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리하다 보니 별의 별 걸 다 찍어 놨군요.
GOP찍고 오신 분들은 알겁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손도 까딱하기 싫은데 이것 땀시 짜증나죠.












브리핑 연습할 때 쓴 대본(?)입니다. 사회에서는 소외계층인데
군대에서는 따까리(전령) 찍고 망고(상황병) 찍고 분대장 찍는 나름 엘리트 코스를 거쳤죠.(웃음)
부소대장님이 굉장히 엄한 분이라
(개인적으로 군생활 하면서 만난 간부 중 가장 군인다운 군인)  
상황병이 조금만 어리버리까면 가차없이 근무로 내쳤는데
상대적으로 짬밥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GOP근무 6개월 만에 상황병 사수를 잡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짬밥이 안된다는 말은
부대에 전입했을 때 이등병이 11명이었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상황병이 어리버리 까면 소대 전체가 피곤한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소대 특성상 VIP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그게 더 용납이 안됐죠.
웬만해서 안 쪼는데 사단장급 이상 되면 좀 후달입니다.


보충설명을 하자면
연대 GOP의 입구역할이라
(선봉연대 선봉대대 선봉중대 선봉소대 선봉분대였습니다.
훈련 출발할 때 사단장님이랑 대표로 악수하는 분대죠. 머리위에 '사기가 100상승 했다!!'라는 말풍선을 띄어 줍니다.)
여기서 뚫리면 중대, 대대까지 뚫려서
줄초상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클릭하면 크게 보임>



그런고로 일이 손에 붙기까지 군생활 중 가장 열심히 했습니다.
절도 있는 브리핑으로 사단장님을 막 감동시키고. +_+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황병을 잡는 자, 천하를 얻는다'

라는 GOP 명언이 있기 때문이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겨울에 GOP에서 상황병을 잡으면 망고, 망고, 개망고의 길' 

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GOP특성상 겨울이 괴롭습니다.
그것도 좀 많이.
개인적으로 페바에 있을 때 가장 못해먹겠다 싶은  훈련이 혹한기 였는데
(군생활의 절반은 페바, 절반은 GOP에 있었습니다.)
 GOP의 겨울은 매일 매일 혹한기를 뛰는 기분이죠.



다른 건 다 참아도 잠 못자는 건 못 참는 저에게
GOP의 겨울은 정말 한계를 시험하게 하더군요.
(대신 여름은 할랑해 집니다만.)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추운데서 근무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고,
그만큼 잠이 부족하게 되는 거죠.
오전에는 또 오전대로 돌아가면서 서는 근무가 있어서
이것 저것 작업이랑 겹치면
2-3시간 밖에 못자는 날이 이어집니다.
밤새도록 영하 30도쯤 되는 곳에서 근무서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날이 이어지면
후리더가 오든 마인부우가 오든
눈앞에서 깔짝대면 언제든지 죽통을 날리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물론 고참 > 마인부우)


그래서 안 잘릴려고 열심히 일했고
일이 손에 달라붙게 되었을 땐 다시 열심히 놀았지요. +_+

개인적으로 6개월의 상황병 기간은
짬밥이 되든 안되든 항상 부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춥고 잠 못자는게 얼마나 괴로운지 6개월 동안 느껴봤으니까요.


위 노트는 전반야에 새로 사수를 잡는 후임을 위해
시간 날 때마다 노하우를 정리한 노트입니다.
화려한 용문신을 하고 온 조폭후임에게는 꼭 올챙이 다리를 매직으로 그려줘야 한다든가,
농땡이를 부리면서도 열심히 일하게 보이는 기술이라던가.
   











이때가 제일 머리 아팠죠.
상급부대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시간표를 요구하는 관계로
(섹터의 어느 길목이든 5분 안에 근무자가 지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든지)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안 그래도 근무자들은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 죽겠는데
(알다시피 GOP에 처음 투입됐을 땐
매일 조깅으로 단련한 몸이라도 한동안 허벅지가 두조각나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잠시도 쉬지않고 움직여야 하니까요.


어쨌든 탁월한 소대장님이 여러가지 패턴을 구상하고
근무자 개인 도보 속도까지 조사한 자료를 바탕,
'꿈의 이론'을 만들어 냈죠.
제가 워낙 게을러 터져서 일을 안하는데
소대장님이 인간적인 매력을 양껏 가진 보기드문 간부라  
간만에 없는 충성심을 쥐어짜서 작업 했습니다.
대한민국 GOP역사상 가장 완벽한 루틴이라는.
+_+......


상황실 벽면에 붙여 놓으면 괜히 뽀대작살이라 대대장님이 칭찬하고 그랬는데... 
사실, 포상휴가를 은근히 바랬는데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으시더군요.
좀 곤란하다는.


참고로 위 시간표는 이미 모두 바뀐 관계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북한 간첩이라도 별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모자이크.












군생활 때 쓴 노트입니다.
상황병때 노하우와 인수인계를 위해 쓴 거 4권,
전령때 시간표 짜느라 짱구 굴리면서 쓴게 4권,
개인적으로 끄적인거랑 분대장 때 쓴 거 3권이지요.
총 11권을 썼군요.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짬밥먹고는 소대원들 인터뷰하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한번 씩 저런 거 보면 되게 재밌죠. 
이 중에 정치인 나오면 내가 나중에 스캔들 지대로 터뜨려 줄 수 있는데.













요건 노트 제일 앞면에 우리 고참들이 장난친거.
고참이라고 해도 지금은 다 친구지만.















짬밥먹고 좋아하는 고참이랑 합작해서 만든 담배곽입니다.
안에 글은 제가 쓰고 밖에 그림은 고참이 그렸죠.
조금 엉뚱한 생각인데
갑자기 기억을 잃을 경우를 대비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모두 압축해서 담배곽 안에 적어 놨습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려도 이걸 보고 알아낼 수 있게 말이죠.
메멘토 같은 영화 많이 보면 애가 이렇게 됩니다.
어쨌든 늙어서 뜯어 보면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뭔 서류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집으로 날라온 걸 보고 조금 빡쳤습니다.
저렇게 군생활 하면 아마 이등병부터 다시 시작해도 우주연방 총사령관까지는 너끈하겠군요.
아니면
이등병 2000년, 일병 2000년, 상병 2000년, 병장 2000년 이런 시스템인가요?









마지막은 개념 인증 샷.


군대에서 유일하게 폼 잡고 찍은 사진이 아닌가 합니다.
저기 있을 때는
몸 예쁘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었습니다.


군대가시는 분들은
가서 몸 좀 좋아 졌다 싶을 때 왕창 찍어 놓으시길.
당신 인생의 근육은 그 이후로 영영 볼 수 없게 됩니다.







BY 죽지 않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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