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3쯤 책을 읽다 사고의 깊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초지식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읽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한참을 돌아왔다.

 

아래는 본인이 [아시아는 세계다]로 돌아온 과정이다.

 


2.  

 

[우리 안의 타자, 동아시아]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책이지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다. 혹시 꼭 읽으려 한다면 –1. 근대 동아시아, 대립과 반목의 역사 2. 청제국의 유산과 중국의 21세기 3.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 인천과 하이퐁 이 세 챕터만 읽으면 족하다.)로 대강의 흐름을 보았다


[아시아는 세계다]에서 왕후이는 중국의 역사를 성찰하며 새로운 근대 비판의 틀을 짜고 있다. 그 안에서 중국, 또는 중화사상에 영향을 받은 지역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본인이 여기서 국가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지역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러한 단어 선택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왕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럽에서 나온 국가라는 개념에 사로 잡혀 있으면 아시아를 보는 근본 틀에서부터 엇나가는 것이다.

 

역사적 성찰과 통찰력에서 오는 왕후이의 근대 해석 능력을 눈으로 따라가며 한국의 근대를 다시 한번 공부하여 이와 비교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1-4권을 읽고 머리 속에 한국의 근대 흐름을 다시 한번 머리 속에 집어 넣었다(본인의 근대 역사관이 한홍구 교수 개인의 틀에 의존하고 있을 거라는 편견은 정중히 사양한다)

 

마지막으로 동서양 인간이 가지는 태생적, 문화적 사고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싶어(정확히 말하면 미국과 동아시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과 서]를 읽고 그제야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동과 서][아시아는 세계다]와 직접적 연관은 없다


허나 나의 경우, [동과 서]를 먼저 읽고 [아시아는 세계다]를 읽은 것이 상당히 공감되었다. 왕후이가 비판한 서양 학자들의 단절적 또는 독립적 시각과 왕후이의 관계를 중시하는 시각차의 근원이 이 책으로 설명 가능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또 다른 방식으로 영감을 받을 수 있으니 [동과 서]의 일독을 권한다.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자료를 기초로 한 책이라 1시간이면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돌아 돌아 다시 [아시아는 세계다]를 집었다.

 




- 책이 출간된 목적과 배경?  

 

이 책은 저자가 처음부터 한권의 책으로 기획한 책이 아니다. 왕후이가 1996년부터 2010년 사이에 발표한 여섯 편의 논문을 엮은 책으로 그 목적과 배경이 각기 다르다. 다만 저자가 이 논문들을 책으로 엮어내며 스스로 깨달은 것과 같이 공통적인 논지는 중국과 중국의 근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여기서 중국을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역사적으로 긴밀한 영향을 받은 모든 지역으로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문구

 

 

1.

 

근대 자본주의의 국가, 민족, 지역을 뛰어넘는 활동이 각종 문화적 정치적 요소가 경제활동의 역량에 통섭되는 것이라면 트랜스시스템사회라는 개념은 정반대이다. 이 개념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 종족집단, 지역이 교류, 전파, 병존하면서 서로 연관된 사회형태와 문화를 낳는다.

 

-> 책의 전반에 흐르는 왕후이 사상의 정수가 담겨있는 부분이자 서구의 틀을 깨는 문단이다. 쉽게 말해, 왕후이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흐름이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대체하는 틀로서 트랜스 시스템 사회를 주장하고 있다. 정치 문화적 요소가 경제에 의해 통섭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교류, 전파, 병존하며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발전하는 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주장이 현실에서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증명할 수 없으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중국의 역사 속에 실제 존재했던 모델을 발전시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2.

 


1)

 

36p

 

동양이 유럽의 역사적 요소에 존재함을 실현하도록한다면 동양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동양의 자기 부정을 낳는다.

 


2)

 

51p

 

레닌과 후쿠자와 유키치의 상반된 결론은 하나의 기본적인 공통 인식에서 수립되었다. 그것은 아시아의 근대가 유럽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 아시아의 지위와 운명이 어떠하든 아시아 근대의 의미는 선진적인 유럽과의 관계에서만 드러날 수 있다는 말이다.

 

->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명제와 다케우치 요시미의 명제를 비판하며 하는 말이다. 탁월하다. 오리엔탈리즘의 환영을 걷어내려고 하는 왕후이의 노력이 위 문장으로 오롯이 이해된다. 아시아를 비판하는 기본 틀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끌어온다. 

 

 

3)

 

96p

 

동아시아나 중국이 국가 중심이었는가, 조공 시스템이었는가를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유형 그리고 국가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리하여 국가 개념이 근대 유럽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의 역사에 완전히 독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제국과 국가라는 틀에서만 보면 중국의 조공 시스템은 상하관계의 연장이다. 하지만 조공네트워크 시스템이 결코 그처럼 단순하지 않은, 각기 다른 문화와 신앙을 가진 사회집단 사이의 예의와 정치관계를 포함하며 단순한 서열, 중심/주변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문장이다. 유럽의 개념으로 이 시스템을 보면 과거의 한국은 중국의 속국일 뿐이다. 물론 누구도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왕후이의 통찰력과 기백이 동시에 느껴진다.

 

 

4)   

 

104p

 

아시아 개념은 줄곧 자기규정이 아니었고 이 지역과 다른 지역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아시아 중심주의에 대한 확인이 아니라 그러한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주의적이며 확자주의적인 지배 논리의 타파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제국내부의 혼란과 다양성을 통찰하여 자명한 유럽 개념을 타파하는 것은 아시아 개념과 유럽 개념을 재구축하는 전제 중의 하나이자 신제국 논리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 위와 마찬가지로 지식인의 기백이 느껴진다. 왕후이의 경우 그 기백이 철저한 사유와 역사적 사실, 통찰에 기초하고 있어 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

 

 

5)

 

142p

 

사실, 다양성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근대성에 대한 성찰과 활로에 대한 사유다.

 

-> 기본 틀을 거부하는 왕후이의 정신이 드러난다. 근대성에 반하는 근대성이라는 논법으로 중국의 근대를 서술하는 왕후이 답다.

 

 

6)

 


152p

 

1)

 

티베트를 기독교도의 또 다른 고향이라고 보든 사탄의 교활함천주교와 뚜렷이 유사한 종교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보든 이들은 모두 유럽 서양의 경험 속 동양의 위치에 근거하여 동양을 처리, 조정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들을 두 가지 오리엔탈리즘의 환영이라고 부른다.

 

166p

 

2)

 

 

근대 서양의 문화적 현상, 사회심리, 정치운동에 늘 신비주의가 아주 깊은 근원에 있었고 현대 서양 정신세계에서 티베트의 위치가 바로 동일한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228p

 

3)

 

티베트인이 거주하는 지역전체를 민족자치의 범위에 넣는다면 이 지역이 기나긴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민족 혼거구역임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종족집단에 따라 행정구역을 나누면 필연적으로 이 지역 안에서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과 배제 그리고 추방이 자행될 것이다.

 

 

266p

 

4) 우리에게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다른 민족과 같은 민족의 지식인 간의 공공왕래와 평등이다. 오늘날 중국에 편견이 존재한다면 그 주된 형식은 보이는 차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지와 무관심이다.

 

-> 티벳이 약자인 것이 사실이며 중국은 너무 가혹했다. 비난받을 만하며 역사적 성찰엔 동의하나 현실에서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적용시켜 중국을 옹호하기엔 상당한 무리가 있다. 허나 한국에서는 중국과 티벳에 역사에 관한 기본 이해 없이 그 이분법을 너무 철저히 따라 양극으로 몰아가는 문제가 있다. 

 

 


291p

 

메이지 정부가 서양의 국제법규를 이용해서 생존 공간을 쟁취하려는 노력이 아시아 지역에서 제국주의와 확장주의 논리로 탈바꿈 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은 바로 이 확장 논리와 미국의 동일한 확장 논리가 이 지역에서 정면 충돌한 결과다.

 

-> 누구보다 한국이 가장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다. 일본은 만국공법이라는 그럴싸한 허울 뒤에 미국에게 불평등 조약을 강요 받았고 똑같은 일을 한국에서 반복했다.


 

 

311p

 

초기에 국제법은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법칙일 뿐이었다. 그러나 민족해방운동과 식민지 해방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수많은 피억압 민족이 신흥주권국가가 되었다. 그들은 국제법의 주권 이론에서 자신들의 합법성을 가져왔다.

 

-> 국제법의 이면을 읽고 있는 왕후의 분석.

 

 


344p

 

20세기 민족해방운동에는 뚜렷한 정치적 목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는 독립해야 하고 민족은 해방되어야 하며 인민은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측면은 서로 연관된 역사적 과정이다. 다른 두 조건을 떠나게 되면 이들 중 어떤 목표도 자신의 반대편으로 치달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국의 독립 혹은 생존 공간을 쟁취하기 위해 다른 민족 특히 약소민족 의 해방을 고려하지 않는 식으로 국가가 독립하게 되면 근대 일본식 제국주의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 달리 말이 필요 없다.

 


 

414p

 

지역주의적 방법은 자연적인 진화의 질서관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이 방법에서는 정부가 확정한 행정 단위로서의 지역이 지역관계를 진정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배열이자 기획이라고 본다.

 

-> 당연한 사실이나 역사가들이 오랜 기간 소홀했던, 역사 연구의 조류에 대한 근거를 명쾌하게 설명해 내고 있다.

     

 

460p

 

역사는 우리에게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제한할 수도 있다. 우리가 전통적 개념을 통해 지역 등의 관계를 서술할 때는 이런 개념이 담고 있는 역사적 부담을 잊어서는 안된다.

 

-> 역사와 지역을 연구하는 이들이 자칫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한 선배의 따뜻한 조언인 동시에 왕후이가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의 말처럼 지역문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통합된 정치 관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간 집단이 왕래하면서 형성하는 관계와 그 진화를 상상하는 것이다.

 

 



-
핵심 메시지와 주장

 

 첫 번 째 논문인 아시아에 대한 상상의 정치학부분에서는 유럽의 개념이 아닌, 아시아의 개념으로 아시아를 탐구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서양이 가진 오리엔탈리즘의 환영,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재구축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걷고, 아시아의 개념으로 아시아를 재구축해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두 번 째 논문인 대상의 해방과 근대에 대한 물음에서는 중국 역사에 유럽 개념의 국가가 존재하는가를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 공동체 개념과 서로 다른 정치 공동체 유형을 새롭게 정의, 국가 개념이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와 민족국가의 역사에 독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세 번 째 논문인 동양과 서양, 그 사이의 티베트 문제에서는 서양의 티벳에 대한 오리엔탈리즘 환영, 그리고 중국의 오리엔탈리즘의 재생산에 대한 비판도 놓치지 않고 있다. 논란이 있는 부분이니 다른 관련 도서와 비교할 것을 권한다.

 

네 번 째 논문인 류큐 : 전쟁의 기억, 사회운동, 그리고 역사해석에서는  류큐 문제가 단순한 류큐만의 문제가 아닌, 심지어 동아시아적 문제도 아닌, 세계자본주의 전체 발전, 제국주의의 발전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전개된 문제임을 강조한다. 이 논문에서 류큐문제가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주변 지역 및 탈냉전시대의 패권구조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힌다.

 

다섯 번 째 논문인 지방 형식, 방언과 항일전쟁 시기 민족 형식 논쟁에서는 언어’(또는 방언)라는 틀로서 지역간의 정치적 관계와 민족에 관한 심도 깊은 통찰이 가능함을 증명한다. 어떤 방언이 공동 언어인가를 확정하는 것은 언어 스스로가 결정하지 않고 정치, 문화, 경제의 지배를 받는 관계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논문인 트랜스시스템 사회와 방법으로서의 지역에서는 왕후이가 주장한 트랜스 시스템 사회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대안과 근거를 지역이라는 틀로서 비추며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새로운 개념을 재고안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현상들을 서술하고 밝히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마지막 문단의 내용을 스스로가 철저히 지키고 있다.    

 

 



- 그리고

 

때때로 동양의 촘스키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허나 탁월한 통찰력과 방대한 지식, 놀라운 학문적 깊이라는 본래의 의도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가는 왕후이에게 혼날지 모르겠다. 학문 영역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 제대로 된 비교의 틀을 제시하지 않은 맹목적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발언이라고. 하긴 동양의 촘스키라는 말 자체가 이미 서양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니겠다.

 

왕후이는 오리엔탈리즘의 색안경을 끼고 자신들이 정한 틀로서 아시아를 논하고 분석하는 서양을 완강히 거부한다. 이는 많은 학자들이 말해왔고 근현대에 들어와 자주 제기되는 식상한 비판이기도 하다.

 

허나 왕후이는 거기서 한발 더 나간다.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왕후이만큼 완벽하지 못했다. 본인의 말처럼 아직 트랜스시스템이라는 개념은 명확하지도 않을 뿐더러 구체적이지도 않다. 허나 완벽하지 않은 대안에 이르는 과정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 논리정연하고 철저한 역사적 성찰에 근거, 서양의 제국주의적 사고에 기초한 거의 모든 틀을 처절하게 논파한다. 그 과정이 너무 철두철미해 때때로 인간미가 없다 싶으면 아시아에 대한 비판과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조언도 놓치지 않는다.

 

때때로 생각했다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초국적 자본주의가 계속될 경우, 양극화와 국가간 대립은 필연적이며 특히 미국-한국-일본으로 대변되는 기울어진 동맹의 달콤함은 후에 지옥의 쓴맛으로 바뀔지 모르겠다고. 왕후이는 그런 본인의 생각에 굉장한 영감을 제공했다.

 

미국캐나다와 한중일의 차이에 접근한 [동과 서]라는 책을 보면 동양은 관계에, 서양은 독립이라는 사고를 기초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는 문화적인 동시에 태생적인 차이다. 이러한 차이로 동서양은 각기 다른 발전의 길을 걸었고 때로는 동양이, 때로는 서양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금은 압도적으로 서양의 사고에 근거한 발전상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후이는 서양의 틀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며 그 안에서 경쟁하고 있는 우리의 어깨를 잠깐이라고 하며 붙잡는다. 심연 속에 자리 잡은 껄끄러움에 대한 감정의 본질을 철저하고 아름답게 논증, 동양만이 가능한 새로운 발전상을 제시한다. 비록 그 형태가 아직은 큰 틀에 불과한 실험 단계에 속할 지라도 트랜스 시스템 사회라는 그의 대안은 우리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경제라는 거목의 끈에 문화, 정치라는 잔 나무들이 끌려가는 흐름에서 그 끈을 가위로 잘라 놓아 서로 제각각 자유로이 흐르고 움직여 발전해 나가게 만드는 틀,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양적 사고다. 하지만 이 별 것 아닌 일은 콜럼부스의 달걀에만 비유할 수 있는 별 것 아님이다. 

 

칭찬만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제시한 틀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현재 G2로 불리는 중국이 될 수 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명확한 논리와 역사적 성찰, 그리고 현재에서 새로운 대안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왕후이의 대안에 끌려 갈 수 밖에 없다.

 

현재로서 그 점이 아쉬울 뿐이다


아니, 무섭다.  

 

추신 1 : 송인재라는 분의 번역이 상당히 잘 된 듯하다.

추신 2 : 개인적으로 4장(류큐 : 전쟁의 기억, 사회운동, 그리고 역사해석 275p-340p)이 본인의 관심사와 겹친 탓인지 가장 재밌었고 5장(지방 형식, 방언과 항일전쟁 시기 '민족 형식'논쟁 349p-400p)은 기초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책장을 넘기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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