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안재우고 한 명은 장원준이다. 그만큼 의무교육이란 걸 무시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2.
재우는 한 동네에서 자라 초중고를 같이 나왔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맘대로 학교를 안 나와 '재우 전담조' 란 게 있었다. 재우 전담조는 학교에 안 나오는 재우를 수색해 잡아 오는 역할인데 대부분 집에 처박혀 있거나 오락실에 있었다. 나는 조의 조장격으로 항상 임무를 완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이 자기가 가고 싶을 때만 학교를 간다는 발상 자체가 대단하다. 중학생 때도 맘대로 학교를 안 나왔는데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하면 끊어버렸다. 받지를 말지 꼭 전화는 받고서 선생님인 걸 확인하고 끊어 버린다. 호적전이든지 인간이 덜 되었든지 둘 중 하나다.

재우는 얼굴이 순하게 생겼지만 그 속에 악마가 있다. 히틀러의 전기를 보고 느낀 건데 어릴 때 재우같은 타입이었다고 할까. 예방책 차원에서, 기회가 있다면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재우가 의무교육을 무시하는 느낌이라면 원준이는 의무교육이란 게 있는지 모르는 느낌이다. 아마 자신이 학교란 걸 다녔는지 지금도 잘 모를 거다.

고등학교 때 급식시간에만 나타났다가 스르륵 사라졌는데 이 이야기는 학교에서 신화와 같이 전해진다.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남고에는 미친 사람이 많다. 어떤 애는 싸우다 코나 팔 같은 게 부러지고 어떤 애는 여자만 쫓아다니고 어떤 애는 공부만 하고, 여러 가지다. 그 모든 일들이 적어도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다. 원준이는 학교를 단순 급식소로 사용했다. 밥을 먹기 위해 자퇴를 안 했든지 아니라면 자퇴라는 시스템이 있는지 몰랐든지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자퇴를 했더라도 밥은 먹으러 왔을 듯하다.

재우는 선생님이 죽도록 때리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원준이는 급식 시간에만 눈을 피해 나타났다가 듣고 싶은 수업만 듣고 사라져 때릴 기회 자체가 없었다. 혼자 대학생이었던 느낌이다.

군대에 있을 때 내 물건이 없어지면 어디선가 들고왔는데 거부를 해도 원준이가 워낙 완강해서 끝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원준이는 자기 가족이나 친구 빼고는 죽어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닐까.

원준이 역시 사슴눈에 순둥이 처럼 생겼지만 그 속에 악마가 있다. 친구긴 하지만 재우와 마찬가지로 사회나 인류적 측면에서 기회가 됐을 때 격리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4.
위의 두 친구 때문에 초범생 코스를 타던 내 인생이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정밀히 말하면 저런 엄청난 장애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중심을 유지했는데 결국 버티지 못한 게다.

해서 학교 대신 목욕탕으로 등교하는 탈선의 길을 걸었다. 아마도 모든 것을 잊고자 매일 목욕탕에 갔던 게 아닐까. 둘을 안 만났다면 지금쯤 국가를 건설하거나 화성에서 감자 같은 걸 키우는 레벨의 남자가 됐을 텐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5.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수갑으로 생명 구한 순경" 이라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너 죽으면 나도 죽어" 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의 손목을 수갑으로 채운 이가 원준이의 동생이다.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얼마나 엉망진창이냐면 나는 지들을 잘못 만나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정작 내 탓을 한다. 남 탓만 하는 책임감 없는 친구들이다.

원준이나 재우는 사람이 못 될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선도의 달인, 사회에서는 인간 개조의 마술사라 불리는 내가 실패했으니 다른 사람이 성공할 리 없다.

다만 모든 걸 옆에서 보고 자란 동생들은 반면교사를 잘 두어서인지 제법 잘 성장한 것 같아 기쁘다. 해서 옛날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다음 생에선 좋은 동생들 만큼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2015.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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