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개인적 취향

[만화]찾지 말아주세요 - 우울증, 자기혐오, 회피형 인간의 대표주자

죽지 않는 돌고래 2025. 7. 23. 08:34


1.
소재에 대한 취향이 확실한 편이다.

걔중 하나는 극한의 정신적 혹은 물리적 고립에서 벌어지는 상황이고 하나는 도저히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스스로 무덤을 파 들어가 마땅하다 싶은 흑역사 쪽이다. 나카가와 마나부는 후자의 대표주자다. 

그는 스물 아홉에 지주막하 출혈(뇌출혈)이 왔다. 온 장소는 풍속점(유흥업소)이다. 그러니까 사회에 별 쓸모 없이 살아가던 인간이, 유흥을 즐기려다 나체가 된 채로 쓰러진 거다. 업소는 단체 패닉,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급차 등장. 더한 건 그 사실을 온 가족이 다 알아버렸다(알 수밖에 없다). 

... ...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다. 흑역사도 이런 흑역사가 없다. 아무래도 한국 정서에는 버거운 소재라(뭐, 국가 이전에 인간으로 버겁겠지만) 위 경험에 대한 만화는 번역되지 않았다.     

그런 걸 그린 사람이다.

2.
우울증, 자기혐오, 회피형 인간의 대표주자 나카가와 마나부. 조금만 힘들어도 일평생 도망가기에만 바쁜 사람이, '도저히, 도저히, 못 본척 지나가지 못하겠다'며 펜을 들고 있다.  

나는 대단한 업적을 달성한 인간보다 그런 인간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내게는 그런 용기가 없다.   


찾지 말아주세요, 나카가와 마나부, 바다출판사 

37, 38
찾지 말아 주세요 -마나부(라는 쪽지를 보고)
(엄마 울며)역시 잠적했네요. 
진정해. 울어봐야 뾰족한 수가 없잖아. 
‘계단, 2층…’
여보? (아버지 온힘을 다해 갑자기 2층으로 후다닥 올라간다)
엄마도 아빠 뒤를 쫓아갔단다. 그랬더니 
허억허억. 다행이야. 
아빠는 혹시 네가 2층에서 목이라도 매지 않았나 싶었나 봐. 다행히 아니었지. 
허억허억. 아마 마나부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거야. 그러니 괜찮아. 괜찮고 말고. 

135
확실히 이때 동생은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경멸하거나 비웃지도 않았습니다. 내 편이 되어 주었습니다. 

145, 146 
(잠적 이후 집에 돌아와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부모님이 평범하게 인사를 받아주는 장면의 나레이션)
저는 팍한 아이이기를 포기해도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 잠적으로 두 분의 깊은 속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언제 생긴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경험을 계기로 옅어진 것은 확실합니다. 취한 엄마를 아빠가 부축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150.
만화가. 그렇지만 대학 시절에 장난식으로 그린 경험밖에 없는데. 남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고… 취미론 괜찮지만 직업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그렇게 끙끙대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저는 인터넷에서 한 명언과 조우하게 됐습니다. <거의 일간 이토이 신문-카피라이터 이토이 시게사토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중에서. 

“어느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게 되는 데는 평균 10년 정도가 걸립니다. 10년간 매일 노력했는데도 아무것도 되지 못하면 내 목을 내놓겠소. - 전후 사상의 거장 요시모토 다카아키 

저는 “이 말을 믿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르바이트가 바쁘고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 4컷 만화 하나씩 그리기, 한 장씩 데생하기, 재밌는 에핏고드 하나씩 메모하기, 를 시작했습니다. 

156. 
(잠적한 걸)역시 다 들켰네요. 다들 절 많이 미워했을까요?
의외로 사랑받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케미스트리를 좋아하던 그 3학년 학생… 
야마시타 나오미 말이죠?
맞아요. 맞아. 용케도 기억 하네요. 그 애가 “나카가와 선생님은 케미스트리의 가와바타를 닮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 조용- 
그게 끝이에요?! 에피소드가 달랑… 한 개? 게다가 임팩트도 없고… 하지만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158.
초중고 시절 저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잘 지내왔습니다(중학교 시절 동아리를 관두긴 했지만 말이죠).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공부도 운동도 꽤 하는 편이었고, 그럭저럭 인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회에 나가면 잘해나가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선생님한테 혼나는 저 녀석이 더 잘되겠지’. ‘나는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한계에 다다를 거야’라고도 생각했지요. 
여기서 ‘이대로’는 ‘불안감에 얽매여 계속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장래가 불안하니까 공부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거나 예술 계열 동아리에 가입하면 얕잡아보니까 운동부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람은 불안감을 에너지 삼아서는 계속 열심히 살 수 없다’고 내심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저는 사회에 나와서 잘해나가지 못했습니다. 시험 점수만 괜찮으면 칭찬받던 학창 시절과 달라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건강악화를 계기로 잠적하기에 이르렀지요. 잠적한 저는 ‘염려하던 대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상했던 인생대로 되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