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 / 이어령 / 기린원

초판 1쇄 발행 1994.04.15

초판 2쇄 발행 1994.05.20

 

 그래서 서구의 근대 사회를 계약 사회라 하고, 일본은 합의 사회, 또는 야마모토 시치헤이 같은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하나시아이(말로 풀어 가는)’ 사회라 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미국에는 변호사가 75만 명이나 되는 데 비해서 일본의 경우에는 겨우 25천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노기 다이쇼라고 하면 청빈하고 청렴한 일본의 대표적인 군인상으로, 군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노기 대장이 오직(汚職)에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 말을 믿으려고 하는 일본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기 대장은 지금 바로 노기 신사가 있는 동경 한복판 그 자리에 광대한 저택을 짓고, 40명이나 되는 고용인들을 부리며 살았다.’대장 월급으로 어떻게 여러 사람을 고용하실 수가 있습니까?’라고 누군가가 걱정스레 물었더니 노기 대장은, ‘걱정할 게 없어. 오쿠라가 전부 지불해 주니까.’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오쿠라가 왜 그 돈을 지불하지요?’라고 거듭 묻자, ‘글쎄, 나도 잘 몰라. 그저 군화를 오쿠라 이외에서 사서는 안 되게 해주었지.’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직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쿠라가 지불해 주고있는 그 사용인들의 급료는 뇌물인 것이고, 특정 기업에게 군화를 사게 하는 것은 엄연한 특혜 조치인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사람들은 청렴한 군신 노기 장군의 신화를 사실로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한국인에게도 낯일은 임란 때의 악명 높은 가토 기요마사의 무용담은, 일본인의 신화만들기의 대표적인 표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에 쳐들어와 호랑이 사냥을 한 이야기는, 호걸 가토 기요마사의 성가를 올리는 무용담으로 삼척 동자라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조금만 사적을 뒤져 보면 가토 기요마사는 칼이나 창을 다룰 만큼 무예를 닦았던 흔적이 거의 없다. 있다면 총을 쏠 줄 아는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호랑이를 장창으로 찔러 죽인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은, 총으로 쏘아 죽인 호랑이를 곁에 있는 부하의 창을 받아 창으로 찌른 듯이 연출을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거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가토 기요마사는 임란 때 고니시보다도 용명을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한국의 정규군과는 거의 맞붙어 싸운 적이 없다. 고니시 군의 뒷전을 쫓아가거나, 조선군이 없는 동해안으로 해서 북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단천의 은산을 수중에 넣고 은을 캐어 도요토미에게 헌상했다. 경주 지역에서는 민간인을 학살하여 코를 잘라 바쳐 전공을 올린 것처럼 보고했다. 실제 싸움은 남이 하고 전공은 가토가 독차지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사람들은 임란 때 승전을 한 장군을 가토로 알고 있다.

 

 

 허구를 사실로 만드는 일본 환상

 

 일본의 집단주의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이렇게 허구를 사실로 만들고 신화를 역사로 믿게 하는 특성 가운데 있다. 거기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의사 혈연주의요, 의사 신화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일본인들이 한 그릇 메밀 국수증후군이라고 불렀던 그 이상 현상들은 다른 합리적 분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메밀 국수 한 그릇을 놓고 국회에서 만화 가게에 이르기까지 일억 이천이 눈물을 흘린 그 눈물놀이는 대체 무엇이며, 신문 소설도 아닌 동화가 실화가 아니라 해서 하루아침에 그 감동의 신화를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와 신화의 영역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병으로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바로 그 혼다 오토바이의 신화를 만들어 낸 주인공 혼다 소이치로의 일생과 성공담을 들으면, 누구나 「한 그릇 메밀 국수」에서 받았던 것과 같은 감동을 받게 된다. 혼다는 북해정 소바집 주인처럼 뒷골목 작은 공장에서부터 장사를 시작한다. 거기에서부터 착실히 기업을 일으켜 오토바이로 세계 제일, 자동차 일본 3위의 거대한 신화의 성을 만들어 낸다. 당대의 경영자로서, 기술자로서 그의 매력적인 인간상을 그린 전기는 수없이 출판되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이렇게 한몸에 존경을 받고 있는 일본 기업의 상징적 인물을 조금만 각도를 달리해서 바라보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리를 질주하는 폭주족이요, 소음 공해를 전세계에 퍼뜨린 원흉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아름다운 꽃밭에서는 무서운 독사도 있다고 경고한 것은 셰익스피어였다. 누구나 아름다운 꽃에만 눈이 팔려서 발 밑의 독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꽃밭의 독사는 한결 더 무서운 법이다. 일본의 한 작가는 혼다 꽃밭의 독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혼다는 기술자의 행복을 한몸으로 구현한 인물이다. 소년 시절부터 기계가 좋아서 모든 것을 잊고 개량 개발에 온 정신을 팔아 왔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 몇 번이고 어려운 장벽에 부딪쳤지만 굴하지 않고 일에 매진, 차례로 우수한 차를 세상에 내놓았다.

 초일류 기업의 사장이 된 뒤에도 혼다는 뒷골목 작은 공장 주인 그대로였다. 일을 하는 데는 엄격했지만 부하에 대한 오모이야리(따뜻한 배려)가 있고 공평무사했다. 그는 손님이 원하는 오토바이를 개발해 그것을 양산, 세계 시장에 내놓아 환영을 받았으며, 일본 경제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일생을 오토바이 만들기에만 골몰하여 다른 것은 몰랐던 외길 인생에 빠진 오타쿠족이었다. 오타쿠족은 자기의 좁은 세계에 틀어박혀 주위의 다른 일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혼다는 자기가 만든 오토바이가 어떤 소음을 전세계에 뿌리고 다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혼다가 엔진을 너무 만진 나머지 난청증에 걸려, 오토바이의 소음이 얼마나 시끄러운지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은 여간 상징적인 일이 아니다.

 폭주족들이 자기 도취에 빠져 오로지 자기가 밟아 대는 엔진소리와 스피드밖에는 감지할 수 없었던 것처럼, 혼다 역시 기술자로서 경영자로서 오로지 앞만 보고 일에 매진함으로써 자기 세계 이외의 것에 대한 바깥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오타쿠족이었던 그는 공평무사한 대 경영자가 되었고, 동시에 같은 이유로 소음 공해의 원흉이요 폭주족의 대부가 되기도 한 것이다.

 혼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기업이, 일본인 전체가 혼다와 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세계로부터 혼다와 같이 번영했고 혼다처럼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역시 혼다와 마찬가지로 일본 열도에만 틀어박힌 폐쇄적인 오타쿠족이 되었고, 동시에 세계에 여러 가지 마찰의 소음을 일으켜도 자기가 만든 것을 자기 귀로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오타쿠족이 바깥 세계로 나가면 폭주족으로 변하듯이, 안으로 똘똘 뭉친 우치와가 밖으로 향하면 세계 시장을 질주하는 무역 폭주족으로 변한다. 일본 사람 때문에 실업자가 늘어나고, 수백년 동안 쌓아올린 기업들이 쓰러져도, 그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난청자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일본을 향한 세계의 소리는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 저팬 배싱(일본 때리기)’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사카야 다이지가 지적하였듯이, 수십만의 포트 피플이 바다위를 떠다닐 때 그것에 동정을 표시한 일본인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훈령은 바다에 이상한 것이 떠 있으면 도망치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도 그 보트 피플 속에 캄보디아 인과 결혼을 한 나이토라는 일본인 여성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매스컴이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수선을 폈다.

 폭주족들은 오로지 자기의 폭음 이외의 것은 듣지 못한다. 자기 머리를 보호하고 있는 헬멧 속에 감춰진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외길 한 줌밖에는 보지 못한다.

 그렇다. 그렇게 된다. 조심스럽게,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와 ……, 메밀 국수 일 일인분만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던 그 여인의 한없이 공손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북해정 밖 다른 세계로 나가면 귀가 멍멍한 폭주족의 오토바이 소리로 변하고 만다. 1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와 처음으로 세 식구가 세 그릇의 메밀 국수를 시킬 때 북해정에 울려 퍼졌던 화기애애한 북해정 안의 박수 소리----나카마들의 그 박수 소리가 일단 산맥을 넘고 바다를 건너 바깥 세계로 번져 가면 천억이 넘는 달러가 쏟아 지는 황금의 폭음이 되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메밀 국수 한 그릇을 가운데 두고 세 식구가 사이좋게 도시코시 소바를 먹고 있는 그 꽃밭의 정경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뜻밖의 독사가 숨어 있다.

 

 

 한국인과 한 그릇 메밀 국수

 

 한국의 어느 칼럼리스트는 「한 그릇 메밀 국수」를 읽고 그것을 한국인과 이렇게 비교한 적이 있었다.

 우리 한국 사람이라면 못 사먹을 지경이면 차라리 가지를 말지, 한 그릇 갖고 셋이 나누어 먹는 궁상을 소바집에까지 가서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첫 해와 둘째 해에는 한 그릇을 셋이 나누어 먹고, 그 다음 해에는 두 그릇을 셋이, 그리고 10여 년 뒤에야 비로소 세 그릇을 셋이 나누어 먹었다는 데서, 자신의 분대로 사는 일본 사람과, 분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우리 한국 사람의 차이가 대조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보다 소바집의 주인한테서 보다 그 분() 의식이 강렬하다. 세 모자가 와서 메밀 국수 한 그릇을 시켰을 때, 측은하게 생각한 소바집 안주인은 세 그릇을 말아 내려 했다. 한데 바깥 주인은 안 돼, 오히려 그 때문에 불편하게 생각할 거야.’ 하며 애써 세 모자가 지키려는 분을 눈물 흘리며 보장해 주고 있다. 무서운 일본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 우동집 같으면 한 그릇 갖고 셋이 나눠 먹는 손님 따위는 시덥지 않게 여기거나, 가엾게 여겼다면 세 그릇 말아 주고 돈을 받지 않거나 했을 것이다. 나의 분도 주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남의 분도 지켜 주지 못한다. 자타(自他)간에 분을 지키지 못하기에 의타적(依他的)이 되고 매사에 남의 탓만 하며 원망할 거리도 많아진다. 스스로의 분을 지키며 역경을 이겨 내고 또 그 분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보장해 주는 일본 사람들의 분 의식이 소복이 담긴 「한 그릇 메밀 국수」이다. 일본 사람들은 울었다지만 우리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 대하는 시각(視角)을 달리해야 할 「한 그릇 메밀 국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칼럼을 인용 보도한 일본 사람들은 칭찬으로서가 아니라 일본인의 이 같은 외곬의 오타쿠족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반성해야 된다는 결론을 덧붙이고 있다.

 

 

 시아게라는 일본말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가 일본을 배우자고 말한다. 불량품이 거의 없는 일제 상품을 놓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외친다. ‘일본을 배우자.’ 한일 상품의 불량품 발생률울 비교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힘주어 말할 것이다. 자동차 주물의 경우, 우리의 불량품 발생률이 5퍼센트인데 비해서 일본은 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컬러 텔레비전의 경우, 우리 제품은 2.6퍼센트의 꼴로 불량품이 발생하는데, 일본은 1.4퍼센트로 우리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만이 아니라 전 종목의 상품에 걸쳐서 우리의 불량품은 일본의 배를 넘는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일을 하거나 물건을 만들 때 마지막 끝 마무리를 하는 것을 시아게라고 한다. 이를테면 끝마무리나 끝손질을 하려는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일본말을 그냥 빌려 쓰는 게 아니냐고 국민성을 들먹거리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물건을 만들 때 적당히 대충대충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혼신의 힘을 들여 꼼꼼하게 끝까지 그리고 철저하게 손을 본다. 한 마디로 일본 사람들은 우리보다 독하게 물건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본 사람처럼 시아게를 잘 하는 국민이 되려면, 불량품 제로의 상품을 만들어 내려면 이 지독한 마음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된다. 쉽게 말해서, 15년 걸려 세 식구가 세 그릇의 메밀 국수를 시켜 먹는 이 지독한 마음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지독한 마음이 그 목표에 따라서는 참으로 끔찍한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작은 예를 하나 들어 보면, 에도 시대때의 봉건주의가 얼마나 지독한 것이었나를 위해서 우리는 잠시 도노사마(영주)의 밥상을 넘겨다 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도노사마가 드는 밥 속에 작은 뉘 하나가 섞이거나 돌 하나라도 들어 있으면 음식을 만든 주방장은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났다. 쫓겨났다는 말이 아니라 진짜 칼로 목을 쳐 죽였다는 것이다. 자기 목에 주야로 시퍼런 칼이 드려져 있는데 건성건성 대충대충 밥을 지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은 뉘, 돌 하나가 바로 자기 목숨인데 눈을 부릅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불량품 제로 운동의 근원은 도노사마 밥상을 차리는 에도의 부엌에까지 그 줄기가 닿아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잇쇼켄메이 라고 하는데, 이 말뜻은 일생의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비유가 아닌 것이다. 뉘 하나만 들어가도 목이 잘리고 생배를 째고 죽어야 하는 (셋부쿠) 그 엄격한 봉건제 사회 속에서 살아온 백성들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해도 늘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기모노 속에 숨겨진 속살을

 

 일본인의 특징인 협력 단결심과 같은 아름다운 풍습도, 그것을 발생시킨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환경을 분석해 보면 그 찬미가는 장송곡처럼 우울해진다. 일본 사회에서는 집단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 왔다. 당하는 사람 쪽에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져 왔다.

 우리는 「한 그릇 메밀 국수」의 어머니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지만, 목표를 향해서 일로 매진하는 그 무서운 여인의 모습을 에도 시대로 환원하면 고가에시마비키를 하던 무서운 어머니로 변신한다. 고가에시 라는 말은 하느님에게 자식을 다시 돌려 준다.’는 뜻이며, 마비키라는 것은 채소 가튼 것을 솎아내기한다는 뜻이다.

 ,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갓난아기를 죽이는 것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죽이는 방법이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맷돌로 눌러 죽이기도 하고, 굶겨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물을 묻힌 창호지를 코에 붙여 질식시켜 죽이는 수도 있었다. 자식 죽이기가 하도 만연하니 도쿠가와 막부에서는 금령을 내렸고, 때로는 보조금을 주어 자식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

 메이지 초에는 딸을 매춘부로 파는 일이 많았다. ‘업자들은 그 부모로부터 딸을 사서 동으로는 북남미, 서로는 중국, 북으로는 시베리아와 만주, 남으로는 인도네시아와 인도로 전방위 해외 수출을 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수출의 개척 상품 제1호는 바로 일본 여자들이었다. 민족주의로 이름난 후타바 데이라는 작가는 심지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창녀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일본 상품이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지반을 굳혀 간다. 시베리아에 다소나마 일본 상품이 진출하게 된 것은 그녀(팔려간 일본 창녀)들 덕택이다.’

『일본 홍도 총기(日本弘道叢記)』 제 1(명치 25)에서 니시무라는 그런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요즘 일본 여자들 가운데 타국에 나가 취업을 하는 자가 날로 늘고 있어, 일본 여자가 세계적으로 천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미의 여자들은 논할 것도 없고, 우리가 멸시하는 중국, 조선과 같은 나라에서도 그런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라는 요지의 글을 싣고 있다. 도덕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공공연히 매음 수출업자에게 딸자식을 파는 지독한 일본의 부모들의 비정한 마음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지만, 먹는 입을 덜기 위해서 자식을 맷돌로 눌러 죽이거나 매음녀로 팔아 넘기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진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정주의

 

 한국인은 인정주의 때문에 일본 사람과 같은 비정한 짓을 흉내내지 못한다. 밥 속의 뉘가 아니라 세종대왕이 탄 연이 부서져 지존한 옥체를 다치게 했는데도 그 책임자인 장영실은 파직을 당했을 뿐이다. 더구나 천한 종 출신이었는데 말이다.

 형 제도를 봐도 그렇다. 실제로 일본에는 산사람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이는 중국의 팽형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인정주의 때문에 차마 그런 짓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로는 팽형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집행하는 것은 종로 거리에 끌어내다가 끓는 가마솥에 발이나 손을 담갔다 꺼내는 것으로 그쳤다. 이를테면 삶는 체만 한 것이다.

 『춘향전』을 읽어 봐도 그렇다. 악명 높은 변학도의 형장인데도 춘향이를 매질하는 형리들은 귓속말로 이렇게 말한다. ‘살살 때릴 것이니 입으로 죽는 소리를 지르게.’ 사정을 봐서 때리는 시늉만 하는 이른바 정장(精杖)이라는 것이다.

 상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의 철저함과, 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의 엄격함은 그 뿌리가 같은 것이다. 자식을 죽이는 비정함과, 일개 집단인 기업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경여술은 결코 다른 가지의 잎이요 꽃이 아닌 것이다.

 일본인들에게서 배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한 그릇 메밀 국수」의 세계에 대한 감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기모노 속에 숨겨진 속살을 보라는 이야기다. 그러고서 일본을 배우고 일본을 뛰어넘는 새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그릇 메밀 국수」속에 담긴 그 많은 의미를 맛본 다음에 우리는 일본의 만화, 일본의 소설, 그리고 일본의 경영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제국으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고 있는 역사 교과서의 검정 문제는 외교, 정치 문제라기보다는 다름 아닌 일본인 자신의 역사 문제이며, 일본인의 의식 구조 그 자체에 관한 근본적인 쟁점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과는 그 역사에 대한 관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역사는 사마천(司馬遷)의 역사관에 의거하여 서술되어 왔다. 역사 사실의 서술은 객관적이며 또한 신성한 것이어서, 절대 군주였던 왕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사적(史籍)을 볼 수도 뜯어 고칠 수도 없었다. 언론의 자유라는 개념이 없었던 봉건 시대에도 춘추사관(春秋史官)이라는 특별한 직능은 아무도 범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정의는 청사에 길이 남고불의는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해 왔다. 일본에서도 이와 빗ㅅ한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현실은 역사의 심판보다는 언제나 칼의 심판에 의해 움직여 왔다.

 야마토 정권의 기록이라든지 외교 문서의 작성을 담당했던 사부(史部)는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에 건너온 외국인이었고, 그나마도 7~8세기경 율령제(律令制)를 도입한 일본은 가마쿠라이후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 현실적으로 힘을 쓴 것은 율령이 아니라 이기면 관군(官軍), 지면 역적이라는 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일본인 자신이 대세사관(大勢史觀)’ 이라고 하는 역사 의식에서는 종이에 글로 기록한 역사 따위는 휴지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 중국과 달라 역사를 체계화하는 전통도, 그 객관성을 보유 유지하려는 철저함도 희박했다.

 일본 역사 자체가 체계적으로 서술될 수 없다는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의견처럼, 역사의 체계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에 있었으면서도 그 당시의 상황을 실제로 좌우한 것은 바쿠후였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역사다운 역사를 서술한 것은 메이지 유신의 개화 이후의 일이며, 그것도 서구 학자들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일본에서의 역사 기록의 전통은 중국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궁정의 춘추사관의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업 도시인 사카이의 상인들의 거래를 매일 기록하는 장부 기입의 습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장부 기입식 역사 서술은 의()와 불의(不義)가 아니라 이익과 손해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이익을 위해서는 세금을 속이기 위한 허위 장부를 만들어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 이중 장부적 역사 서술의 역사는 편리하게 개조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날조해도 된다는 사고 방식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교부 검정관이 아닌 제일급 학자까지도 자기 나라에[ 불리하다 싶으면 원문에는 가라쿠니라고 명시되어 있는 『고지키』까지 외국(外國)’이라고 얼버무려 해석하기도 하고, 아스카 문화를 말할 때 법륭사의 석가삼존을 지은 안작조가 엄연한 백제인인 것을 알면서도 대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했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데 필요하다 싶으면 총독 정도를 갈아 치우듯이 그렇게 역사를 임의로 바꾸어 버린 것이 바로 황국사관(皇國史觀)이란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바꾸어야 할 것은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이다. 과거 역사의 과오와 죄를 참회하고 반성함으로써 그것을 새로운 역사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 일본인의 역사 감각이다. 생선 가시까지 버리지 않고 가마보코(어묵)로 만들어 먹는 국민이니까, 그리고 또 히데요시의 쓰쓰이즈쓰의 찻잔에 얽힌 얘기처럼 깨어진 자기도 다시 붙여 쓰는 국민이니까, 죄악의 역사라 해도 버리지 않고 때워 쓰려고 한다.

 그러므로 일본의 역사 구조는 1층은 헤이안 시대의 신덴 양식, 2층은 가마쿠라 시대의 쇼인 양식, 3층은 젠인 양식으로 건축된 금각사의 3층 사리전과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일본의 역사는 변하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전통적인 스포츠인 일본 씨름과 외국에서 들어온 야구가 동시에 국기(國技)처럼 국민에게 사랑받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일본어의 혼란과 그 위기

 

 이러한 일본인의 역사관이 교과서 마찰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또 한 가지 원인은 일본인의 독특한 언어 인식을 들 수도 있다. 일본인은 말의 의미와 그것이 의미하는 실체가 엇갈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이상한 국민이다. 일본인은 가게를 닫고도 밖에는 태연히 준비중이라는 팻말을 붙인다. 구미에서는 Closed 혹은 Ferme. 그러므로 준비중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닫힌 가게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가련한 피해자도 생기는 것이다. 그 피해자란 다름 아닌 교과서 마찰의 피해자인 중국인이며 한국인이다. 같은 한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벽에 걸린 시계가 고장이 나도 일본인은 고장이라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수리중이다. 외국인이 토끼장이라 부르고 있는 2DK 주택도 일본인들의 말을 빌리면 맨션이 된다. 광인(狂人)도 일본에서는 광인이라 하지 않고 가와리모노(색다른 사람)’라 하고, 노인이 치매증에 걸려 망령이 난 것도 황홀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언어의 구사법대로 하자면 일본은 아무리 심한 전쟁을 해도 절대로 질 염려가 없다. 패전이 아닌 종전(終戰)이 있을 뿐이며, 점령군이 아닌 진주군(進駐軍)이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체를 감추는 언어의 속임수가 역사 교과서에 나타나면 그저 웃음거리로 돌릴 수 없게 된다. ‘침략진출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본어의 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국어 교육의 문제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교과서 마찰의 원인은 실제의 모습을 바로 보고 그것을 적절하게 이름짓는 산문 정신의 결여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르트르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이름짓는다는 것은 상황을 인식하고 또 그것을 변화시키는 행동 그 자체인 것이다. 인류는 핵무기로 멸망하기 전에 말()을 사슴이라 부르고 사슴을 말이라고 부르는 것같이, 이름을 잘못 짓는 위기, 언어의 폭력에 의해 멸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쟁을 평화라고 부르는 조지 오웰의 그 유명한『1984년』의 상황이다.

 이번 역사 교과서 검정에 나타난 언어의 혼란을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의 지적을 통해 몇 가지만 추려 보아도 전쟁을 평화라고 부르는 인류의 말기 증상을 엿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이 외교권을 상실한 1905년의 제2차 한일협약에 대해 일본의 교과서는 이렇게 썼다.

 일영동맹을 개정(2)하여 영국에게 일본의 보호국화를 승인시켰다.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동년중 제2차 일한 협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접수하고 한성에 통감부를 설치하여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이 되었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일제는 조약 체결 과정에서 예상되는 한국민의저항과 한국 정부의 반대를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증파하여 무력 시위를 감행, 한국의 황제와 대신을 위협했다. 특히 조약 체결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참정대신을 일본 헌병이 회의장으로부터 끌어내어 감금하고, 한국 황제의 반대를 무시한 채 불법적으로 조약의 성립을 일방적으로 공고해 버렸다.

 이 조약 체결을 통해 일제는 한국의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을 보호국화했다.

 그런데 그들이 박탈한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은 합법적으로 접수했다고 왜곡하여 그들의 침략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인용이 좀 길어졌으나 본시 이런 지적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말이 얼마나 혼란되어 있는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동척(東拓)이라는 회사에 의한 토지 조사 사업에서는 토지 수탈수용으로 바꿔쳤고, ‘3.1 독립운동데모와 폭동으로 둔갑했다. 같은 어법으로 신사 참배는 강요가 아닌 장려가 되어 버렸고, 징용은 강제 연행이 아닌 동원이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정신대(挺身隊)도 그저 미혼 여성이 공장 직공으로 뽑혀 와 일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인 여성들을 데려다가 일본군 위안부를 삼은 만행은 어디론가 점잖게 나들이를 가 버렸다.

 잠깐 봐도 알겠지만, 이상의 예는 현대사에 국한된 것이다.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4항목 116군데에 걸쳐 그 왜곡 사실을 언급했다.

 자국의 군대를 자위대라 이름하고, 군함을 특함, 탱크를 특차라 부르는 것쯤은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아무리 자위대라 하더라도 그 자위대를 직접 눈으로 보면 그것이 곧 무장한 군대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군함을 특함이라 부르더라도 그것이 한가로운 유람선이 아니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라도 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 서술은 추상적인 것이어서 강제 연행을 강제 연행이라고 똑똑히 말하지 않는 한, 65만을 넘는 한국인이 어째서 지금 일본 안에서 살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결국 그런 역사 교과서는 자국민을 역사의 문맹자로 만드는 것이며, 따라서 이웃 나라에 대한 무지로 고립의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포커하는 사람

 

 얼마 전에 일본에서『일본 침몰』이라는 저서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었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일본인 각자의 번영은 세계의 번영과 연관이 없다. 일본인만의 번영을 생각했으니까, 멸망할 때도 일본인만의 멸망을 생각한다. 정말로 일본 열도가 망할 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을 살려 줄 것인가 어떤가 약간 불안하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SF 소설 등이 잘 팔리는 것은 한국인이 망한다는 얘기보다 인류가 멸망한다는 얘기 쪽이다. 아무리 한국인이 애를 써도 이상한 우주 괴물이 나타나서 지구가 파괴된다는 발상이지, 그 속에서 한국인만 번영한다는 것 따위는 생각지 않는다.

 일본은 확실히 경제 대국이고 훌륭한 번영을 이룩하고 있지만, 세계 전체가 멸망할 때 일본만 번영한다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침몰하는 배 안에서 포커를 하여 돈을 땄다고 해도 정말 기쁠까. 지금 인류라는 커다란 배가 폭풍우를 만나 조금씩 침몰해 가고 있다. 사람들은 마스트나 스크루를 걱정하지만 포커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 일본인은 포커만 생각하니까 크게 돈을 딴다. 침몰선 안의 포커 승리자를 진짜 승리자라고 할 수 있을까.

 현대의 무역 마찰도, 일본이나 구미의 번영뿐만 아니라 온 세계 인류를 어떻게 부흥시킬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의 디지털 시계와 자동차는 아직은 팔린다. 그러나 세계의 경기가 더 나빠지면, 까놓고 말해서 일본의 수출 상품의 90퍼센트는 없어도 된다. 시계가 없어도 태양으로 알 수 있고, 워크맨이나 테이프 레코더가 없어도 살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의식주의 필수품이다. 배가 침몰할 때 제일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은 일본 상품이다. 인베이더게임도, 차도, 카메라도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허기를 메워주는 오렌지며 식료품이다.

 

 

 일본에는 무사도가 있어서 무사의 문화가 있었으며, 한국에는 문사의 문화는 있었지만 무사의 문화라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5, 6세가 되면 반드시 칼을 차고 사무라이(무사)가 되었지요. 그리고 서당에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칼의 문화가 아닙니다. 이처럼 긴장한다든가, 무엇에건 꽉 조인다든가, ‘싸움에 이긴 후에 오히려 투구 끈을 조여 맨다.’라는 것이 무사들의 정신이지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오히려 그런 정신 상태는 나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상이한 문화가 있는 거지요.

 

 

 이것이야말로 한국 문화입니다. 단군 신화에서는 호랑이와 곰이 경쟁해서 곰이 이깁니다. 호랑이는 힘이 세지만 꾹 참는 자기 자신의 정신력은 약합니다. 그래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백 일 동안 자신을 깨끗이 하라고 일러도 호랑이는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곰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어두운 밤이 지나고 아름다운 아침이 되었을 때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한국인입니다. 이런 신화를 보고 있으면 역시 신화 속에도 무력주의는 전혀 없었다, 칼의 문화는 없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조이는 문화푸는 문화라는 상이한 패러다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에서는 콤팩트에 무엇인가를 쑤셔 넣어 채웁니다. 이것 역시 조인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방 벽속에 무엇인가를 차곡차곡 채우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은 같은 쌀 문화를 갖고 있지만 채운다는 것을 모릅니다. 콤팩트에 꽉 채워 넣을 줄을 몰라요. 일본인들은 채우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벤토를 만든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인들은 벤토를 만들지 않았어요. 도시락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일본의 벤토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어떠했을까. 들에서 일하는 농사꾼들에게 점심때면 밥상째 그대로 가져갔던 것입니다. 그 큰 것을 말입니다. 오늘의 소니 제품을 보면 일본인들의 벤토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니의 워크맨 같은 것은 어깨에 걸고 다니지요. 이와 같은 축소 방법을 한국인들은 모릅니다.

 한국에서는 문록(文祿), 경장(慶長)의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부릅니다만, 이 당시에도 한국인들은 밥상을 들고 다니면서 싸웠던 것입니다. 한국에는 일본식의 쓰메루(채운다)’라는 말이 없어요. ‘간즈메를 어떻게 부르냐 하면, ‘쓰메루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통조림이라 합니다. 통에 쪄 조려서 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은 쓰메라레나이모노(채워 넣을 수 없는 것쓰마라나이모노(별 볼품없는 것)’가 되고 맙니다. 채울 수 없으면 별 용도가 없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일본의 회사 조직을 보노라면 모두 회사 안에 꽉 채워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채워 넣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역시 개인주의가 강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위험에 빠졌을 때 외치는 말은 무의식적인 문화의 표현입니다만, 서양인은 죽을 때 헬프 미(help me)’, ‘나를 살려 달라고 말합니다. 죽는 순간에도 를 버리지 않아요. ‘를 살려 달라는 것이지요. 왜 당신을 살려야 하는가. 나 이외에 다른 것이 있느냐는 것이지요. 죽을 때도 믿는 것,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입니다. 일본인은 집단주의이기 때문에 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살려 주시오라고 말합니다. 한국인만이 사람 살려입니다. 사람을 살리라는 것이지요. 어떤 위기 때도 사람을 살려 달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을 믿는다는 의미지요. 죽는 자도 사람, 구해 주는 자도 사람입니다. 나는 사람이니까 사람은 나를 살려 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숨을 거둘 때에 떠오르는 얼굴은 같은 사람이라는 공동체인 것이지요. 여기에 공생이라고 하는 함께 사는 하나의 사상이 태동하는 것입니다.

 다윈은 약한 것은 강한 것에 도태되어 가고 강자만이 남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서양의 나쁜 점입니다. 그래서 배제주의로 끝내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생태학에서는 다르게 봅니다. 약한 것은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은 강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로 공생한다는 것이 신비한 생물계에는 있습니다. 경쟁하고 있는 듯이 보이긴 하지만 질서 있게 공생하고 있는 면이 있지요. 잡아 먹는 것도 공생의 원칙입니다. 늑대와 사슴이 사는 지역에 철조망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사슴이 모두 죽어 갑니다. 왜냐 하면, 철조망이 없으면 약한 사슴을 늑대가 잡아 먹어 버려 강한 사슴만이 살아 남게 되어 자꾸자꾸 새끼를 번식시킵니다. 빨리 달아나려고도 합니다. 그런데 늑대가 없으니까 잡혀 먹힐 걱정이 없어져 사슴은 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이 찝니다. 약한 늙은 사슴도 죽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우성보다 열성의 사슴이 자꾸만 늘어나고 결국 자멸케 되는 겁니다. 짧은 눈으로 보면 늑대는 사슴의 적이지만, 숲 전체가 함께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거꾸로 사슴에게 있어서 늑대는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윈이 말하고 있는 듯한 세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대는 컴퓨터에 의해 인간의 합리주의로서는 갈 수 있는 마지막 끝까지 온 시대라 할 수 있지요. 앞으로는 단 한 치도 내디딜 수 없는 합리주의의 극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마지막까지 간 오늘의 합리주의 벽을 넘는 것이 바로 문화의 영역입니다. 컴퓨터로써는 해결할 수 없는 플러스 알파가 문화의 가치이며 이제부터 우리가 문제시하는 가치 영역이지요.

 지난 날에는 모른다고 하면 바보 취급을 당했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모른다는 것이 귀중한 것이지요. ‘엉터리라든가 모르겠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다시 말해, 랜덤니스(randomness)가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행동의 스타일에 대립적인 것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상황을 모르는 경우, 보기 전에 뛸 것인가, 뛰기 전에 보아야 하는 것인가 ----. 뛰고 나서야 알게 되는 상황을 미리 알아 내려고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합리주의적인 기분이 드는데……. 컴퓨터도 있고 오토메이션도 있으니까. 뛰어 봄으로써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데 뛰어 보려고 하지 않지요.

 오늘날에는 모두가 보고 있다. 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빤한 것이니까 결국 뛰는 자가 현명하고 뛰려고 하지 않는 자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무턱대고라고 뛰어 본다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지요. T자형 글자의 위의 ─의 좌우 끝에 아주 똑 같은 품질의 마른 풀을 놓아 봅니다. 그리고 모든 조건을 똑같이 했을 경우 밑에 있는 당나귀가 마른 풀을 찾아 우측으로 가느냐, 아니면 좌측으로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고로만 판단해 본다면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결국 굶어 죽고 맙니다. 현대의 합리주의자는 먹고 싶은 풀을 눈앞에 보면서도 굶어 죽어야만 하는 당나귀가 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세계의 사상계를 지배한 합리주의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제 시대는 변하고 있어요. 새로운 가치관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랜덤이라든가, 디자인에 있어서도 언밸런스 같은 것이 주목을 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엉터리 이론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인가?

 아주 예부터 소급해 본다면 오래 전에 문학에서 나타나 있었지요. 문학과 물리학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원리를 파보면 결국 절대 불변의 진리의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뉴턴은 모든 우주의 물리 현상이란 합리적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여러 가지를 공식화했는데, 상대성 이론까지 파들어가 보면 불확실성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브라운 운동이나 불확실성 원리에 이르면 엉터리 성()’이 나타나지요.

 문학 분야에서도 이런 것들이 나타나고 있지요.『보바리 부인』으로 유명한 작가인 플로베르가 있는데, 그는 이 세상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단 하나의 동사, 이 세상에 있는 단 하나의 형태를 갖고 있는 명사, 단 하나의 수식만을 갖고 있는 형용사가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플로베르는 뉴턴처럼 문학적 표현은 하나밖에 없다.’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것이 그의 비극이었던 셈인데, 아마 소설을 쓰는 데 굉장히 고심했음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피네건즈 웨이크』를 쓴 제임스 조이스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가 구술을 통해 필기를 시키고 있었을 때에 어느 사람이 갑자기 그의 서재를 찾아옵니다. 그가 도어를 노크했지요. 제임스 조이스가 플리즈 컴인(Please Come in)’이라고 했는데, 그의 소설을 받아 쓰고 있던 필기사는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노크를 해서 제임스 조이스가 방문객을 향해 플리즈 컴인이라고 말한 것을 모르고, 계속 구술하고 있는 내용이려니 생각하고 그대로 써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보니까 방문객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제서야 방금 전에 자신이 들은 플리즈 컴인은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방문객에게 한 말인 줄 깨닫고 제임스 조이스에게 제가 실수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플리즈 컴인이 소설 중의 대화인 줄 잘못 알고 그대로 받아 썼군요. 지우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제임스 조이스는 아니 잠깐 기다리게. 자네나 나나 또 독자들까지도 이해키 어려운 이 플리즈 컴인이란 구절이 문장에 들어감으로써 어떤 효과가 생기게 되는지 알고 싶네. 그러니까 그대로 두어 보세.’ 라고 하면서 그 밑도끝도없는 말을 그대로 살렸던 것입니다.

『좁은 문』을 쓴 앙드레 지드는 이런 현상을 하나님의 몫이라는 말로 표현했어요. ‘나도 독자도 전혀 모르는 새로운 효과가 있다. 아무도 그 효과를 알 수가 없다. 그것은 하느님만이 알 수 있는 하느님의 몫이 아닐까.’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소설의 부분이 60퍼센트라고 하면 40퍼센트는 앞서 말한 노이즈인 셈이지요. 우연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들은 오늘의 시대를 앞서는 영웅들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브라운 운동이나 불확실성 원리 등의 현상을 인지한 사람들은 말하자면 합리주의의 최후를 예견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또한 오늘의 컴퓨터에도 퍼지 컴퓨터라는 것이 있지요. 불확실 영역을 아예 설정한 컴퓨터입니다. 퍼지(fuzzy)란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잔털 모양의, 흐트러진, 고수머리 같은, 흐린, 분명치 않은이라는 뜻풀이가 되어 있어요.

 최근에 들어서면서 이 퍼지에 대한 인기가 높아가고 있는 이유도, 인간이란 모두 똑 같은 것이 아니다라는 일종의 불확정적개념이 강해졌기 때문이지요. 가령, 사람에게는 기온이 몇 도여야만 쾌적한 느낌을 갖는다는 식의 일률적인 논리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각양각색이어서, 어떤 사람은 덥다고 하는 온도인데 어떤 사람은 선선하다고 하거든요. 사람이란 이렇게 일률적으로 싹 잘라서 합리적인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인칭 문화라고 한다면 춥습니까? 춥군요. 그러면 히터를 부탁합니다.’가 되지요.

 그런데 이인칭 문화의 대화를 나누면서, 한 사람은 덥다고 하는데 상대방은 춥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인칭끼리의 싸움입니다. ‘이인칭 문화에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고 양보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공자는 ()’과 함께 ()’를 대단히 중요한 최고의 덕목으로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를 잊고 있는데……. 소로의 보살핌이 이면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의 보살핌이 가 됩니다.

 일인칭 문화라면 내가 추운데 당신이 덥다면 당신이 틀린 것이다.’라고 자신의 입장만 강변하게 되어 결국은 대립만을 가져옵니다. 서로 양보한다는 것이 도덕의 첫걸음이 되지요.

 이인칭 문화에는 결정론이 없다----라는 것이 중요하지요. ‘일인칭’, ‘삼인칭에서는 인간이란 20도가 아니고서는 누구나 쾌적할 수 없다라는 원리 원칙만이 존재하지요. 그런데 이인칭의 경우에는 그런 원리 원칙에 구애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인칭의 경우는 엉터리 퍼지를 이해하지 않는 한 인간 관계가 형성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 요리에는 어째서 내가 먹지 않는 반찬까지 내놓느냐 하는데 그것은 인()의 어레인지먼트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입맛이란 각각 달라서 어느 사람에게는 맞는데 어느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것이 있지요. 이런 개개인의 구미를 인정하고 서로서로 각자가 즐기는 것을 찾아 알아서 드시라는 의미입니다.

 기업의 세계에서는 유서스 니드(user’s need)’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스스로 대화를 하면서 관찰을 하면 그 유서스 니드가 떠오릅니다. 혹은 자신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지요. ‘일인칭’, ‘삼인칭의 합리주의 시대에서는 좋다는 것은 한 가지로 집약되었지만, 이제부터의 이인칭시대에서는 좋다는 것이 기능, 색깔 등등 다양한 면과의 대화를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도 재미있지요. 예컨대, 참치의 일생은 6년부터 7년에 끝난다고 합니다. 참치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질식해 죽는다고 해요. 그래서 일생 동안 죽어라하고 헤엄을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뇌뿐입니다. 뇌는 휴식을 취하는데 온몸은 계속 움직이며 헤엄을 쳐야 합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헤엄을 치니까, 아가미로부터 산소가 계속 들어가서 참치의 살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넙치는 게으름뱅이여서 전혀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먹이가 나타나면 재빨리 입을 벌려 먹지요. 그러니까 넙치의 살은 흰색입니다.

 인간도 참치형의 인간과 넘치형의 인간 등 두 종류가 있지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질식해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이인칭이라고 해도 참치형의 이인칭넙치형의 이인칭은 전혀 다릅니다.

 일본인은 참치회를 즐겨 먹기도 하지만, 기질도 참치형이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일하니까.

 참치는 세계의 바다를 알고 있지요. 넙치는 자기가 살고 있는 바다 바닥밖에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문장수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로, 발췌내용은 책or영상의 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발췌기준 또한 상당히 제 멋대로여서 지식이 기준일 때가 있는가 하면, 감동이 기준일 때가 있고, 단순히 문장의 맛깔스러움이 좋아 발췌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된다면...... 당신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독수리 타법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타자를 쳐서 간직하려는 한 청년을 상상해 주시길.

발췌 : 죽지 않는 돌고래 
타자 노가다 : Swee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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