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시원살 때 이야기다. 고 김대중 대통령 국장 때 찍은 사진이 화제됐다. 추모집에 실리게 되었다. 내 마음 찜찜해 돈은 사양했다. 추모집만 많이 달라했다.

당시, 별다른 생각없이 고시원 주인에게 추모집을 선물했는데 표정이 바뀌었다. '우리 집안은 이 사람 때문에 망한 집안인데', 라고. 아. 실수구나. 모든 이의 마음, 내 마음같지 않은데 건방졌구나.

주인 아주머니는 말을 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지원하다 집안 살림 거덜냈다는 뜻이었다. 아주머니 눈시울이 뜨겁다.

그 뒤, 고시원 들어오면 때때로 문고리에 먹을 것이 잔뜩 걸려있었다.

어느날은 떡이었고 어느날은 족발이었고 어느날은 과일이었다.

2.
인간이 소위 리더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가면, 특히 정치계의 리더쯤 되면 더없이 이중성을 가진다. 선해보이는 인간에게 그에 상응하는 악마성이 존재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듯. 대한민국의 어떤 대통령도 어떤 당수도 마찬가지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이해하기란 좀처럼 힘들다. 이해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다만 죽을 힘 다해 억제해야 한다. 인간을 이용할 수 있는 힘이 있어도 이용해선 안된다.

3.
방금 전 일이다. 이번 경선에서 진, 모 캠프 지지자의 눈물을 보았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 보면, 비록 나와 생각이 다를지라도, 저 뜨거운 사람들이 세상 바꾸는구나, 책상머리에서 옳은 소리 잔뜩해대는 헛똑똑이들보다, 진흙탕에서 뒹굴고, 싸우고, 소리치고, 우는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세상 바꿔왔구나, 한다.

선거는 전쟁이다. 이성적으로 버틸 수 없는 일이 자꾸만 온다. 사랑하는데 어찌 이성적일 수 있을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순수한 에너지의 충돌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프고 화난다. 또 아프고 또 화난다.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이 싸웠다. 민주당은 복도 많다. 후보도 지지자도 진심 다했다. 설렁설렁한 이 없다.

생각이 같든 다르든,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그 눈물 물끄러미 바라보면 저 눈물들에 헛됨이 없어야 겠구나, 저게 헛것이 되어버리면 참으로 부끄럽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심상정도 안철수도 홍준표도 유승민도 이번 대선에서 수많은 이들의 눈물을 짊어졌다.

모든 후보들이 참으로 싸웠으면 한다.

참으로 싸워 난 피는, 꽃이 된다.

201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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