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매우 피곤하다.
하지만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새빨개진 눈으로
생각을 이어내는 중이다.
왜?
어떤 한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이 전부다.
다른 어떤 이유도 없다.




이럴 땐
정말로 웬만하지 않고서야
잠을 이겨내고 펜을 드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생각났을땐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끝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멈추어서는 안된다.
쥐어짤 수 있을때 최대한 쥐어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잊혀진다.




어떤 한 사람이 나를 잊는건 상관없다.
(완전히 상관없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상관없는 정도'인 듯하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어떤 한 사람이 사라지는 건 참을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다가 그만두는 건
당연히도(전적으로)내 자유다.
그것은
누구에게 욕을 들어먹을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야말로 자유의지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간간히 어떤 사람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다른 일에 몰입하기라도 하면
스스로를 버린 기분이 든다.
무엇인가에 져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어떻게든 지켜내야 하고
기억해 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펜을 들고

정신을 집중하고

손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기억해 내고 있는 중이다.




수첩 속에 있는
사람에 관한 내용은 거의가 이런 식이다.
순간의 시간 속,
그 '순간' 속에 백만개의 생각이 지나간다.
어떤 한 사람이
그 순간에 순간을 쪼갠 시간의 틈,
게다가
백만가지 생각의 장소 중 단 한 곳을 지나간다.
나는 그것을 본다.

(그곳에서
사람을 찾아내는 나의 동체시력은 아주 빠른 편이다.
그러니 보인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본능이라고 해도 좋다.



나에게 발견된 그는
나와 만난 처음부터 나와 만난 마지막까지를
내 앞에서 재현해낸다.
대화, 장소, 느낌, 접촉, 눈빛- 그야말로 모든 것.
때로는 우리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의 입장에서
때로는 그가 사람이 아니라 어떤 물체라고 상상하며
나이가 작다면- 여자라면- 가족이라면- 상사라면...




그렇게 되면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그가 보인다.

웃으면서 했던 그의 말이 질투였을 때가 있고
서러운 눈물이 환한 웃음이었을 때가 있는가 하면
장난스런 눈빛이 진정한 무엇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관점, 나만의 편견 속에 이뤄진 일이라
터무니 없는 오류를 수반한다)
그렇게 그와 대화한다.
그리고
적는다.




누군가 보고 있다면
마치
소설책 한권을 옆에두고 뺏겨내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손가락이 아플정도로.
(굉장히 아프다. 

견디다 견디다 미간이 없어질 만큼 찡그리게 되면
'아'소리를 내고 오른손을 공중에 2초 띄어올렸다가 다시쓰고,
또 견디다 견디다 '아'소리를 내고 공중에서 2초 쓰는 과정을 반복한다.
옆에서 보고있으면 굉장히 웃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침내
나는 마침표를 찍는다.
(이때 오른팔을 쫙하니 피면서
펜을 떨구고는
엄지와 집게 사이의
마지막 아픔을 참아낸다.)
수첩에 적힌 빽빽한 글자를 보고 있자면
반 이상은 한참을 들여 보아야 알 수 있고
어떤 글자는 1년이 지나도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어쨌든
그런 식이다.
당신은 그런식으로 기록된다.




art by 뭉크아저씨
note by 죽지 않는 돌고래 / 05.12.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