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사 주간지를 집어 들었다. 「굿바이, 노무현」이라는 너무나도 강렬한 헤드카피는 결국 지갑에서 돈을 꺼내게 만든다. 더구나 한겨레 21의 카피라니. 결국 한겨레는 완전히 노무현을 버리는 걸까. 


 
  


한겨레 21 제756호 - 굿바이 노무현


1.

"모든 인간은 자유로우며, 존엄성과 권리에서 평등하게 태어났다. 모든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존재로서, 서로에게 형제애로써 대해야 한다."(세계인권선언 제1조)
이 주옥같은 문장을 지금 써야 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써야겠다. 그런 누가 뭐래도, 어떤 상황에서든 진리이자 인류 보편의 합의이기 때문이다.

-편집장 박용현


2.

장기판으로 치면, 전직 대통령은 '차'와'포'를 뗀 '왕'과 같다. 앞길은 불 보듯 뻔하다

-인천대 교수 이준한


3.

어차피 각각 '도덕성'과 '공정성'은 어느 정도 포기했다.(중략)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자존심이다.

-최성진 기자


4.

웃으면서 화내려면,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통찰력'과 그렇게 파악된 본질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시큰둥'한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통찰력과 시큰둥의 모태가 '지성'이고, 지성은 '자기 객관화'에서 출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너'의 2차원 관계 속에서 살지만, 삶은 3차원이다. 자기 객관화는 삶의 세 번째 축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보면 감추고 싶은 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

일단 자기 객관화가 되고 나면 '자존감'이 생긴다. 자존감은 자신감과는 다르다. 자신감은 내가 시험 성적이 더 좋고, 더 예쁘고, 내 차가 더 좋구나 하는 식으로 남과의 비교우위를 통해 갖는 특정 능력과 과신이다. 열등감이 꼭 따라다닌다. 모든 면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란 있을 수 없기에 자신감은 다치기 쉽고 사라지기 쉽다.
 반면 자존감은 외부적인 것과 관계가 없다. 내 부족한 부분까지 수긍하고 긍정하면 자존감이 형성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나 자존감을 가지면 그러한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고, 그만큼 여유가 생겨 '타자'를 쳐다볼 수 있게 된다.

(...)

자기 객관화를 이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연애'와 '여행'이다. 연애를 통해 나의 치졸함과 바닥을 확인할 수 있다면, 여행은 자신의 보편성을 확인하게 해준다. 바닥만 보면 자기연민이나 자기비하에 빠지기 쉬운데, 보편성은 이 바닥을 받아들일 '용기'를 제공한다.
자기 객관화, 타자에 대한 감정이입, 지성, 이 사이클이 순환하면서 '내'가 완성돼간다. 웃으면서 화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클을 가진 사람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자기만의 '가격표'를 갖고 의사결정을 한다. 내 가격표가 높으면 아무리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도 그것을 선택한다. 오늘 오신 분들도 세상일에 자신만의 가격표를 달고, 웃으면서 화내며,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란다.

-딴지 총수 김어준




  

*. 한겨레 21 756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달전에 발행되었습니다. 문장수집 또한 당시에 이루어 졌음을 알려 드립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참고로 저는 당신의 책을 사기 위해 가끔 점심을 굶으며 타자를 치고 있는 이곳은 고시원 옥탑방입니다.

/죽지 않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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