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용이의 생사가 불분명하다. 지난 페북(https://www.facebook.com/kimchangkyu1201/posts/919066018141575)에 달린 댓글을 보다 알았다. 금시초문이지만 사람들의 댓글을 보니 합리적 추측이 가능했다. 아무도 내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어쩔 수 없다. 평소에 운동도 하고 술도 절제하고 그렇게 자기관리를 하라 했는데 안 해버리니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니, 아직은 모르지만 어쨌든 그건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자.
2.
태용이는 피를 나눈 가족도 그렇다고 친한 친구도 아니다. 그냥 말 안 듣는 직원이었다. 시키는 걸 한 번에 제대로 하는 걸 못 봤고 언제나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며 불만을 품는 사람의 전형이랄까. 뭘 시키든 불가능하다는 말부터 하는 아이였다. 왜 그렇게 도전정신이 없었던 것일까. 시작하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으면 인생은 의미가 없는 것인데.
참고로 내 말 듣지 않는 사람을 싫어한다. 부드럽게 말하는 편이라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시키는 걸 바로바로 하지 않을 때 속으로는 죽어라고 했다. 막상 이렇게 되니 조금 묘한 기분이다. 어떻게 보면, 어떻게 돼도 크게 상관없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물로 치면 마사오님 같은 느낌,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어떤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업무에도 차질이 생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며칠간 잘 느끼지 못해 조금 불편하다. 그 대상이 태용이라면, 그러니까 태용이 레벨까지 내려가 버리면 스스로도 슬플 것 같다. 이왕이면 뭔가 그럴듯한 존재를 대상으로 슬퍼하고 싶다. 다행히 태용이에겐 아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쯤 되니 태용이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인데 우리 모두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그러니까 심리적 정화작용을 위한 하수구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태용이가 실존했든 안 했든, 죽었든 살았든, 딱히 의미가 없는 존재였던 건 만큼은 사실이다. 어쩌면 그 점이 태용이의 미덕이 아닐까.
태용이가 부디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연옥 정도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착한일 한 두번은 했을 테니까. 혹시나 죽지 않았으면 지금 내가 적는 글이 조금 언짢을 수 있을 텐데 뭐 그건 또 그때 가서 이야기해야겠다.
2015. 10. 24 AM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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