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통신 - 10점
손석춘 지음/한겨레출판




손석춘이 인터넷 한겨레에 연재하던 칼럼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책 제목은 '현실에 뛰어들어(Rush) 저항(Resistance)하고 마침내 혁명(Revolution)을 이루겠다는 젊은 친구들과의 소통(통신)'이라는 뜻이다. (틀렸다면 죄송합니다. 확인하기 귀찮아서리) 청소년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언론인 중 한명인 그는 비판에 성역이 없기로 유명하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을 비판했을 때는 뭇매를 맞기도 했다. 보통 그런 상대에 대해선 아무리 언론인이라고 해도 입을 다무는 편인데(얻을게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젊은 벗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문체가 부드러워서 거슬릴 수도 있지만(읽는 사람에 따라선 약간 재수 없을 정도?)세상을 읽는 힘을 길러주는데 이 사람의 저서만큼 괜찮은 책도 드문 듯하다. 특히 신문읽기의 혁명은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성적과 토익에만 목매단 친구들이 면접에서 텅텅빈 머리와 자기주관이 없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한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할 때, 이 사람의 저서를 추천해 주길. 

은근히 한겨레 출판에서 나온 책들 많이 광고해 주는데, 한겨레는 나한테 상한번 안 주는지 모르겠다. 으음.  






38.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손석춘의 러브레터 R 통신 / 한겨레 신문사 / 손석춘

초판 1쇄 발행 2002926

     2쇄 발행 20021130

 


 
착한 얼굴의 젊은 벗은 말했지요.

 선생님도 책에서 쓰셨듯이 1996년 한총련 연세대 집회 때 신문과 방송이 모두 마녀사냥에 나섰잖아요. 지금 대학생들은 당시 대부분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이었어요. 그때 언론보도로 인한 충격이 신입생들에게 준 부정적 폐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학생운동하면 마치 그 자체가 엄청난 탈선으로 여기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 사건을 분수령으로 대학은 죽어갔어요.”

 

 

 결국 아름다운 산하가 송두리째 이날로 일본에 편입됐지요. 일본은 즉각 통감부를 폐지하고 총독부를 세웠습니다.데라우치가 이 땅을 지배할 초대 총독에 임명되었구요. 우리 민중들에게 국어는 일본어가 되었어요.

 이날이 진정 부끄러운 까닭은 그 엄청난 사태가 결코 전쟁에 패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당시 지배세력들은 전쟁은 물론 단 한 번의 전투조차 치르지 않고 술잔을 들며 나라를 넘겼답니다. 무조건 일본만 비판할 일이 아니지요. 참으로 민족의 부끄러움을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날을 기억하길 꺼려하고 있습니다.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그래도 괜찮을까요.

 눈여겨볼 대목은 당시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한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들이 결코 자신을 친일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은 조선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강변했어요. 터무니없이 들리지만 당시 그렇게 생각하는 지배세력들이 많았지요.

 나라를 팔아서라도 자신의 부귀영화만 지키려는 매국노의 속셈을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 그 누구도 스스로 친일파임을 시인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과거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우리사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요. 친일파들의 후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일을 했던 신문사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여론을 좌우하고 있는 오늘의 참담한 현실. 과연 누가 언제 개혁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촌지가 그만큼 보편화하고 있다는 간접적 증언입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조선일보> 입사 12년 된 기자의 연봉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연봉 7천만 원. 소나타 승용차를 타고 50평이 넘는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솔직한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봉 7천만 원이면 월 600만 원에 가깝습니다. 이 연봉은 한겨레신문사의 사장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올해 조선일보는 임금이 다시 5% 인상됐습니다. 인상 전 조선일보 기자의 수준과 비교해 보더라도, 신문기자 18년째를 맞고 부장 3년째인 저의 올해 연봉 보다 두 배 이상이 많습니다.

 언론사 주변에 상식이나 관례처럼 되어 있는 광범위한 촌지를 생각해보십시오. 한 기자는 자신이 촌지로 받는 규모가 월 100만 원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최근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묻고 싶겠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라고.

 분명히 제 생각을 말하지요. 저는 오히려 젊은 벗에게 묻고 싶어요. 600만 원을 받는 입사 12년 된 기자가 과연 대한민국 사회를 올바르게 볼 수 있을까요?

 저요? 회의적입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임금은, 최대한, 그 사회의 평균수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신문의 부장이나 국장 그리고 주필, 아니 더 나아가 사주의 연봉이 어느 규모인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지요. 어떤가요. 왜 오늘의 탈세국면에서 그들이 그토록 탈세사주를 옹호하는지 당신의 이해 폭이 혹 넓어지지는 않나요?

 당신이 이 땅의 언론 현실을 바라보는 눈에 전혀 환상이 없기를 바라면서 총총 줄입니다.

 

 

 그렇지요. 그분처럼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이 나라의 최고 신문을 서로 자부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그렇지요. 대대적으로 그를 치켜세우지 않았습니까? 기득권 세력에게 박정희는 자신들의 안정적 보호자였지요. 그를 그리워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민중에겐 전혀 아닙니다. 편지를 보내오신 분은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신시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으신 분에게 유신이 굳이 나쁠 이유는 없겠지요. 그분은 억압을 느끼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처형당한 지식인들이 있었지요. 얼마나 많은 대학생들이 구속되었던가요? 노동법을 지키라고 스스로 몸을 불태운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여성노동자에게 인분을 퍼먹여 정신병동에 입원시키는 체제이기도 했습니다. 그 박정희가 나쁘지 않다면 도대체 나쁜 정치인은 무슨 일을 저질러야 하는가요?

 문제는 바로 그 박정희를 이 나라의 신문들이 박정희 시대 내내 앞다퉈 찬양했고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도 대대적으로 찬양했다는 사실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영남표를 의식해 김대중 후보까지 기념관 약속을 했지요. 기막힌 일입니다. 그 결과가 아닐까요. 스스로 서민이고 민중이면서도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역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제1야당 부총재가 되고 대통령 선거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합니다.

 저는 총통 박정희의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박정희의 자식들인 이 나라의 수구 언론들이 발행하는 지면에서 그의 망령은 지금도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슬프게 하는 것은 서민임을 자처하는 분들이 그를 좋게 평가하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그분들의 선택이라고 방관해야 할까요?

 

 

 박정희의 반짝 경제성장으로 그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면, 아돌프 히틀러도 훌륭한 정치인이지요. 히틀러라고 나쁜 짓만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나는 독일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독일을 지독히 사랑했지요. 독일에 고속도로도 닦고 베를린 올림픽도 유치했어요. 그뿐인가요. 피폐한 독일 경제를 부흥시켰어요. 인정할 것은 인정할까요? 전후에 독일에서도 극히 일부이지만 히틀러 향수는 있었다고 하더군요.

 박정희를 어떻게 히틀러와 비교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싶은 분께는 냉철하게 바라볼 것을 권합니다. 박정희와 비교한다면 외려 히틀러가 더 억울하겠지요. 적어도 히틀러는 파시스트다웠어요. 적국 프랑스에 부역하는 짓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작은 파시스트 박정희는 친일의 행적이 뚜렷하지 않은가요? 일제 군복을 입었던 박정희가 과연 파시스트나 될까요? 아마도 수많은 파시스트 원흉들이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한 사람의 평가는 종합적이어야 하고 역사적이어야 합니다.

 독일의 언론은 히틀러 집권 시기에 철저히 히틀러에게 복무했지요. 하지만 히틀러가 죽은 뒤 지금 히틀러를 찬양하는 언론은 없어요. 한국은 아니지요. 박정희 집권 시기에 철저히 박정희에게 복무한 한국 언론은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어요. 심지어 21세기를 맞은 오늘도 군부에 추파를 던지는 언론인이 있어요.

 문제는 거듭 강조하지만 이 땅의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언론들이 예나제나 박정희 찬양에 앞장서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 현상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편향되지 말랍니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양시양비론에 서 있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지요. 그분들의 현실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과연 그것이 중립이고 객관일까요?

 마지막으로 혹 박정희는 그래도 히틀러처럼 조국을 파멸시키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감히 말하지만 그분은 아직 박정희를 모릅니다. 박정희가 누구인가요. 부산 마산의 민주 시민과 학생들을 탱크로 깔아버리는 대학살을 준비하다가 비명에 죽은 것일 뿐입니다. 그가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 한번 상상해보세요.

 결국 그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도 이 겨레의 젊은 벗들이었음을 새삼 당신께 들려주고 싶습니다.

 

 

 젊은 벗들은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니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 이 나라는 지배세력이 사대주의에 저마다 매몰되어 결국 나라를 잃었습니다. 전쟁 한 번 제대로 치르지 않았지요. 뜻있는 선비들은 깊은 산에 은둔하고 민중들은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매국매족 세력이 온 나라를 송두리째 일본에 팔아 넘겼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매파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용춤추는 매국매족 세력이 언론을 주름잡고 정권을 넘보고 있습니다. 뜻있는 지식인들이 은둔하고 젊은이들은 자기 살길만 찾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전쟁의 불바다 한복판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때면 지금 방관만 하는 젊은이들은 이유도 모르게 전장으로 나서게 됩니다. 또다시 동족상잔을 벌여야 합니다. 그래도 될까요. 결코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할 참극입니다.

 그래서입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맞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준엄하게 일어서야 합니다. 나와 무관한 일이라며 20대가 침묵한다면 그 방관의 대가는 부메랑처럼 젊은 벗들의 목숨을 노리며 날아올 것입니다. 젊은 벗들 사이에 진지한 토론이 벌어지길 기대합니다.

 

 

 어떤가요. 운동권으로 소수화하려는 권력의 음모는 수십 년 동안 관철되고 있지 않은가요. 운동권 논리라는 말에 당신의 벗들이 무엇을 연상할지 생각해보세요. 학생회 선거 때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을 구분하기도 하지요. 심지어 학생운동 주체들도 무의식중에 운동권과 비운동권 따위로 스스로를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냉철히 따져볼 일입니다. 모든 총학생회는 운동하는 조직입니다. 도대체 총학생회가 운동을 안 하면 누가 하나요. 비운동권 학생회란 기실 언어모순일 뿐입니다. 문제는 운동의 방향이겠지요. 그 방향이 어떻든 총학생회는 운동조직이지요. 다양한 운동의 논리들이 서로 부딪쳐 토론을 벌이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제는 전국적인 총학생회 몫이지요

 운동권 또는 비운동권이라는 말을 적어도 젊은 벗들은 사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운동권이라는 말 대신에 학생운동 주체또는 학생운동 논리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어떨까요. 비운동권 또는 반운동권 따위로 젊은이들을 갈라놓고 학생운동을 음해하려는 언론 권력의 행태를 냉철히 주시할 때입니다.

 

 

 군사독재에 아부한 교수는 학문의 순수성을 지키는 비정치적 교수이고 군사독재를 비판하는 교수는 정치교수로 매도한 이 땅의 부자신문들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훈련을 받아서일까요.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몰아치는 학점경쟁에 그만큼 상상력이 찌들어 있어서일까요. 그도 아니면 현장을 보지도 않은 채 자신의 학교에서 일어난 일까지 신문보도에 의존하면서 그 신문의 논조에 휘말려 들어가는 잘못된 신문읽기때문일까요. 다시 슬픔에 잠깁니다.

 

 

 늙은 노동자가 미군의 고압선에 감전돼 숨져도, 팔과 다리를 모두 잘린 채 1년 여 투병한 그분에게 미군이 고작 60만 원만 위로금으로 주고 모르쇠해도, 대낮에 외국 군대의 탱크에 소녀들이 깔려 죽어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의 발행부수 1위 신문이어도 괜찮은 걸까요.

 

 

 여기서 다시 앞서 소개해드린 젊은 선생님의 편지를 당신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의 글에서 저는 이 땅의 희망을 읽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낙망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비록 우리의 서명이 우리가 바라는 만큼의 결실을 이루지는 못한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한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를 더 업신여기고 더 함부로 대할 것이고, 그렇다면 너희도 나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런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라고.

너희가 보기엔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로 보인다 할지라도 깨뜨려야 할 바위라면 계란으로라도 바위를 쳐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위에 오점을 남기고, 씻을 수 없는 얼룩을 남겨야 한다고. 그리고, 제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 이전에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먼저 기억하자고 했습니다.

 

 

 지난 편지(탱크에 걔네 떡됐어요?”)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조지 부시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께 제가 근 2년 전에 보내드린 연서(성추행 소녀의 행복?)를 다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까지 사과했지요. 하지만 우린 어떤가요. 탱크로 두 소녀를 죽인 주한미군 제 2사단은 소녀의 어머니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한다며 밤하늘에 축포를 쏘아댔습니다. 과연 그게 진솔한 반성일까요?

 주한미군사령관의 발표 뒤에도 사고를 낸 마크 워커 병장과 페르난도 니노 병장은 기초적인 조사 요구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또 어떤가요. 사고가 난 뒤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조선일보>는 뒤늦게 기사를 쓰기 시작하더니 주한미군사령관이 모든 책임을 인정한다는 기사를 가장 크게 2단으로 편집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분노케 하는 것은 <중앙일보>의 사설이었습니다. 사회단체의 운동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던 이 신문은 갑자기 미군 장갑차 사고 이성적 해결을이라는 사설을 내놓았습니다. 사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감정적 접근은 금물이다. 흥분은 진상 규명이나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감히 누구에게 어떤 훈계를 늘어놓는 걸까요. 썩 좋은 속담은 아니지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게 바로 이런 걸까요. 이런 신문들이 한국의 발행부수 1위와 2위를 다투는 한 절대로 조지 부시의 사과는 없겠지요.

 하여 다시 언젠가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겠지요. 앞서 일본 소녀에 대해 쓴 편지의 끝자락에서 당신께 드린 물음을 다시 옮겨봅니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으로.

 앞으로도 죽어갈 우리 겨레의 딸들을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무엇인가 우리가 할 일이 있지 않을까요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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