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부터 간지, “양육가설”이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처럼 반어법이다. “빈 서판”의 ‘인간이 도화지처럼 하얗기는 개뿔’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양육가설”은 ‘너의 양육이 니 생각만큼 애의 성격에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일 걸? 응? 니가 글케 키워서 그리 됐다고? 유전자 영향은 마포대교로 빠졌냐? 진짜 애의 성격과 사회화에 양향을 미치는 건 말이야...(스포 방지)’정도의 주장으로 요약된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만큼 크으으으, 하며 읽었다.

 

2.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이언 모리스에 감탄한 점은 서양의 우위에 대해(물론 오직 현재 기준, 불과 몇 백년 전까지 동양이 1200년 동안 줄곧 앞섰으니.동양의 배와 항해술이 더 좋았는데 왜 뜬금 콜럼버스가?!... 라고 서양이 생각할 정도로)

생물학, 사회학만으로 풀지 못한 숙제를 지리학을 더해 ‘서양의 우위가 태생적으로 문화가 그래서 그렇다고? 개뿔. 우연이라고? 그것도 개뿔’ 하면서 독창성과 배짱, 장기작업으로 밀어붙여 일보 전진시켰다는 것인데 “양육 가설”의 주디스 리치 해리스 역시 기존의 심리학과 유전학만으로 풀지 못한 숙제를 자신만의 독창성과 배짱(그야말로 배짱 좋다. 자기 밥벌이를 이 책으로 뒤집었다)장기작업으로 일보 전진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의 책이지만 같은 류의 쾌감을 하사받았다.

 

여유와 실력을 겸비한 사람만이 가능한 문체가(재치와 유머를 겸비하고 있습니다)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점 또한 이런, 이런, 감사한 일이다(아마도 최수근이란 분의 번역 실력이 대단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 살렸으니까)

 

3.

나의 경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관련 도서를 고르다 ‘오호, 심리학 책에서 잘 등장하는 그 책이 번역됐었구나!’ 하고 집었으나 이 책은 생각보다 독자 범위가 무쟈게 넓다. 평소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쾌감이 갑절이다.

 

‘유전학, 진화심리학, 뇌과학이 재밌긴한데 내 성격이 왜 이따구인지, 무엇보다 재 성격은 왜 저따구인지 좀 더 정밀히 알고 싶은데.... 아아, 일단 쵸콜렛이나 먹자’

 

전과자를 제법 만날 당시에 들었던 의문이 풀리는 효과도 있었기에(전과자의 인생 얘기를 좋아하는 취미가 있습니다)만족도가 따블이다. 특히 소년원을 다녀왔던 이들이 항상 하던 말에서 느꼈던 묘한 의문이 좀 더 정밀히 풀리는 느낌이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어릴 때 소년원에 가면 절대 안됩니다’

 

따위의 기저에 깔린, 그들도 미처 몰랐을 영향력과 깊은 의미가 보인다. 단순히 보고 배웠다는 의미를 넘어서 말이다.

 

4.

기존의 심리학, 유전학, 범죄학에 플러스 알파를 하고 싶다면, 300년의 논쟁이었던 본성과 양육을 넘어, 유전과 환경을 넘어, 좀 더 넓은 범위로 인간에게 접근하고 싶다면 ‘양육가설’, 좋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 버전의 “양육가설”은 별이 다섯개~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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