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래 글을 읽은 나는 깜빡 잊고 결혼 한 번 더 할 뻔 했다. 과연 유혹이 많은 세상이다.

 

2.

내게는 “빵꾼”이란 딴지닉으로 더 친근한 박영서 님은 최근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들녘, 2020>이란 책을 냈는데 정말로 시시콜콜해서 개별적인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이런 기획으로 글을 쓰는구나 했다. 내게는 힘든 일이다.

 

책 낸지 2주쯤 지난 듯한데 이제 2쇄를 찍는다고 한다. 아래 쓴 글로 보건데 10쇄쯤 찍으면 내게 3쇄 정도의 인세분은 줄 것 같다. 감사한 마음으로 정중히 받아야겠다.

 

그러고보면 <찌질한 위인전, 위즈덤하우스>의 저자 홀짝(본명 함현식) 이 생퀴는 내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피드백해주고 남다른 신경을 써 주었는데 인세로 지 차만 홀랑 바꾸고 내 차는 아직 안 사주고 있다. 내 차 사줄 줄 알고 아직 차 없이 버티고 있는데 혹시 보고 있으면 느끼는 바가 있길 바란다. 난 괜찮다. 이렇게 걷다보면 다리가 점점 닳아 없어지겠지만 괜찮다. 그냥 갑자기 욕하고 싶어서 써봤다.

 

3.

도서출판 생각비행도서출판 들녘 은 내부 구성원들의 인간미로 여러모로 좋은 감정이 많다. 그렇다고 물질적이나 정신적인 보답을 할 순 없으므로 그냥 내가 그렇습니다, 라는 팩트를 확실히 전해야겠다.

 

아래는 빵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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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저,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2019, 생각비행

 

#1.

김창규, 그러니까, 내가 평소 '죽돌쨩'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독특한 편에 속한다. 그는 '나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지만, 어쩐지 그의 '보통 사람'은 노태우의 '보통 사람'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본인 소개에서 "조금 이상한 일을 많이 했다."라고 쓰면서도 '보통 사람'이라고 우격다짐 하는 것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아무래도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까닭은, '재능', 혹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한 언론의 편집장, 그것도 마치 안동 김씨 김조순처럼, 장막 뒤에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수차례 목격했을(나는 몇몇 사건은 그가 배후에서 움직인 일이라고 믿고 있다) 위치의 편집장이라면, 나처럼 "글이 좋다"라거나 "책이 좋아요"라는 얘기에 쉽게 감명을 받는 시기는 지나버렸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의 콧수염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보통 사람 코스프레'는 인터뷰어로 나섰을 때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2.

인터뷰라는 걸 그다지 많이 해 보진 못 했지만, 정말 어렵다. 일단, 내 맘대로 판이 잘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듣고 싶은 건 A인데, 자꾸 B와 C 얘기를 하다가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 버린다. 허접한 인터뷰어인 나로썬,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라는 거죠?"라고 정리를 해 버리며 원하는 대답을 들어내고야 마는 타입이다.

 

죽돌쨩의 인터뷰가 뭐가 좋냐, 라고 묻는다면, 일단은 '활자 안의 현장감'이라 꼽고 싶다. 유튜브가 미디어를 좌지우지하는 시대, 글로 풀어낸 인터뷰를 읽는 일은 점차 줄어만 간다. 머리를 맞대고 마주 앉아 2시간, 3시간 씩 떠들면 충분히 상호 간에 소통이 가능한 문제도 짧은 시간, 짧은 대화 속에서 핵심만을 원하는 문제 때문에 오해와 갈등이 샘 솟는다.

 

이것은 조금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래도 죽돌쨩의 인터뷰에는 그 활자 안의 현장감이 생생하다. 이 책에서는 그다지 인터뷰이의 모습을 많이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그다지 사진이 많지 않음에도 어쩐지 키나 쇼키치의 목소리와 말하는 스타일이 고스란히 귀에 꽂히는 것이다. 그렇다. 읽히는 게 아니라, 귀에 꽂힌다. 인터뷰어로써는 최고의 능력이 아닐까.

 

책을 다 읽고 그의 음악을 찾아 들었을 때, 내가 상상했던 키나 쇼키치의 목소리와 대략 일치했다.

 

이것이 '보통 사람'의 힘인가, 다시 한 번 감탄한다.

 

#3.

그래도, '보통 사람'의 허들이 너무 높지 않은가, 싶다. 책에 담겨 있는 키나 쇼키치의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허무맹랑'함이다. 뭐랄까, 일단 저지르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달까. "문제는 국경이야"라는 그의 철학이 허무맹랑하지 않다고 느낄 이가 얼마나 많겠는가? 문제는 국경이 맞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울타리를 치는 것이 농경 사회라는 수 만 년 된 관습이거늘.

 

그런데도 그는, 일단 저지른다. 전쟁 중의 이라크, 트럼프와 김정은의 마이크웍이 넘치던 2017년의 한반도, 2009년 일본 민주당 트로이카의 정권 교체 등등. 오키나와, 일본, 아시아, 그리고 세계에 이르는 그의 허무맹랑함이,

그의 표현대로 "사이를 비집고" 들어 간다.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 속에서도, 풀 한 포기 자라나지 않을 사막에서도 어떻게든 야생화는 피어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책임한 심보가 리(理)이고, 그에 따라 어떻게든 움직여 주는 세상이 기(氣)인 것일까.

 

이쯤되면 궁금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죽돌쨩이 다시 일본으로 날아가 그를 만난 것도 그러한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4.

인간은, 특히 현대인은, 길고 긴 인간의 역사를 짧은 수식어로 정리하기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다. 책을 절반 쯤 읽었을 때는, 그를 '아시아의 히피'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몇 개의 문장, 이를테면, "그 정점에 서 있다고 잘난 체하는 인간 만이 국경을 가지고 있는 거야"(90p), "내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콘서트를 함으로써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거지"(124p), "아니, 난 항상 행복해. 행복하지만 달성감이 느껴지지 않아. 매번 실패만 하니까. 실패의 연속이지"(140p)

 

와 같은 그의 말을 읽고 나선, 그 섣부른 정리를 수정해야만 했다. 아아, 그는, 공관(空觀)을 조금은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세상의 모든 것이 상의적이고 상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직관하는 능력을 불교에서는 공관이라고 말한다. 이에 통달한 이가 붓다가 되겠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는 너무나 해체적, 혹은 포스터모더니즘 적이라, 일상 세계에서는 잘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다. 아군과 적군이 명백하고 이기지 않으면 내가 죽는 세상, 나와 남이 명백하여 이기지 않으면 내가 실패하는 세상 속에서 공관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낙오자로 떨어지기 딱이다. 그러니까 출가 수행하라는 거다. 일상 세계에서는 못 하니까. (그렇지만 2,500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출가 해도 일상의 속박을 벗어나는 것이 싶지 않다)

 

그런데 그의 '평화론'은, 나와 남이 모두 사라지지 않고선 결코 가능하지 않은 항구적이며 영구적인 평화를 의미한다. 아니, 나와 남이 아니라, 인간이 모두 멸종되는 편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본인도 알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미 본인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실존의 의미가 충만하기에 더이상 분별할 이유가 없다. 성공이나 실패는 나의 실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척도가 아니다.

 

이런건 어떻게 얻게 되는 것일까. 유년시절 자신이 왕따를 당하고 있었음을 노년이 되어서야 알아차릴만큼 이 뻔뻔한 능력은, 어떻게 얻게 되는 것일까.

 

에라, 모르겠다.

 

#5

그가 단순한 '아시아의 히피'가 될 수 없는 까닭은, 그의 모든 말에 수백 년의 오키나와 역사가 잠겨 있기 때문이다. 국경은 버렸지만, 민족이라는 아이덴티티는 버리지 못 했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아이덴티티에 함몰되어 버리기 보다, 자신만의 새로운 '인류 아이덴티티'를 찾아나선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히피라는 단어는 그를 정의하기에 너무 편협하다. 게다가, 선문답을 하듯 툭툭 던지는 그의 정치적인 발언들이 꽤 핵심을 짚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 세계에 발 닿은 인간' 중 한 명이다. 저자와 조력자가 충분히 설명을 해 줬음에도, 오키나와와 본토 사이의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 내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죠몬인과 도래인의 차이라든지 하는 것은 더욱 그렇고. 특히, 마츠오 카츠히코 씨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그를 "당신네들"이라 부르는 장면의 뉘앙스를 적확하게 이해하기란 몹시 어렵다. 아마도 책 중에서 가장 공관이 허물어지고 분별이 굳어진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즐거웠다. 이런 류의 엄청난 사이즈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일단 마음을 편하게 먹고 머리를 좀 쉬는 편이 좋다. 30분 만에 읽어버린 것은 너무 성의 없지 않은가 싶지만, 뇌의 휴식이 번잡한 일상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주었기' 때문에 꽤 재밌게 읽었다.

 

다른 이들도 이런 책들은 빨리 읽어서 치워 버렸으면 하는 소망이 든다.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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