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몇 년 사이, 바뀐 행동양식이 하나 있다. “일단, 내 손으로”다.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를 찾는 버릇이 있는데(무조건), 집에 가벼운 누수가 생긴 이후 생각이 바꼈다. 나름 잘 서치해 사람을 세 번 불렀는데 세 번째가 되서야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누수는 최소 30, 크게는 100 이상이 가볍게 드는 종류의 문제로 비전문가의 입장에선 전문가가 마무리를 제대로 했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후에, 여러 전문가와 이야기하고 만나고 난 이후에야 각 전문가의 문제점을 알았다.
 
이때 생긴 습관이, 일단 전문가, 가 아니라 일단 공부해서 해보고 부른다, 이다.
 
환풍기가 이상하면 환풍기를 뜯어보고, 도어락이 이상하면 도어락을 뜯어보고, 문고리가 이상하면 문고리를 뜯어보고, 방문이 이상하면 방문도 뜯어보고, 욕조가 이상하면 내부도 열어보고, 뭐, 그랬다.
 
2.
문제가 있다.
 
내 취미는 무엇이든 해체, 그 자체라 원상태로 돌려놓는 건 애초에 관심도 없고 해본 적도 없다.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뜯어보는 타입은 라디오든, 시계든, 냉장고든, 컴퓨터든, 일단 집에 들고와 다 분해하고 뜯어보므로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여러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참고로 아무 생각없이 컴퓨터 칩들을 모아 드릴로 뚫으려다가 마침 놀러온 친구가
 
“야, 그거 했다간 정자 없어져!”
 
라고 말한 것에 대해선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대학생 때 갑자기 왜 이걸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CPU칩을 모아서 드릴로 다 뚫어 뭔가 장난감같은 걸 만들고 싶었다).
 
하긴 온도계 깨서 수은 가지고 놀기(그냥 만져서 뭉치고 흩어지는 모습이 예뻐서. 이걸 본 할아버지가 크게 놀라서 왜 1시간 동안 나를 씻겼는지는 후에 암),
 
대량의 본드를 사서 물에 풀어 관찰하기(그냥 수면 위에 뜬 모습이 예뻐서. 왜 머리가 멍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지는 후에 암),
 
크레파스 불로 녹여서 물감 만들기(그냥 그러면 될 것 같아서. 초등학생 때인데 아직 화상자국 남음) 등 일단, 하자! 해서 한 것 중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게 없다.
 
다만, 그때는 그냥 해보고 싶으니까 한다, 라는 본능이라면 성인이 된 지금은 돈을 절약하고 사물의 원리를 알아 고친다, 라는 구체적 목적이 있으므로 기합이 다르다.
 
3.
현재까지 성적은 나쁘지 않다. 일단 환풍기를 완전히 분해해서 다시 조립할 수 있게 되었고 실리콘 공사도 예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도어락은 세 번이나 분해, 조립 후에 성공한 줄 알았지만 결국 실패해 사람을 불렀고, 전기 공사는 전기기사 친구가 친절히 설명해주다가 ‘그건 걍 사람불러, 미친놈아’ 해서 순순히 따랐으며 방문과 방 문고리는 다 뜯어봤는데 왜 유독 문 하나만 안 고쳐지는지는 아직 모르겠고 욕조 문제는 양심적인 전문가의 조언으로 잘 해결했다.
 
문제는 주방쪽 매트인데, 하루가 걷게 된 후로 하도 미끄러져서 쿵쿵 머리를 박아대는 탓에(어린 나이에 자해하는 줄 알았음)몇 년 전에 거실 시공매트는 했지만 주방쪽은 대충 회사에서 버리는 매트로 깔아 놓았다.
 
거실과 주방의 마감이 다른 탓에 항상 눈에 걸렸는데 그렇다고 전문가를 부르자니 시공매트는 기본 50, 뭐 좀 했다하면 100, 비싼 건 200쯤 된다.
 
넨장, 너무 비싸다.
 
그 비용은 혼자일 땐 쓸 수 있지만 네 가족의 아빠가 쓰기엔 아무래도 아깝다.
 
4.
해서 아내와 수면을 교대하는 새벽 2시까지, 둘째가 깨면 분유를 먹이고 응가를 하면 씻겨주면서 이틀 간에 걸쳐 칼과 60센치자 두 개로 시공을 마무리했다.
 
회사의 버리는 매트를 사용했는데 벙커에서 주지수 교육을 할 때 쓰던 것으로 이상한 냄새는 물론, 매트 아랫면이 워낙 더러워, 이걸 세제로 청소하는 과정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집 주방은 조금 특이한 구조라 각이 이상하게 많은 지라 반쯤 하다가,
 
“넨장,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 걍 매트는 사자”
 
...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매트 가격과 시공비를 보니
 
“내가 잘못했네”
 
하고 걍 열심히 했다.

 

 
위 사진은 그 결과물이다.
 
자세히 보면 마감은 어설프지만 이렇게 스스로 하는 습관을 들이다보면 언젠가 원자폭탄도 셀프로 만들어서, 분쟁 억지력이 생길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신: 최근 도전 과제 중, 드럼 세탁기 완전 분해 청소가 있었는데 유투브로 공부한 후, 마지막으로 엘지 고객센터에 전화해 물어보니 하지 말라고 한다. 정말 큰 문제나 오염 아니면 분해 청소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뭐, 그렇다.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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