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췌

1) 발췌 :
청일전쟁을 통해 일본 육전대가 무단으로 상륙하면서 역사상 첫 번째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오늘날 까마득하게 망각하고 있다.

 

          이 부분은 [근대 동아시아, 대립과 반목의 역사]라는 장에서 발췌한 것으로 인천이 경험한 근대전쟁을 중심으로 역사를 되짚어 보고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인천상륙작전에서 반사적으로 맥아더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위 문장은 그러한 고정관념을 반전시킨다. 머리를 한대 얻어 맞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 기분의 근원은 첫째, 제 나라 역사에 대한 빈약한 지식에 대한 자괴감, 둘째, 역사를 바로 보려고 노력해도 기득권에 의해 제공된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바로 볼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최초의 근대전쟁이자 러일전쟁으로 이어진 제국주의 전쟁의 전초전이다. 동아시아의 관계를 이해하는 시발점으로 이 인천상륙작전이 가지는 의미는 가볍게 볼 수 없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는 넘겨 버리는 것, 근대 이후 인천에 외국군대가 상륙한 최초의 역사적 사건을 외면해서는 제 나라를 바로 알기 어렵겠다.

 

2)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내지는 거대한 농경사회인 반면 그 북쪽은 광대한 유목사회가 펼쳐져 있어서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서로 다른 두 사회가 빈번하게 충돌한….(후략)

 

         이 부분은 [청제국의 유산과 중국의 21세기]라는 장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이다.  우리는 제국의 기초적인 속성을 주변의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무력정복에서 찾으며 이는 중국에서 빈번히 일어났던 일이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제국의 출현이 잦았으며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삼국지에 머물러 있다.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중국 분쟁의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는 반증이다.           

 
중국내지의 농경사회는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반면 북방의 유목사회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대외의존 경제였다. 이렇게 기반이 달랐기에 유목사회는 농경사회와의 접촉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접촉의 형태로 무력대결 양상이 전개된 것이다. , 유목사회의 도발에 대한 농경사회의 응전이 중국에서 제국이 출현했던 주요한 역사적 요인인 것이다.

이 부분은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는 밑바탕이 된 동시에 중국역대 왕조의 무력행사가 왜 북방에 치우쳐 있는지, 왜 만리장성을 비롯한 군사적 요새들이 북방에 몰려 건설되었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부분이었다.   

 

2. 고민


1) 동아시아 반목의 역사가 가지는 거대한 흐름을 체감하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2)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알량한 한계를 깨트리는 부분이 위에 언급한 부분 외에도 많았다. 청일전쟁의 인천상륙적에 대한 부분에선 기득권이 제공해온 역사지식의 프레임에서 깨어나는 효과를, 중국 내 끊임없는 분쟁의 역사에선 농경사회와 유목사회의 대립이 근본요인 이었다는 큰 흐름을, 베트남의 하이퐁 항구도시에선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영감을 받는다.


특히 마지막 장인 동아시아 담론, 동아시아라는 사유공간이라는 장에선 미국의 지배력 강화가 결국엔 미국, 일본, 남한간의 긴밀한 연계를 가져올 수 밖에 없고 이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만으로 북한체제를 흡수하는 결과를 낳게 될 거라고 강조한다. 인상깊다. 이는 냉전시대와 유사한 반자주적, 반민주적 억압구조를 재생산할 수 있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에 미국의 일방주의를 적당하게 견제하면서 동아시아와의 연대와 협력에 대해 국가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그러한 아젠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국가전체의 방향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동아시아에 강제된 조약이 각국의 개인들에게 미친 삶을 기획기사로 써보거나 동아시아의 국제적 역학관계를 과거로부터 되짚어 보며 한국이 처한 위치를 냉철하게 바라 볼 수 있는 기사를 쓰면 좋을 듯 하다.

오늘도 나의 무지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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