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글쟁이들 - 8점
구본준 지음/한겨레출판





아, 이런 책 좋다. 


한겨레 책 담당기자인 구본준이 약 1년 동안의 연재물을 엮어 내었다. 저자를 만난 적은 없으나 책과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듯하다. 아니면, 이런 기획 못한다.  


한겨레 출판은 좋은 책을 많이 낸다. 




43. 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문체는 사실을 넘지 못한다’ – 구본준

 

 

 40대에 자신을 찾아 자기 바꾸기 혁명으로 나아갔던 구씨는 50대에 접어들면서 10개의 목표를 세웠다. 먼 미래, 자기의 50대를 회고해보면서 50대 최고의 순간 열 가지를 꼽아보는 형식으로 정리해 스스로 나의 10대 풍광이라 이름 붙였다. 이 중 한 가지가 바로 연구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꿈을 그는 가장 먼저 실천에 옮겼다. 구씨의 변화경영연구소는 1년에 10명 정도의 연구원을 뽑는다. 선발 시험이 있다. 아주 간단한 시험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 A4 용지로 20장을 써오라고 요구한다. 선정 기준은 자신에 대한 역사를 기술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자신과 세상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지금 자신에 대한 강한 분노와 창조적 증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 지금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유일한 자격 요건이다. - 변화경영 저술가구본형

 

 

『오! 한강』이 책의 판매량을 떠나 범사회적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재 이후 두 사람은 헤어졌다. 매사 꼼꼼하고 분명한 허영만 화백으로선 세영 작가의 게으름이 기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탓이다. “저에게 일이 이렇게 늦어지면 만화 작업에 연관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문제를 만드는 경제적 범죄다라고 편지를 보내셨어요. 그래서 저도 선생님이 책에서 제 이름을 빼는 것은 살인죄 아닙니까?’라고 맞받았죠. 그러고 몇 년 지나서 『미스터Q』로 다시 시작하자고 먼저 연락을 해오셨어요.”

 다시 만난 콤비는 역시 최고였다. 『미스터Q』는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만큼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역시 오래가진 못했다. 『닭 목을 비틀면 새벽은 안 온다』를 함께 작업한 뒤 결국 두 사람은 또 헤어진다. 이번에도 김씨가 원고를 너무 늦게 넘겨 허 화백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들은 내게 허 선생과 왜 헤어졌냐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만화가와 작가의 관계는 감독과 배우의 관계 비슷해요. 작품할 때는 만나서 같이 일하고, 촬영 끝나면 떠나는 거죠. 그게 헤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거예요.”

 

 

 임 교수의 자료철학은 눈덩이론이다. “자료는 눈덩어리 같아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굴러가요. 물론 사놓고 평생 안 볼 책도 있지요. 그런데 그걸 버리면 나머지 자료들도 같이 죽어요. 경영효율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학문적으로는 그래요. 자료가 많아지면 생각이 넓어지는 효과도 있어요. 자료가 오히려 연구주제를 넓혀주기도 하는 거죠.” – 건축 저술가 임석재

 

 

 밀로의 비너스가 8등신 기준으로 만들어졌다고 미술책에 흔히 나오지요.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인체 비례의 기준은 머리가 아니라 발바닥이었어요. 머리 기준은 15세기 이후 등장한 것인데도 검증도 않고 인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주검 60구를 해부해 인체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는 것도 대표적인 오류다. “다빈치가 쓴 수기를 직접 번역해보니 30구였습니다. 60구라는 수치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이런 고집을 잘 보여주는 책 가운데 하나가 청소년용 미술책 『춤추는 세상을 껴안은 화가 브뢰겔』이다. 브뢰겔(브뤼헐) 그림을 이해하려면 16세기 네덜란드 속담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그림에 숨어 있는 당시 네덜란드 속담 126개를 모두 번역해 부록으로 실었다. 이런 역자가 그 말고 또 있을까. – 교양미술 저술가 노성두

 

 

 편집자 김형보 씨는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아는 점을 정 교수의 힘으로 꼽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아닌 작가의 차이는 글쓰기 능력보다는 독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 이 시기에 무엇을 말해 주어야 하는지 아는 기획적 사고에 달려 있다정 교수가 바로 그런 필자라고 분석했다. “기존 과학책들은 대중화가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하고, 독자들이 꺼리는 숫자만 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정 교수는 달랐다. 과학이 인문학, 사회학, 문학과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뽑아낸 것이다.” – 교양과학 저술가 정재승

 

 

 (조선시대 불교가 탄압을 받으면서 위기에 빠진 승려들이 불교의 맥을 잇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한쪽은 사찰을 유지하기 위해 기름이나 종이 등을 만드는 잡역을 했는데 이를 사판(事判)’ 이라고 하고, 또 다른 승려들은 불법을 잇는 길을 골라 은둔하며 수행했는데 이를 이판(理判)’ 이라고 했다. 이 이판과 사판이 각각 정진한 덕에 불교는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승려는 최하층 신분이었기 때문에 이판이든 사판이든 막장 인생이 되는 셈이었으므로 이판사판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을 뜻하는 말이 된 것이다.)

 

 

 저술 못잖게 그가 중시하며 시간을 할애하는 작업이 서평이다. 주 교수는 전공 분야에 대한 서평을 써달라는 언론 매체의 요구에 가능한 한 응하는 몇 안 되는 학자다. 스승 라종일 교수가 다른 학자에게 들었다며 자신에게 들려준 가장 좋은 공부는 바로 서평이라는 말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서평을 쓰려면 책을 비판적으로 읽고 생각해야 해요. 읽고, 생각하고, 써보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공부인 거죠.” – 서양사 저술가 주경철

 

 

 우리의 눈에는 학자들의 탁월한 논문과 저널리스트들의 훌륭한 특종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다중에게 이야기해주는 저술가들의 책일 수 있다. 지구를 점령한 살충제 DDT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수많은 학자들이 논문으로, 기자들이 기사로 지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직접 DDT를 막아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게 만든 도화선은 논문처럼 어렵지 않고 기사보다는 호흡이 깊었던 한 권의 책 『침묵의 봄』이었다. 이 책으로 세상을 바꾼 주인공은 학자도 언론인도 아니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저술가가 된 평범한 공무원 레이첼 카슨이었다. 세상은 그래서 저술가를 필요로 한다. – 구본준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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