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10점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해냄



1.
옛말에 재주가 인격을 넘어서면 안된다고 했다. 이말인 즉슨 사람이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는 재주를 가지게 되면 교만해지거나 악랄한 행위를 저질러 모두를 망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똑똑한 놈일 수록 나쁜 짓을 하면 피해가 막심하다는 말.


과거를 돌아보면 굉장한 재능을 가진 작가들이 친일(개인적으로 이 말을 싫어합니다. 너무 말이 부드러워요.)을 해서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정직해야 할 언론은 독재자를 인격자로 꾸미는데 앞장섰고 거꾸로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철없는 아이, 또는 거짓말쟁이나 빨갱이로 몰아갔다.


그들의 펜끝에서 나온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지금' 이 순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재주가 인격을 뛰어넘었던' 문장가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인격을 넘어서는 재능을 가진다는 건 이토록 무서운 일이다. 그렇기에 재능을 가진 자일 수록, 그 재능으로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일 수록 치열하게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자신의 재능이 절대 자신의 인격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2.
이런 일화가 있다. 일본으로 건너간 어린 조훈현에게 세고에 9단이 바둑은 가르치지 않고 허드렛일만 시키자 그의 부친이 항의 편지를 썼다. 세고에 9단은 정중하고 단호하게 아래와 같은 답장을 보낸다.


'바둑은 예()이면서 도()입니다. 기량은 언제 연마해도 늦지 않습니다. 큰 바둑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큰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격도야가 우선이지요.'  


당시의 경험이 그를 단순한 천재가 아닌, 위대함으로 이끌었던 바탕이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폭발적인 재능을 담을 그릇을 일찌감치 만들어 놓은 셈이다.


엄청난 반전이 없는 한, 이외수 선생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문장을 갈고 닦아도 자신의 그릇을 넘어서진 못할 듯하다. 해서 난 이 분이 좋다. 

추신 : 정태련 선생님에 대한 글을 못 적어서 괜히 죄송합니다. 참고로 이 분이 눈 앞에서 물고기를 그리는 걸 보면 기가 막힙니다.  




16. 하악하악 / 정태련이 그리고 이외수가 쓰다 / 해냄

 

소나무는 멀리서 바라보면 참으로 의연한 자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보면 인색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소나무는 어떤 식물이라도 자기 영역 안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소나무 밑에서 재취한 흙을 화분에 담고 화초를 길러보라. 어떤 화초도 건강하게 자라서 꽃을 피울 수가 없다. 그래서 대나무는 군자의 대열에 끼일 수가 있어도 소나무는 군자의 대열에 끼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명포수라도 총 끝에 앉아 있는 새를 명중시킬 재간은 없다.

 

 

척박한 땅에 나무를 많이 심는 사람일수록 나무그늘 아래서 쉴 틈이 없다. 정작 나무그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그가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나무를 심을 때 쓸모 없는 짓을 한다고 그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다.

 

 

예술이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카일라일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렇다, 태양으로는 결코 담뱃불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태양의 결점은 아니다.

 

 

천재들은 이따금 다른 답을 창출해낸다. 그러나 무식한 채점관들은 다른 답틀린 답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순간에 천재를 둔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베토벤이 힙합곡을 만들지 않고 죽었다는 이유로 베토벤을 쓸모 없는 작곡가라고 생각하는 부류들도 있습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대부분의 동물들은 먹이가 생기면 서열이 높은 우두머리가 먼저 먹이를 차지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닭의 우두머리는 다르다. 서열이 낮은 놈들이 먹이를 배불리 먹을 때까지 주위를 경계해주고 자기는 제일 나중에 먹이를 먹는다. 우리는 가끔 머리가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에 비유하지만 탐욕에 사로잡혀 부모형제도 몰라보는 인간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놔, 만물의 영장, 닭과 함께 살아갈 면목조차 없는 입장이다.

 

 

이쑤시개가 야구방망이를 보고 말했다. 그 몰골로 누구의 이빨을 쑤시겠니, 쓸모 없는 놈.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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