않는 돌고래 / 0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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